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아세안국가들의 일간지 1면은 제37차 아세안 정상회의와 관련된 기사들로 장식됐다. 특히 11월 15일 문재인 대통령 등 15개국 정상이 서명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은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침체를 타개할 적시타로 평가되기도 했다.

RCEP는 세계 최대 규모의 ‘메가 자유무역협정(FTA)’ ‘온라인 통상협정 서명 추진’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특히 베트남 등 아세안 몇 국가와는 세 번째 마주 앉는 통상 협정테이블로, 향후 우리 정부의 신남방정책 업그레이드를 위한 파트너십 강화의 기틀을 다졌다.

지난해 기준 RCEP 체결국과 한국의 교역 규모는 전체 교역의 49.98%를 차지한다. 아세안만 놓고 보더라도 14.5%로, 이미 우리의 주요 교역파트너로 자리 잡았다. RCEP 체결을 통해 기존의 한-아세안 FTA 대비 양허율이 높아졌고, 인도네시아·필리핀·태국의 문화콘텐츠, 유통·물류 부분 개방도 확대했다. 이는 ‘K-방역’부터 ‘K-흥’까지 아세안 전 산업에 확산된 한류와 한국 브랜드의 진출에 힘을 실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RCEP에서 합의된 저작권, 상표 특허 관련규범은 우리 기업의 피해, 이로 인한 한국산 제품의 신뢰도 악화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방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는 우리 기업의 상표 등록 지원을 통해 선제적 대응에 힘썼으나 RCEP에서 합의한 제도를 통해서는 상표출원을 거절하거나 등록을 취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이번 협약의 주요 성과 중 하나인 RCEP 체결국 간 단일 원산지 규정 사용과 RCEP 참여 국내의 모든 재료를 원산지 재료로 인정하는 ‘다자 재료 누적 제도’로 역내에서 해외 생산거점을 운영 중인 우리 기업의 원·부자재 조달과 역내수출 측면에서 활용가치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기준 한국 해외 투자 기업의 제조업 분야 중 78.4%가 RCEP 체결국에 집중돼 있다. 한국과 RCEP 국가의 대부분은 중간재 위주의 교역구조로 돼 있으며, 이미 글로벌 공급망도 구축돼 있다. 따라서 통일된 원산지 규정을 활용해 무역비용도 절감하고, 원산지 재료 선택의 폭을 넓혀 생산비용을 최적화하는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위협 요인도 있다. 제37차 아세안정상회담 기간에 동북아3국은 메콩강 유역 주도권을 잡기 위한 각축전을 펼쳤다. 이번 RCEP를 통해 좁게는 상품, 넓게는 아세안 국가와의 GVC 구축을 위한 경쟁에서 한·중·일 3각 구도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 된다.

통상 협정의 체결은 새로운 가능성과 경쟁 국면을 동시에 불러온다. 주요 경쟁국과 거대 경제권이 한 데 묶인 RCEP 속에서 23억명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위한 끊임없는 품질 개선과 합리적인 가격 정책에 대한 고민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번 RCEP 체결을 통해 마련된 다양한 장치를 딛고 아세안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의 ‘K-기업가 정신’이 한껏 발휘되기를 기대한다.

이종섭 코트라 동남아대양주지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