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전 꼭 이맘 때, 태평로 한 빌딩에서 전시를 위해 내한한 재일작가 이우환 화백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그는 국내에선 그닥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외에선 백남준 다음으로 꽤 유명했다. 이 화백은 그때 “조국에 오는 게 불편하다”고 했다. 아프리카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편치 않다고도 했다. “돌아오고 싶은 생각이 없고 먼 훗날에도 없는 게 좋다”며 다짐하듯 말했다. 그때 이 화백의 나이 예순일곱이었다. 그 나이쯤이면 없는 고향도 그리워지는 법인데 일본에서 40년 넘게 이방인으로 살면서도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그의 속이 무척 궁금했다. 그런데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돌들이 대답을 대신해줬다. 한국 남단 시골마을에서 자란 그에게 산과 들, 강가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 돌은 재료로 자연스럽게 그의 그림속에 담겼다. 그의 작품의 일관된 주제인 관계도 그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편견에 화도 나고 눈물도 많이 흘렸던 그로선 가장 풀기 어려운 화두였을 것이다. 이우환이 세계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최근 3년여 동안 가장 많이 거래된 생존작가 톱100 중 47위에 올랐다. 이우환의 작품 낙찰 총액은 3766만달러(약 400억5000만원)으로 모두 274차례 경매됐다. 이 명단에 이름을 올린 한국 작가는 이우환이 유일하다. 세월이 흘러 그는 지금 국내에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대구시가 이우환미술관을 짓겟다고 발벗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화백은 개인미술관을 원치 않는다니 아이러니하다. 11년전 그가 털어놓은 예술에 대한 생각이 귓전을 울린다. “예술은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에요. 무엇을 억지로 믿게 하거나 떠안게 해서는 안 돼죠. 내 작품을 보면서 뭔가 의문을 갖고 되돌아보게 되기를 원해요.”
이윤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