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ger Woods. Photo credit Getty Images
타이거 우즈가 조조챔피언십 첫날 선두로 마쳤다. [사진=PGA투어 게티이미지]
1935 일본 선수 Us오픈.JPG
1935년 US오픈 출전한 일본 선수 6명(아사미 로쿠조, 야스다 하루오, 미야토모 토메키치, 나카무라 가네키치, 야누마 유타카, 토다 도이치로)과 대만인 친 세이하. [자료=USGA]

[헤럴드경제 스포츠팀= 남화영 기자] 일본에서 처음으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조조챔피언십이 열리고 있다. 아시아에서 개최한 미국 정규 투어 순서로 치자면 말레이시아의 CIMB클래식, 중국의 HSBC챔피언스, 한국의 더CJ컵에 이어 네 번째다. 하지만 일본의 미국 골프 진출 역사는 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저이면서 오래고 선수층도 깊다. 일본의 경제 규모와 골프 시장이 크기 때문에 PGA투어 아시아 본부도 도쿄에 있다. 일본남자 프로골프(JGTO)는 미국, 유럽에 이어 세 번째 투어 규모이고 대회마다 월드골프랭킹(OWGR)포인트도 아시안투어보다 높게 받는다. 이는 오래 전부터 일본이 PGA투어에 꾸준히 진출하면서 관계를 쌓아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조조챔피언십 2라운드까지 선두로 나서 흥행몰이를 주도하는데 우즈는 일본 대회가 낯설지 않다. 2001년 월드컵에 데이비드 듀발과 함께 출전했고, 일본남자프로골프투어인 던롭피닉스오픈에서 2승을 거뒀으며 2006년까지 출전했다. 한국에는 2004년에 제주도 라온골프장에서 열린 하루짜리 스킨스게임과 2011년 강원도 춘천 제이드팰리스에서 열린 반나절 레슨 이벤트에 참가했던 게 전부였다. 한국은 1958년에 첫 프로 대회가 열린 만큼 남자 골프 시작과 선수의 배출도 일본보다 월등히 뒤쳐졌다. 하지만 오늘날 선수들의 미국 진출과 활약상에서 일본을 앞선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PGA투어가 열리는 것을 계기로 한국과 일본의 미국 투어 진출사를 비교해보았다.

이사오아오키 1982
1982년 이사오 아오키가 활동하던 당시. [사진=PGA투어]

첫 출전: 1973 vs 1929 한국 선수의 PGA투어 첫 출전은 한장상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고문의 1973년 마스터스다. 1972년 일본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이듬해 초청받아 출전했고, 한 타차로 컷 탈락했다. 일본 선수들이 미국 투어에 진출한 건 1929년 하와이안오픈(오늘날 소니오픈)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크레이그 우드가 우승한 이 대회에 일본 선수 중에 미야모토 도케미치가 공동 13위, 야스다 하루오가 공동 17위, 나카무라 가네키치가 공동 22위로 마친 것이 첫 성적이었다. 하지만 당시 하와이는 정식 미국 영토는 아니었다. 1935년 5월, 피츠버그 외곽 오크몬트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US오픈에서 일본 선수 6명과 대만 선수 1명이 출전했다. 미국 본토에서 열린 골프 대회에서의 일본 선수의 첫 출전이었다. 아사미 로쿠조, 야스다 하루오, 미야토모 토메키치, 나카무라 가네키치, 야누마 유타카, 토다 도이치로, 대만 출신으로 일본에서 자란 친 세이하는 당시 수퍼스타급 인기를 누리던 월터 하겐의 초청으로 골프 전시회 관람을 위해 미시간에 왔고, 일주일 뒤에 이 대회에 출전했다. 나카무라가 유일하게 컷을 통과해 공동 58위로 마쳤다. 그들은 인디애나로 옮겨 웨스턴오픈(오늘날의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BMW챔피언십)에도 출전했는데 아사미가 유일하게 컷을 통과해 공동 15위로 마쳤다. 이듬해인 1936년에 토다 도이치로는 정규 멤버는 아니면서도 9개의 PGA투어 대회에 출전했다. 플로리다에서 열린 홀리우드오픈에서 공동 2위로 마친 게 가장 좋은 성적이었고,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카탈리나오픈도 5위였다. 친 세이하와는 마스터스에 함께 출전했는데 친이 공동 20위, 토다는 공동 29위로 마쳤다.

