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상승 수입원료값 …식품업계 ‘발동동’

中소비위축 우려에 현지진출 기업도 불안

“필수품 소비마저”…유통가 위기감 확산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로 국내 일본상품 불매운동 움직임이 거세지는 가운데 21일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 일본 제품이 진열돼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맥주를 비롯한 일본 제품의 매출이 최근 급감하고 있다. [연합]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로 국내 일본상품 불매운동 움직임이 거세지는 가운데 21일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 일본 제품이 진열돼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맥주를 비롯한 일본 제품의 매출이 최근 급감하고 있다. [연합]

미·중 무역갈등이 급기야 환율전쟁으로 전선이 확대되면서 국내 식품 및 유통업계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당장 원·달러 환율 급등(원화가치 하락)으로 수입 원료비 상승 등의 부담이 예상된다. 일본 불매운동 여파를 수습하기에 급급한 유통가에 환율이라는 변수까지 더해진 셈이다. 특히 한국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소비심리까지 급격히 나빠져 국내 유통가가 벼랑끝에 몰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환율 상승에 원가 부담 ↑…식품 등 가격인상 우려=7일 유통 및 식품업계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원료 수입 비중이 높은 식음료기업은 원가 부담 상승에 따른 수익성 악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업계는 당장 큰 영향은 없지만 환율 인상이 장기화할 경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일부 업체는 이미 수입을 일시 보류하고 비축분을 소진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뚜기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 조치를 마련한 단계는 아니지만 환율에 대해 고민이 있다”며 “여러 부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뚜기는 케첩 원료인 미국·칠레산 토마토 페이스트 등을 수입하고 있다.

대상 관계자는 “평균 3개월 수준의 비축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환율이 오를 경우 일시적인 수입 보류를 통해 대응할 수 있다”면서도 “비축분이 소진되는 시점까지도 환율이 지속 상승하면 높은 가격을 주고서라도 수입을 진행해야 하는데 이는 제조원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수입산 원료 의존도가 절대적인 제분사 등은 환율 상승이 장기화할 경우 원가 상승 압박으로 가격 인상을 검토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국내 한 제분사 관계자는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 원맥을 들여와 가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밀가루사업은 환율이 올라가면 영향을 받는 게 당연하다”며 “과거 IMF 때와 같은 시기에 원가 부담을 가격 인상으로 방어한 것처럼 최악의 경우 가격 인상 소지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中 진출 기업도 소비위축 우려에 전전긍긍=미중 경제전쟁으로 인해 중국내 소비경기 위축이 심화될라 현지 사업을 벌이고 있는 업체들도 불안감을 내비치고 있다. 이미 중국은 경기 둔화로 인해 소비심리가 상당히 위축된 상황이다. 올해 2분기(4~6월) 성장률은 27년 만에 가장 낮은 6.2%를 기록했다. 중국 사업 비중이 큰 식품기업은 현지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 유통하기 때문에 당장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국 내수경기 악화로 인한 간접 영향에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에서 매장을 운영 중인 한 외식기업 고위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영향이 없지만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중국이 수출부진 등을 겪게 되면 내수시장도 어려워지지 않겠느냐”며 “먹거리는 상대적으로 경기를 많이 타진 않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지면 소비가 줄어드는 건 어느 업종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내수부진 심화될라…국내 유통가 위기감 최고조=환율 상승이나 중국 내수경기 등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지 않는 국내 유통 및 식음료업체도 사정이 녹록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미중 무역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환율 급등세가 이어지면, 수입품을 중심으로 물가가 오르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더 꽁꽁 닫을 가능성이 크다. 당장 물가 영향이 없더라도 만성적 경기불황으로 소비심리가 악화된 상황에서 미중 환율전쟁 등의 변수까지 더해지면서 소비 시장이 급격히 무너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7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5.9로 한 달 전보다 1.6포인트 하락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소비자들이 경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종합적으로 가늠할 수 있게 만든 지표로, 100보다 크면 경제를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심리가 장기평균(2013∼2018년)보다 낙관적임을, 100보다 작으면 비관적임을 의미한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해 11월(95.7) 저점을 보인 뒤 12월부터 올해 4월(101.6)까지 5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오다가 5월부터 하락세로 돌아섰다. 미중 무역분쟁, 수출 부진, 주가 하락 등 기존의 지수 하락 요인에 더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더해지면서 경기 및 가계 재정상황에 대한 인식이 악화됐다는 분석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식료품, 의류 등은 불경기에서도 버티는 분야인데 지금 한국경제 상황이 상당히 악화됐기 때문에 낙관하기 어렵다”며 “1% 경제성장률도 위협받을 만큼 거시경제 상황이 나쁘다보니 과거에 필수재로 여겼던 품목 소비도 위축될 가능성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 제품 불매운동 여파에 환율 리스크, 소비 위축에 대한 우려까지 직면한 유통가의 위기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일본과 직·간접 관련이 있거나 일본 제품을 취급하는 기업들은 불매 리스트에 올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일부 식품업체는 재료 원산지와 첨가물까지 재검토하고, 기존 일본산 원료는 교체를 추진하는 등 분주하다. 불매운동 사정권에서 비껴난 기업들도 최근 사회 분위기가 전반적인 소비심리 위축으로 이어지는 점이 우려된다고 토로한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일단 불매운동으로 유니클로 매출은 줄었지만 그로 인해 다른 경쟁 브랜드가 큰 반사이익을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며 “유니클로 매출이 빠지고 있을 뿐이지 국내 패션쪽에서 소비 심리가 살아나는 것은 체감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유통업계 관계자는 “소비 부진에 일제 불매운동, 글로벌경제 불확실성까지 덮치면서 소비심리 위축이 전반적인 내수경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다보니 유통가의 위기감도 큰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혜미·박로명·이유정 기자ha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