공급정책 공공 쏠림현상에 아쉬움
수익성 낮은 경우에만 공공 개입을
도심공급 줄인 것이 文정부의 패착
공급정책 성공, 입주시기 조정 중요
켜켜이 쌓인 재건축 규제완화 시급
세대별 물량배분 방식 등 도입 필요
“주택 공급정책이요? 수요자가 원하는 지역에 원하는 주택을 충분히 지으면 되죠. 굳이 공공이 주도할 필요가 있을까요.”
지난 19일 서울 강서구 대한부동산학회 사무실에서 만난 대한부동산학회 이사장 권대중(63)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의 부동산 공급정책의 방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수익성이 나지 않는 주택 정비사업에 대해선 공공이 개입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선 민간이 주택 공급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정부가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지난 3월 31일부터 매주 내놓는 공공재건축·재개발,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등과 같은 주택 공급대책 후속조치들이 하나같이 ‘공공주도형’에 쏠려 있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권 교수는 학계에서 부동산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다. 1984년 감정평가 업체 근무를 시작으로 톰슨뱅크워치 신용평가, D&P A.M.C, 레피드코리아 등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2005년부터 명지대에서 후학 육성에 나섰다. 제17~18대 대한부동산학회 회장을 지낸 권 교수는 지금은 대한부동산학회 이사장과 한국부동산융복합학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는 오는 26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리는 ‘헤럴드부동산포럼 2021-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지속 가능한 주택 공급 방향’에서 좌장을 맡아 토론을 진행한다.
권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서 아쉬운 점과 잘하는 점 모두 ‘주택공급’을 꼽았다. “처음엔 공급이 부족하지 않다고 했던 정부가 집값이 오른 뒤 부랴부랴 공급 대책을 내놓더군요. 애초에 정책 방향을 잘못 잡았습니다. 다주택자가 가진 집을 내놓도록 하면 집값이 잡힐 것이라고 생각해 규제만 강화한 건데, 판단을 잘못한 거죠. 서울 강남만 타깃으로 삼아 재건축과 재개발을 막아 도심 주택 공급을 줄인 점이 가장 아쉽습니다.”
그는 정부가 뒤늦게라도 공급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은 다행스럽다고 했다. “2·4 부동산 대책이 뒤늦은 감은 있지만, 시장에서 요구하는 도심 내 공급 방안이 포함됐다는 점에선 긍정적입니다. 이제는 실천이 중요합니다.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 하면서 계획을 이행해야 합니다.”
권 교수는 앞으로 주택 공급정책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입주 시기 조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2·4 대책을 통해 서울에 2025년까지 32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습니다. 1기 신도시 5곳에 공급된 29만가구보다 많습니다. 여기에 3기 신도시 입주 물량, 임대등록이 끝난 물량 등이 맞물릴 수 있습니다. 공급 물량을 늘리는 동시에 시장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이끌어 갈 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그는 주택 공급 과정에서 주거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임대주택을 확충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봤다. 특히 ‘소셜 믹스’를 통해 같은 아파트 동에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이 혼재된 형태로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일본에서는 도심의 핵심 기능을 한 곳에 집약한 ‘콤팩트 시티’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도심지 내 교통이 편리한 지역을 고밀도로 개발해 주택 공급을 늘리면 그곳에 저소득층도 함께 들어와 살 수 있는 임대주택도 마련될 수 있죠. 이때 임대주택을 별도의 동으로 분리해 차별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됩니다. 또 임대 후 분양을 하는 주택보다는 영구 임대주택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장기간 살다가 내 집 마련이 가능한 시점에 이사할 수 있는 주거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어요.”
