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데이터] 가동 중단 손실에도 협력사에 1조 지원…차산업 뿌리지키기 나선 정의선 부회장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우리(현대·기아차)도 힘들지만 협력업체부터 챙겨야 합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신종 코로나 사태로 뿌리부터 흔들리는 국내 자동차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중대 결단을 내렸다. ‘와이어링 하니스’ 부품 부족으로 생산을 중단한 현대·기아차와 계열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 협력업체의 줄도산을 막기 위해 1조원을 지원키로 한 것이다.

쌍용자동차에 이어 현대·기아차가 생산 중단에 들어가면서 ‘와이어링 하니스’ 부족 사태는 국내 자동차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현대차의 국내공장이 7일부터 대부분 가동중단에 들어간다. 11일엔 팰리세이드, GV80, 싼타페, 투싼 등을 생산하는 울산 2공장만 가동할 예정이다. 기아차는 소하리, 광주, 화성 공장에서 10일 완성차 생산을 중단한다.

정 수석 부회장은 현대차와 기아차의 생산 중단으로 협력업체가 자금난을 겪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듣자 협력업체에 경영자금 3089억원을 이달 중순부터 무이자로 지원하도록 지시했다. 납품 대금 5870억원과 부품 양산 투자비 1050억원도 조기에 결제하도록 했다. 지원 대상에는 1차 협력사 뿐 아니라 2·3차 협력사까지 포함돼 총 지원대상 기업이 350여개사에 달한다.

이번 생산 중단으로 현대·기아차가 입을 손실만 7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인 만큼 현대차 그룹도 1조원 규모의 지원이 부담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정 수석 부회장은 어려운 시기일수록 현대차그룹의 경쟁력의 기반이 되는 협력업체를 먼저 생각하는 ‘상생 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 부품 협력사들은 금융권의 높은 금리와 깐깐한 대출 심사의 벽에 걸려 경영 자금을 적기에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부품업계 관계자는 “자금 동원력이 부족한 중소 부품 협력사는 납품대금 입금이 늦어지면 바로 자금난에 시달리게 되고 자칫 파산에 이를 수 있다”면서 “이번 긴급지원으로 ‘가뭄 속 단비’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협력업체에 대한 정 부회장의 배려는 자금 지원에 그치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은 와이어링 하니스 생산 핵심 거점인 산둥성에 공문을 보내 일부 공장이라도 가동을 재개할 수 있도록 승인해 달라고도 요청했다.

국내 완성차 업체가 중국에서 수입하는 와이어링 하니스 비중은 전체 소요량의 87%에 달한다. 부품부족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는 것은 현대·기아차 외에도 쌍용차와 르노삼성자동차 등 경쟁업체도 마찬가지다. 국내 자동차 산업이 닥친 공통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정 부회장이 ‘선봉장’ 역할을 자처한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눈앞의 손익을 따지기 보다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그의 거시적 안목은 다른 대기업도 본받을 점”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원호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