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구조조정 판에서 자기 역할을 드러내기 시작한 자본시장 플레이어들의 기를 꺾는 일이 생겼다. 자본시장이 주도하는 기업구조조정을 활성화하고자 정부가 내놓은 방안에 국회 예산정책처가 ‘이미 충분히 돈이 많다’며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정부가 약 1년 반 전에 내놓은 기업구조혁신펀드는 정책금융기관의 출자금과 민간자금을 합쳐 약 1조5000억원 규모로 조성돼 있다. 내년에는 산업은행(1000억원) 등 기관의 추가 출자로 펀드 규모를 1조원 더 확대할 방침이다. 그러나 예산정책처는 1조5000억원 펀드 중 아직 5000억원밖에 소진하지 못했는데, 여기에 1조원이 추가되면 집행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무리한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재 구조조정 투자를 필요로 하는 기업들의 규모와 이들을 지원할 투자자들의 역량까지 감안하면, 오히려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해도 과하지 않다. 지난해 상반기 은행이 보유한 부실채권 규모 약 18조원에 비해 턱없이 적고, 이마저도 4~5년간 분산투자돼 내년 실제 실탄은 5000억원 뿐이다. 예산정책처는 최근 1년 반 동안의 투자 집행 실적이 5000억원에 그치지 않았느냐고 지적했지만, 들여다 보면 위탁운용사들이 펀드 결성을 마친 지난 4월 이후 6개월 만에 4500억원이 투자됐다. 이 역시 자금을 굴릴 6개 공장(현재 총 6곳의 위탁운용사 선정) 중 3개 공장만 가동을 시작한 상황에서 확인되는 속도다. 내년 이후 9개 공장이 돌아가고, 프로젝트성으로 펀드를 찾는 투자자들이 많아지면 1년간 1조 투자도 무리가 아니다.
기업구조혁신펀드의 규모 확장에 제동이 걸리면, 무엇보다 10년 만에 ‘물’을 만난 구조조정 전문가들이 다시 고개를 숙일 공산이 크다는 점이 문제다. 그간 구조조정 시장 내 자본시장의 역할이 거의 전무했다보니,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경험하며 구조조정 역량을 축적해 온 전문가들은 바이아웃, 부동산, 부실채권(NPL) 등으로 각각 흩어져 있었다. 외국 자본의 먹튀 등 값비싼 수업료를 내고 비로소 국산화된 구조조정 전문가들이 생겨났지만, 정작 시장 밖에서 활약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이들이 다시 모여 산업 선순환에 기여할 ‘긍정적 경쟁’을 시작한 것은 기업구조혁신펀드에 대한 기대감이 조성된 최근 1~2년 사이다. 이제야 첫발을 뗐는데, 벌써부터 발목이 잡혔다.
단순히 개별 기업 차원의 재무구조조정이 아닌, 격변하는 환경에 대응할 산업구조조정으로 역량을 제고하는 차원에서도 구조혁신펀드의 성장이 필요하다. 펀드의 규모와 그에 따른 고정 운용수익이 커져야 운용사들도 각 산업현장의 고급 인력들을 영입할 여유가 생긴다.
기업이 가장 절실하게 외부의 손길을 기다리는 순간은 창업 및 벤처의 단계와, 한차례 꺾인 뒤 재기를 노리는 단계다. 전자의 경우 다행히 ‘일자리 창출’을 강조한 현 정부의 방향성과 맞물려 자금이 풍족하게 지원됐고, 이제는 오히려 과잉공급에 따른 부작용을 걱정할 수준이다. 반면 ‘일자리 유지’를 책임질 구조조정 시장은 이제야 관심을 받고 있는데, 그마저도 바로 식을 것 같아 안타깝다.
최준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