한국일본 남자 미국투어 진출사.JPG

첫 회원: 2000 vs 1981한국과 일본투어에서 활동하던 최경주는 영어를 못하고 미국에 연고도 없는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에 ‘탱크’라는 별명답게 미국으로 가 퀄리파잉 테스트를 통과해서 2000년부터 미국투어 생활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02년 컴팩클래식에서 첫 승을 거뒀다. 현재 JGTO 회장인 이사오 아오키는 1974년에 PGA투어 하와이안오픈으로 미국 대회에 처음 출전해서 공동 36위로 마쳤다. 이후 1981년에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정규 멤버가 됐고, 또한 일본인 중에 첫승을 거뒀다. 오늘날 소니오픈으로 불리는 하와이안오픈에서 투어 3년차인 1983년 대회 마지막 72번째 홀에서 피칭 웨지로 홀인하면서 이글을 기록하면서 극적인 피날레를 장식했다. 당시 잭 레너를 한 타차를 제친 우승은 아시아인으로는 첫 번째 PGA투어 우승이었다. 아오키는 이후 1980년에는 발투스롤에서 열린 US오픈에서 잭 니클라우스에 이어 2위로 마치기도 했다. 정규 투어 우승은 한 번이지만, 50세 이상의 무대인 챔피언스투어에 가서는 9승을 쌓았다. 미국 투어에서 활동했던 또 다른 주요 선수로는 마사시(점보) 오자키가 있다. 일본투어에서 94승을 쌓은 전설적인 선수인 오자키는 메이저 대회에서는 세 번이나 톱10을 했지만 우승은 없었다. 일본투어에서 48승을 거둔 토미 나카지마 역시 1988년 PGA챔피언십 3위에 PGA투어에서는 톱10에 여섯 번 드는 데 그쳤을 뿐 트로피를 들지는 못했다.

마쓰야마 히데키 10번홀 페어웨이 벙커샷
마쓰야마 히데키는 오늘날 PGA투어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일본 선수다.

메이저급 우승: 2009 vs 2016 한국에서 최경주는 이후로 PGA투어에서 8승을 쌓았다. 그중에 대표적인 우승은 2011년의 ‘제5의 메이저’로 평가받는 더플레이어스였다. 또한 양용은은 2009년에 PGA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를 역전승으로 이기면서 아시아 첫 메이저 우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김시우도 2017년 더플레이어스 우승을 거두는 등 한국 선수들은 2000년 최경주가 물꼬를 튼 이래 PGA투어에서 6명이 16승을 합작했다. 일본은 5명이 11승을 기록하고 있다. 투어 진출은 한국보다 훨씬 앞섰고, 선수들도 많았으나 우승은 적었다. 본격적으로 미국 투어 생활을 한 선수는 PGA투어 3승의 마루야마 시게키였다. 그는 2001년 그레이터밀워키오픈에서 미국 본토에서 우승한 첫 일본 선수가 됐다. 이듬해인 2002년 AT&T바이런넬슨, 2003년 윈덤챔피언십에서도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또한 1998년 호주의 로열멜버른에서 열린 미국과 세계연합의 팀 매치인 프레지던츠컵에서 5전 전승을 하면서 인터내셔널팀의 우승에 결정적인 수훈을 세우기도 했다. 류지 이마다는 2008년 애틀란타클래식에서 미국의 케니 페리를 연장전 끝에 꺾고 우승했다. 1967년에 시작한 이 대회는 더 이상 개최되지는 않는다. ‘훈남’으로 인기높은 이시카와 료는 일본무대에서 최고에 오른 뒤 꾸준히 미국 무대를 노크했다. 2009~2017년까지 9년 동안 통산 145개 대회에 출전해 톱10에는 11번 들었고, 2위는 두 번을 차지했으나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다.

료와 동년배로 라이벌 관계를 이루면서 성장한 마쓰야마 히데키는 오늘날 일본을 대표하는 선수가 됐다. 2014년 메모리얼토너먼트에서 22세의 나이로 케빈 나와의 연장 승부 끝에 첫 우승했다. 이어 2016, 2017년에 연속으로 웨이스트매니지먼트피닉스오픈에서 우승했다. 2016년에는 6개 투어 합작인 월드골프챔피언십(WGC) HSBC챔피언스와 2017년 페덱스컵세인트주드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했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WGC에서 우승한 선수다. 2016년에는 이벤트 대회이긴 하지만 히로월드챌린지에서도 우승했다. 지난해 사토시 고타이라가 초청 출전한 RBC헤리티지에서 김시우와의 연장 승부 끝에 깜짝 우승하면서 일본 선수들의 미국 우승은 총 11승이 됐다. 조조챔피언십 3라운드에서는 마쓰야마 히데키가 선두 우즈에 4타차 3위에 올라 있고, 사토시 고타이라는 9위, 이시카와 료는 17위 등 총 9명이 출전하고 있다. 한국 선수 5명 중에는 임성재가 9위로 가장 높은 순위이고 강성훈이 17위, 안병훈 23위, 박상현 47위, 김시우는 62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