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필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뉴욕과 런던, 파리, LA, 홍콩 등 전 세계 주요 도시에 16개 지점을 운영하며 연간 매출 1조원 이상을 기록하는 가고시안 갤러리의 래리 가고시안. 그가 2016년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꺼낸 첫 마디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얼핏보면 자신의 업에 대해 부정적인 말 같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다. 예술은 생필품이 아니다.
이렇게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는 것을 팔기 위해 가고시안과 같은 사람들이 3월 말 조용히 홍콩으로 몰려들었다. 3월 27일부터 31일까지 단 5일간 소리 없이 화끈한 전쟁을 치르며 1조원대의 매출을 올렸다. 해외에서만 무려 4만명의 관람객이 모여들었고 세계 정상급 유명 갤러리들은 점당 수십억원에 달하는 작품을 수없이 팔아치웠다.
올해 아트바젤 홍콩에서 가고시안 갤러리는 독일 신표현주의의 대가,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대작 ‘Wir sind es(그게 우리야)’를 내걸었다. 개막 1시간만에 175만달러 (약 20억원)에 판매됐다. 스카스테트 갤러리가 선보인 윌럼 더 쿠닝의 작품 ‘무제’도 1000만 달러(113억7000만원),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가 내건 앨리스 닐의 ‘올리비아’는 170만달러(19억원), 하우저앤워스의 아실 고르키 작품은 180만 유로(23억원)에 새주인을 찾았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은 170억원, 피카소는 216억원, 무라카미 다카시의 조각은 15억원에 판매됐다. 이탈리아 로칸 오닐 로마 갤러리가 선보인 키키 스미스 작품도 개장 5분 만에 컬렉터의 손에 넘어갔다. 일반인들은 엄두조차 내기 힘든 금액이 수없이 거래됐다. 부가 부를 소비하는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아트바젤홍콩은 마치 가상의 공간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돈잔치’, ‘불평등’과 같은 표현으로 자본이 예술의 본 기능을 잠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숫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올해 제 7회를 맞이한 2019 홍콩 아트바젤이 성공적이었다는 반증이다.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했을까? 가고시안의 인터뷰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일반 회사가 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가치를 창출해야 합니다. 단순히 사고파는 중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예술 작품이 중요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죠. 그림이 가치있다고 믿는 것, 그리고 그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죠”
가고시안을 비롯한 수 많은 화상이 팔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흔히 ‘미술사적 가치’가 꼽힌다. 천문학적 가격의 작품을 설명할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용어다. 그렇다면 이 미술사적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미술의 역사? 그렇다면 이 역사는 무엇을 기준으로 현재까지 흘러왔을까? 그 안에는 전에 보지 못한 독특한 시각언어로 표현된 사람이 있고, 인권이 있다. 왕과 권력자를 위한 도구적 성격을 벗어나 미술이 개인과 그가 처한 사회를 담기 시작했을때 예술은 장식미를 벗어나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되었다. 많은 이들은 끊임없이 미술관을 찾아 작품을 보고 자신을 만나려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눈 밝은 이들은 이를 놓치지 않고 수용와 공급을 벗어나, 경제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을 만들어 냈다.
일부는 아트바젤 홍콩이 슈퍼리치들의 놀이터로 변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1억원 이상의 부스비를 포함해 체제비와 운송비, 보험료까지 막대한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면서 수 많은 갤러리들이 홍콩으로 향하는 이유가 단순히 이들의 구매욕구를 자극시키기 위해서일까. 그림이 아닌 자신의 눈을 파는 사람들이 모이는 이 공간에는 극대화된 욕망과 이를 교묘히 감추는 치밀한 전략이 공존한다.
실제로 아트페어라는 상업적인 공간이 스스로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여러 장치들이 마련됐다. 인사이트 섹션이 대표적이다.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가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이 섹션은 시장의 고급 마케팅 전략에 다름아니다. 홍콩에선 이불작가의 작품 ‘Willing To Be Vulnerable-Metalized Ballon(취약할 의향)‘을 전면에 나왔다.
흥미로운 지점은 미술품의 내포 가치와 그 전달방식이다. 앞으로 이러한 전달 방식은 더 단단해지며 그 화려함을 뽐낼것으로 예상된다. 아트페어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한 단면이고 이 성격은 결국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표출되지 않는 욕구를 반영한 또 하나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
독립큐레이터·heryur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