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방송은 항상 공익보다 시장논리가 우선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교회·학교만큼은 시장이 침투해 들어가서는 안 되는 성역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1980년 이전으로 국한된다.

레이건 정부가 각종 방송 규제를 철폐하면서 케이블 방송이 증가하고 케이블 방송의 가입자 숫자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방송시장이 공중파와 케이블로 양분된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브로드캐스팅하는 공중파에 맞서 케이블 방송은 세분화된 시청자를 대상으로 내로우캐스팅한다.

방송 규제철폐와 함께 무엇이 엔터테인먼트이고 무엇이 광고인지를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로웰 팍슨 이 홈쇼핑방송 홈쇼핑네트워크를 시작한 것은 1981년이다.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 곳곳에 광고가 들어가면서 평범한 가정의 거실마저도 시장 바닥을 방불케 한데 이어 광고 그 자체를 엔터테인먼트로 만든 것이다. 이제 미국인들은 광고만으로 이루어진 방송도 시청하기 시작한다. 1993년 홈쇼핑방송의 매출은 22억 달러를 기록한다.

방송 규제철폐는 어린이 프로그램도 광고로 도배한다. 네켈로데온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주로 만화영화를 방송한다. 미키 마우스는 먼저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얻는다. 다음으로, 미키 마우스를 캐릭터 상품으로 만들어서 판매한다. ‘프로그램 광고’(PLC )는 더 이상 그렇게 긴 시간을 들일 필요도 없어졌다.

어린이 프로그램 그 자체가 광고인 동시에 광고가 어린이 프로그램이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 광고를 시청한 어린이들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본 장난감을 산다. 바로 이 장난감이 판매 상위 10위를 석권한다. 어린이들의 놀이는 장난감 수집으로 바뀌어간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가정에 이어 교실도 시장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한다. 1989년 제임스 휘틀(James Whittle)은 케이블 방송 ‘채널 원’ 을 설립하고 공립학교에서 중고등학생들에게 12분짜리 청소년 뉴스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5만 달러 상당의 방송장비 구매대금을 공립학교에 대출 해 주고 2분 분량의 광고를 실어서 미국 전역 8,000개 공립학교 600만 명 10대 청소년들에게 뉴스를 방송한 것이다. 1996년 약 40%의 미국 10대 청소년들이 교실에서 채널 원 뉴스를 시청한다. 그 해 2,200만 명에 달하는 미국 청소년들은 휴가시즌에만 75억 달러를 소비한다.

레이건 연합을 구성한 신보수주의자들은 각종 방송규제를 철폐함으로서 개인주의와 시장을 강화한다. 한편으로 가족과 자기절제라는 미국적 가치를 복원하고, 다른 한편으로 1970년대 정부실패에 대한 대안으로서 시장의 복귀를 실행한다. 전통적 가치의 복원은 엔터테인먼트에서 문화전쟁으로 전면에 부상한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시장으로의 복귀를 구현한다. 그러나 실현된 것은 부강한 미국과 근면성실한 미국인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와 광고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소비사회의 도래였다.

우리는 지난 2011년 종합일간지에 종합편성 채널을 배정했다. 구독자가 줄어들면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종합일간지는 단숨에 미래를 보장받는다. 그 대신 엔터테인먼트와 광고의 경계가 허물어진 소비사회의 부조리를 우리사회에 떠안겼다. 방송규제를 철폐하면서도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