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아이들ㆍ있지(ITZY)…전에 없던 여자 아이돌의 등장
태연·림킴, 작가주의ㆍ여성주의 부각한 여성 뮤지션 강세
일시적 트렌드 아닌 시대의 흐름…“새로운 여성 뮤지션을 원하는 시대”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여자) 아이들’은 전에 없던 여자 아이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귀엽거나 예쁘거나, 사랑스러워야 했고, 청순과 섹시를 오가는 ‘여성성’을 기대하는 시선에서 벗어나 있다. 지난해 발표한 ‘라이언(LION)’은 전형적인 걸그룹의 노래와도 다르다. 이 곡은 개인의 품격을 ‘사자’에 비유했다. ‘동물의 왕’으로 군림하는 사자의 고고한 자태, 정글에서의 싸움과 인내의 과정을 가사로 담아냈다. ‘사랑’과 ‘이별’ 노래 일색의 가요계에 신선한 파장이 일었다. ‘여자 아이돌’이 노래의 주체라는 점은 더욱 파격적으로 비쳤다. 이 곡은 2020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 노래 부문 후보에 올랐다.
(여자) 아이들과 함께 ‘걸그룹’의 세대교체를 이끈 또 다른 주인공은 있지(ITZY). 지난해 발표한 ‘달라달라’는 음악부터 독특했다. 현재 전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서 가장 파괴력 있는 장르로 자리잡은 힙합과 일렉트로닉을 가미하면서도 독보적인 멜로디를 구축한 ‘팝’ 음악이다. 난해하고, 낯설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이 노래를 소화하는 있지는 ‘완성형 아이돌’의 모습을 보여주며 ‘틴크러시(10대+걸크러시:센 언니)’의 중심에 섰다. 이 곡 역시 2020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 노래 부문 후보에 올랐다. (여자) 아이들과 있지는 S.E.S와 핑클에서 에이핑크, 여자친구로 이어지는 소녀 콘셉트의 전통적인 여자 아이돌의 모습에서 벗어난 그룹이다.
‘예쁘다‘는 수사는 사절이다. 이제 대중음악계에선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주는 ‘아티스트’들이 주목받고 있다. 여자 아이돌은 ‘걸그룹’의 전형을 깼고, 여자 솔로 가수들은 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대중 앞에 서고 있다. ‘여풍’의 중심에는 달라진 여성상과 작가주의·여성주의가 등장한다는 ‘특이점’이 발견된다.
박희아 대중음악평론가는 “최근 들어 여성 뮤지션들이 도드라지고 있다”며 “우리가 평소 접했던 청순한 아이돌 혹은 ‘예쁘다’ ‘귀엽다’는 이미지로 설명되지 않는, 다양성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눈에 띄고 있다”고 말했다.
소녀시대 태연은 여자 아이돌 그룹으로 정점에 오른 탁월한 보컬리스트다. 요란스럽게 활동하진 않지만, 꾸준히 신보를 내고 있다. 지난해 발매한 ‘퍼포즈(Purpose)’는 각종 음원, 음반 차트 1위를 휩쓸며 메인스트림에 있는 솔로 여가수의 저력을 보여줬다. 특히 이 앨범은 아이튠즈 앨범 차트 전 세계 21개 지역 1위에 오르며, 한국 여자 솔로 가수 앨범 사상 최다 1위를 달성하는 파괴력을 보여줬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태연은 작사 작곡을 하진 않지만, 곡을 수집하는 면에서 자신이 주도적으로 어울리는 음악을 찾고 있는 아티스트”라고 설명했다.
‘림킴’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온 ‘투개월’ 출신 김예림의 등장은 ‘파격’이었다. 림킴은 자신을 둘러싼 많은 것을 깼다. 기획부터 콘셉트, 음악의 메시지에 이르기까지 대중음악의 한 ‘전형’을 탈피했다. 거대한 음악 산업 시스템을 벗어나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기획했고, ‘클라우드 펀딩’으로 완성해 EP앨범을 발매했다. 음악이 전달하는 메시지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실었다. 타이틀곡 ‘옐로(yellow)’와 ‘몽(mong)’을 비롯한 총 6곡은 ‘동양’과 ‘여성’을 주제로 삼았다. 동양 여성으로의 정체성을 담아낸 메시지는 그동안의 K팝이 시도하지 않은 영역이었다. 남성의 시선에 갇히지 않고, 주체적의 삶을 살겠다는 가사는 새로운 여성상을 전면에 내세운 시도였다. 박희아 평론가는 “림킴은 솔로 음반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이 정립한 프로듀싱과 퍼포먼스, 메시지, 음악을 구성하는 포맷 등 여러 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자신의 감성을 담은 음악을 선보이며 ‘시티팝’의 유행을 불러온 백예린이나 인디신의 ‘핫’ 아이콘으로 떠오른 새소년의 황소윤, 카코포니도 여성 아티스트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사례다. 정민재 평론가는 “앞서 엄정화 보아 아이유 등이 작가주의 성향이 두드러진 톱가수로 주목받아왔다”며 “현재는 과거 10~15년 전보다 여성 가수들의 작가주의가 두드러지고 있다. 보다 내밀하고, 개인적이고, 자신의 목소리를 강조하는 시도가 많이 생겼고 퀄리티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작가주의’와 ‘여성주의’가 등장하는 것은 일시적인 트렌드가 아니다. ‘82년생 김지영’의 등장 이후 대중문화에서도 여성주의에 대한 시선과 포용이 달라졌으며, 사회가 요구하는 성(性) 역할을 거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또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당당한 여성 뮤지션을 향한 선호도 높아지는 추세다.
정 평론가는 “림킴이나 황소윤이 대중적 폭발력을 얻지는 못했으나, 마니아의 반응을 상당했다”며 “새로운 여성상, 새로운 음악을 보여주는 아티스트가 주목받는 것은 우리 시장에서도 달라진 여성 아티스트와 음악을 기대하고 원한다는 시각이 존재한다는 방증이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