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동력 콜드체인 물류 아시아로 확대
냉장·냉동 차량 없어도 ‘그리니박스’로 콜드체인 가능
한국 산지서 동남아까지 24시간 내 배송…‘물류 한류’ 겨냥
코로나19로 모든 장보기가 멈추고 배송으로 대체되는 시대. ‘콜드체인(저온 배송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신선배송 경쟁이 뜨거운 와중에 창업 5년차 스타트업이 판을 동남아시아로 넓혔다. 하루만에 동남아시아까지 가는 신선배송을 냉장차량 동원 없이 100% 콜드체인으로 담당한다.
에스랩아시아(대표 이수아)가 내놓은 이 결과는 ‘그리니박스(greenie box)’라는 상자 덕분이다. 그리니박스에 담아 보내면 국내에서 채취한 전복이나 바지락을 동남아시아까지 살아있는 상태로 보낼 수 있다.
비결은 그리니박스 내부를 감싸고 있는 내장재. 이수아 에스랩아시아 대표는 플라스틱 상자 안에 단열내장재를 넣고 열융합으로 접합해 그리니박스를 만들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플라스틱 상자가 아무런 동력 배송없이도 24시간 동안 내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주는 ‘마법’을 발휘한다.
이 대표는 원단과 국내·해외에서 조달한 특수필름을 섞어 그리니박스에 들어가는 내장재를 직접 개발했다. 창업 전 상사에서 원단을 소싱하고 개발하는 업무를 했던 경험이 바탕이 됐다. “보통 단열 기술은 건물 내장벽이라던지 하이테크인 반도체나 폴리실리콘 쪽에서 많이 나오는데, 저는 왠지 원단으로 해보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중국에 있는 500개 업체를 훑어 원단을 받아다 밤새 연구했습니다. 여기에 국내와 해외에서 받은 특수필름을 조합해서 만든 이종접합형 내장재예요.”
첫 시도였던 1세대 내장재는 단열효과가 8시간이었다. 2세대는 15시간까지 늘렸고, 현재 사용하는 3세대에 와서야 24시간 단열효과가 나왔다. 자체 테스트 결과 강화도에서 바지락을 실어 싱가포르에 도착할 때까지 그리니박스 내부의 온도 변화는 2.6℃에 불과했다. 이 대표는 “2.6도는 사람이 아침부터 점심때까지 겪는 온도 차이보다 더 적은 수준”이라며 “살아있는 조개가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은 상태로 배송이 완료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신선물류 패키지를 상용화 가능한 가격으로까지 낮췄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싶다”고 전했다. 기존에는 신선식품을 수출한다면 수출용 스티로폼 박스에 보냉재과 함께 채워서 냉장 트럭, 비행기를 거쳐 보내야 했다. 수출용 스티로폼은 두껍고, 내부에 보냉재도 들어가 무거워지면서 항공 단가가 올라갔다. 과일은 아직 절반도 익지 않은 것을 따다 운송하는 과정에서 후숙시켜 판매했다. 당연히 맛이 산지를 따라갈 수 없었다. 운송 패키지가 일회용이라는 점도 비용과 환경오염 측면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그리니박스는 수출용 스티로폼보다 가볍고, 최장 5년까지 계속 쓸 수 있다. 비용은 하나 당 25만원 선이지만 렌탈로 이용하면 운송 횟수당 단가는 더 낮아진다. 이 대표는 “제주도에서 싱가포르까지 감귤을 운송하는 경우, 기존 방식보다 운송료가 30% 절감된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콜드체인 플랫폼이 없었던 생산자들도 간단히 신선물류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그리니박스의 기술을 그대로 접목시켜 크기를 키우면 냉장 팔레트, 냉장 트럭, 냉장 창고까지 대체할 수 있습니다. 테스트를 위해 작은 방 크기의 그리니박스를 만들었는데, 단열효과가 좋아 아예 냉장 창고로 상용화 하고 있어요.”
