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료원 집단유산사고 6년만에 결론

대법 “임신 여성근로자의 업무로 발생한 태아 건강손상은 업무상 재해”

태아의 산재보험 청구·수급권이 산모에게 있다고 인정

대법원 전경
대법원 전경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근로자 본인이 아닌 태아에 대해서도 산업재해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29일 제주의료원 간호사였던 변모 씨 등 4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신청 반려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산모의 업무로 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출산 이후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에 대해 엄마는 요양급여를 받을 권리(수급권)를 잃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산재보험법상 모체와 태아는 ‘본성상 단일체’로 취급하기 때문에 출산으로 엄마와 태아가 분리됐다고 엄마가 요양급여를 받을 권리를 잃는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또, “여성근로자와 태아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요소로부터 충분히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소송을 제기한 제주의료원 전 간호사 변 씨 등 4명은 태아의 질병에 대한 요양급여를 직접 받을 수 있게 됐다.

제주의료원 소속 간호사 4명은 2009년 임신해 2010년 출산했는데, 태아 모두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졌다. 이에 앞서 같은 기간 병원에 근무하다 임신한 간호사 15명 중 5명은 유산했다. 6명만이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 이듬해 간호사 12명이 임신했지만 33%인 4명이 유산했다.

변 씨를 비롯한 간호사 4명은 알약을 삼키기 힘든 환자를 위해 약을 빻는 과정에서 산모와 태아가 치명적인 유해약물에 노출됐다며 2012년 근로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공단은 “업무상 재해는 근로자 본인의 부상과 질병, 장애 또는 사망 등에만 해당된다”며 거부했다. 변 씨 등 4명은 2014년 2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산모 외에 태아의 건강도 업무상 재해대상에 포함되며, 태아가 아닌 어머니가 보험금 수급자가 될 수 있는지 여부였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40조(요양급여)에 따르면 요양급여는 근로자가 업무상의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경우에 그 근로자에게 지급한다고 규정돼 있다.

재판과정에서 간호사 측은 태아의 건강과 산모의 업무환경이 연관관계가 있다는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역학조사 결과를 제출하고, 태아의 선천적 질환은 산모의 뱃속에 있었을 때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산모가 산재보험금을 요구하고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근로공단은 ‘여성근로자가 유해환경에서 근무하다가 태아에게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보상할 수 있는 입법적 개선조치가 필요하지만 현행법상 업무상 재해는 본인이 입은 피해에 국한된다’는 고용노동부장관의 의견서를 자료로 제출했다.

1심 재판부는 “태아에게 독립된 인격이 없기 때문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법적 권리·의무는 모체에게 귀속된다”며 “임신 중 업무로 인해 태아에게 발생한 건강손상은 산재보험법상 임신한 근로자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로 보아야 하고, 출산 전후를 불문하고 치료를 위한 요양급여를 제한없이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산재보험 급여를 받으려면 업무상 사유로 다치거나 질병에 걸린 본인이어야 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특히 아기에게 급여를 받을 권리가 있는지 여부를 떠나 현행법상 태아의 질환을 어머니가 산재적용 받도록 하는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산재보험금은 청구권자(요청자)와 수급권(취득자)자가 같아야 하는데, 태아 혹은 출산한 자녀가 아닌 모체에게 청구권을 인정하면 출산아동의 수급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