권 교수는 임기가 1년 남은 현 정부의 마지막 과제로 ‘정비사업 진입장벽을 낮추는 일’을 지목했다. 국민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게 결과적으로 이득이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재건축 안전진단에서 구조안전성 배점을 20점에서 50점으로 높였습니다. 구조적 문제나 재해 위험성에 따라 점수가 달라지는데, 당장 구조적인 문제가 없으면 재건축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주택은 시시각각 진화하는데, 단순히 구조적인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30~40년 전에 지어진 아파트에 그대로 살라는 의미에요. 안전진단은 아파트가 구조적·기능적으로도 문제가 없는지 뿐만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 토지가 최유효이용상태인지에 대해서도 점수를 매겨야 합니다.”
그는 켜켜이 쌓인 재건축 관련 규제도 정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합원 2년 실거주 의무, 재건축초과이익환수, 이주비 규제 등 재건축 규제가 많아요. 주택 공급 측면을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풀어야 합니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를 부담금이 아니라, 임대주택으로 대납할 수 있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죠. 조합원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상생하는 구조를 만들자는 겁니다.”
권 교수는 아파트 청약에서 불거진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할 색다른 해법을 제시했다. 현재 청약 제도는 무주택 기간(32점), 부양가족(35점), 청약통장 가입기간(17점)을 따져 가점을 매기기 때문에 20~30대는 현실적으로 분양받기 어려운 구조다.
“무주택기간과 부양가족 등을 따져 주택을 배분하면 20~30대는 무조건 불리합니다. 청약시장에서 소외받기 때문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로 일반 주택을 살 수 밖에 없죠.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일정 물량을 세대별로 배분해 그 안에서 경쟁이 이뤄지는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40대는 40대끼리, 30대는 30대끼리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그는 젊은 층이 주택을 사는 것뿐만 아니라 자가 주택을 보유·유지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젊은 층이 대출을 끌어모아 어렵게 집을 샀는데 세금 부담까지 커지면 버티기가 어려워집니다.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보유세·양도세 등 현 정부의 세제 개편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짚어봐야 합니다.” 양영경 기자
LH사태 이후…“제3자 명의 투기에 속수무책, 토지보상체계 바꿔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땅 투기 의혹에서 시작된 부동산 투기 문제는 현 정국의 최대 현안이자, 전 국민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주무 부처 장관이 물러나고 정부가 2·4 대책으로 조성하기로 한 신규택지 발표가 수개월 연기되는 등 파장이 상당하다.
대한부동산학회 이사장인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에 대해 “현 정부가 정의·공정에 무게를 두고 적폐 청산을 외쳤지만 실제로는 내부 단속조차 하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그는 정부가 국민 신뢰를 회복하고 부동산 투기를 원천 차단하려면 ‘토지보상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기를 통해 얻는 이익이 최소화되면 투기꾼들도 설 자리를 잃게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그렇게 된다면 최근 낱낱이 드러난 공공기관 직원이 내부 정보를 빼내 투기하는 일도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란 게 그의 주장이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제3자 명의로 투기를 한다면 이를 찾아내기 어렵습니다. 결국엔 토지보상법을 바꿔야 해요. 현재 사업인정고시일 기준으로 보상평가를 하는데요. 이 시점으로부터 2~3년 전 소유권이 넘겨진 토지도 실거래가 신고 내용을 다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감정평가 가격과 실거래 가격 중 낮은 가격으로 보상을 하면 됩니다.”
권 교수는 이 과정에서 토지 보유 기간에 따른 ‘차등적인 보상’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기 보유자에겐 투자금액 이하로 보상하거나, 투자금액만 보장해주는 방식도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는 LH 혁신안을 이달 중 확정·발표한다. 권 교수는 직원 1만여명에 달하는 공룡 조직인 LH의 각 기능을 효과적으로 분산하는 방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LH를 택지를 개발하는 택지공사와 건물을 짓는 주택공사, 지어진 주택을 관리하는 공사, 도시재생을 담당하는 공사 등으로 나누고 국토부가 이를 유기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맡으면 될 것”이라며 “한 곳에 과도한 정보가 집중되지 않으면서도 각 공사가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양영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