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vs 다주택자’ 정부 출범 초기부터, 다주택자=투기세력 규정
비규제지역·중저가에 매수수요 몰려
거래절벽이던 9월, 서울 아파트 매매 2030세대가 42%
편가르기 정책, 한계 올 수 밖에
[헤럴드경제=성연진 기자] “자기가 사는 집이 아니라면 파시라”
2017년 8월 8·2 대책 직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부동산 가격 상승의 원인이 다주택자 등 투기적 세력에 있다고 규정했다. 23번이나 내놓은 부동산 정책 방향도 이를 전제로 했다. 거주할 집이 아닌 주택을 사거나(취득세) 갖거나(보유세) 파는 것(양도소득세)에 세금을 무겁게 매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투기와의 전쟁’이란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7월 초에는 김현미 장관을 직접 불러 “다주택자 등 투기성 주택보유자에 대한 부담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7·10 대책에서 다주택자의 부동산 거래 관련 세금을 모두 중과하는 대책이 나왔다.
이처럼 정부가 다주택자를 적폐로 규정한 이유에 대해선, 노무현 정부에서 집값 긍등세를 막지 못한 이유를 다주택자 규제가 부족했다고 분석했기 때문으로 보는 이가 많다. 노무현 정부에서 발간한 ‘대한민국 부동산 40년’에 따르면, 2005년 서울 강남 등에서 30여 채 아파트와 상가 등 부동산을 한명이 한꺼번에 사들인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자금 출처가 정상적인 은행 대출 130여억원을 포함한 것이어서 막을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김현미 장관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담당자들의 뇌리 속에 깊이 남았다.
문제는 다주택자와의 전쟁을 위해 내놓은 23번의 대책에도 매맷값은 여전히 상승폭은 줄었으나 오름세를 보이고 있고, 전셋값은 아예 급등세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시장에선 이 같은 움직임을 전형적인 정책 부작용으로 보고 있다. 시장을 실수요자와 투기수요로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면서 주택수와 주택 가격으로 이를 규정하고 ‘핀셋규제’에 나섰는데, 이에 비규제지역, 중저가 주택 등에 무주택 매수 수요가 몰리기 시작했다.
실제 6·17 대책과 7·10 대책을 통해 법인과 다주택 등 실거주 외 수요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이후,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는 큰 폭으로 감소했지만 2030 세대의 매매 비중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9월엔 서울 아파트 매매량 4795건 가운데 20대(204건), 30대(1790건)으로 매수자의 41.6%가 2030세대로 집계됐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투기라는 적폐를 누르면 왜곡된 시장이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만든 정부 규제는 오히려 부동산을 이슈화시키고 빨리 집을 사야한다는 불안감만 키웠다”며 “특히 지난 3년 간 집값 상승을 지켜봐온 이라면 더욱 매수심리가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다주택자=투기세력’이라는 프레임도 지나치게 반시장적이란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한 부동산전문가는 “다주택자 및 고가주택보유자, 임대사업자 가운데는 일부 투기적 세력도 있겠지만, 모두를 싸잡아 투기세력이라고 규정짓고 편 가르기식 정책을 내놓는 것은 지나치게 폭압적”이라고 말했다.
다주택자 규제를 강화한 정부 고위 인사 중 다주택자인 것도 ‘모순’ 논란을 불러왔다. 국민에겐 살지 않는 집은 팔라했는데 3년간 매도하지 않고 버틴 주요 공직자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지난 7월,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라디오에 출연해 청와대 다주택 인사들이 집을 매도하지 않는 데 대해 “개인 사정을 설명한다고 국민에게 납득되는 것은 아니다”고 한 바 있다.
2017년 6월 취임식에서부터 강남 집값 상승을 다주택 투기적 매매 때문이라고 언급했던 김현미 장관도 당시, 다주택자였다. 그는 8·2 대책을 내놓으며 “2018년 4월까지 파시라”는 본인 말에 따라, 경기도 연천 단독주택을 동생에게 팔기도 했다.
부동산 정책 수장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다주택자 논란이 일자 경기도 의왕 아파트를 팔았으나, 세입자가 갑자기 계약갱신청구권을 요구해 매매 계약 마무리가 늦어졌다.
결국 세입자에게 ‘퇴거위로금’을 지급하면서 겨우 다주택자 꼬리표를 뗀 것으로 알려졌으나, 경제수장이 임대차시장의 ‘뒷돈’을 지급한 데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yjsu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