냉장트럭 대체품이 된 그리니박스는 수도권 신선배송에 쉽게 도전하지 못했던 지역 영농조합 등에서 수요가 치솟고 있다. “냉장 시설이 갖춰진 트럭은 가장 적은 용량이 1t인데, 신선배송을 하는 유통회사들이 많아지면서 구하기 힘들어졌어요. 간신히 트럭을 구해도 소규모 영농조합은 1t을 다 채우기 어렵습니다. 그리니박스를 이용하면 냉장트럭이 없어도 산지에서 배송지까지 내부 신선도가 유지됩니다. 콜드체인 시스템이 없어 e커머스가 불가능했던 분들도 신선 물류가 가능해진 거예요.”
이 대표가 그리니박스를 동원해 신선물류에 도전하게 된 것은 본인이 직접 수요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2014년 출범한 에스랩아시아는 본업이 물류가 아닌, 화장품 등 한국 제품을 동남아시아로 수출하는 유통업이었다. “동남아로 들어가는 물류에서 계속 문제가 생겼어요. 적정 보관 온도가 15~25℃인 화장품이 동남아에서는 땡볕 아래 50~60℃까지 온도가 올라가는 양철지붕 창고를 거칠 정도였습니다.”
보다못해 직접 물류에 뛰어들었다. 말레이시아 법인에서 냉장이 되는 화장품 창고를 만들자, 식품 유통사에서도 창고를 쓸 수 있겠냐고 문의가 왔다. “알고보니 DHL이나 페덱스가 의약품을 수송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동남아에서 콜드체인 물류가 아주 드물더라고요. 수요는 충분한데 신선물류 문제를 해결한 회사는 에스랩밖에 없으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에스랩아시아는 2016년부터 콜드체인 물류를 주 업종으로 전환했다. ‘24시간 선도 유지’라는 그리니박스의 조건을 살리려면 그 외 육상, 항공 운송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했다. 에스랩은 동남아시아와 미국까지 5개국에 법인을 세우고 300여개의 물류 면허를 직접 취득했다. 항공 운송과 현지 육상운송만 빼고 전 과정을 직접 담당한다.
“그리니박스를 활용한 콜드체인 물류를 완성하려면 최적의 루트를 확보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시간대 비행기를 예약할 수 있어야 하고, 신선식품이 들어오자 마자 바로 통관해야 선도를 유지할 수 있어요. 진출한 국가마다 통관 면허까지 다 확보한 상태입니다.”
최적의 운송을 위해 에스랩아시아는 IoT(사물인터넷)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물류 시스템도 구축했다. 그리니박스마다 부착된 추적장치, 날씨 데이터, 수십만건의 운송 결과 등을 활용해 만든 시스템이다. “회사 내부에서는 물건이랑 도착지, 출발지를 입력하면 자동적으로 최우선 운송 방법을 찾아주는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어요. 그 동안 축적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떤 운송방식을 택하면 언제 도착할지 등이 90%의 확률로 예상됩니다. 나중에는 AI가 최적의 운송방법을 찾아주는 시스템을 만드는게 목표예요.”
에스랩아시아는 물류에 집중한 이후 2년만인 2018년에 18억원의 매출을 냈다. 이 대표는 “올해는 최소 100억원의 매출을 내겠다”고 다짐했다.
“콜드체인 물류를 하는 회사라면 환경에 대한 고려를 안할 수 없어요. 냉장 트럭은 물건을 싣기 1시간 전부터 엔진을 가동시켜야 해서 환경에도 안좋은 영향을 주고, 비용도 많이 들어가는 구조입니다. 포장재를 보더라도 재활용이 가능해야 환경에 부담을 덜 주는데, 여름에는 종이 등 친환경 포장재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비용도 줄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친환경 운송 시스템을 고려해야 해요. 지난해까지는 포장재 등을 개발하느라 매출은 크게 신경쓰지 못했는데, 올해부터 성과가 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올해는 그리니박스도 대규모 추가 투입이 예정됐다. 10kg을 싣는 그리니박스는 기존 1000개에서 이달 말까지 3000~5000개를 추가 생산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물류에서는 아직 미미한 숫자”라며 “10만개 생산까지가 목표”라고 전했다.
도현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