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바젤 홍콩, 면세 활용 매출 3조원 성장 상하이, 市 전폭 지원 ‘부띠끄 페어’ 자리매김 대만 올 1월 ‘당다이 아트페어’ 첫 개막 싱가포르는 개막 열흘 앞두고 취소도 KIAF·아트부산 규모 수백억 불과 ‘안방잔치’
‘카지노에서 돈을 잃지 않는 유일한 플레이어는 하우스’라는 말이 있다. 누군간 잃고 누군간 따지만 결국 승자는 판을 만든 사람이라는 뜻이다. 동등한 비교는 무리지만 아트페어와 비슷한 점도 있다. 갤러리는 돈을 내고 부스를 빌린다. 입장한 관객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판매한다. 새로운 고객을 발굴해 예상외의 수익을 올릴 수도 있지만 반대로 밑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대형 아트페어에 참여하겠다는 갤러리가 늘어나는 건 ‘홍보’를 위시한 숫자로 보이지 않는 손익이 아트페어를 지탱하고 있어서다. 흥미로운건, 페어를 주최한 쪽은 대부분 ‘성공적 행사’를 치른다는 것.
아시아 아트페어 시장의 지각변동이 한창이다. 지난 2013년 시작한 아트바젤 홍콩이 면세를 무기로 단시간에 메가급 아트페어로 성장하면서 촉발한 변화다. 2016년 매출액 3조원을 기록한 뒤 부침은 있지만 꾸준히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아트바젤 홍콩은 아시아 컬렉터는 물론 서구 컬렉터까지 찾는 메이저 아트페어로 자리잡았다. 아트바젤 홍콩은 스위스의 MCH그룹이 주최한다. 마케팅 솔루션과 컨벤션회사인 MCH는 아트바젤 바젤, 홍콩, 마이애미, 주얼리 페어인 바젤월드쇼 등 연간 40여회의 페어를 운영하는 전문 회사다.
3월에 홍콩이 있다면 11월엔 상하이가 있다. 상하이시의 전폭적 지원아래 생긴지 5년 만에 아시아 주요 아트페어로 떠오른 ‘상하이 웨스트번드 아트 앤 디자인 페어’. 참여 갤러리 수를 제한하고 방식도 초청으로만 진행하는 등 퀄리티 관리에 공을 들여 컬렉터들 사이 딱 돌아보기 좋은 ‘부띠끄 페어’로 자리잡았다. 위성 페어인 ‘아트 O21’까지 확장하며 11월 상하이 아트 위크를 이끈다.
올해는 11월 상하이와 3월 홍콩 사이 1월을 노린 아트페어가 생겼다. 지난 1월 18일부터 20일까지 대만 타이페이 난강에서는 제 1회 타이베이 당다이(Taipei Dangdaiㆍ台北 當代) 아트페어가 열렸다.
아트바젤 홍콩 초창기 멤버인 매그너스 렌프루(Magnus Renfrew)가 총괄하는 이 페어엔 가고시안, 데이비드 즈워너, 화이트 큐브, 페이스, 리만 머핀 등 세계 정상급 화랑 90여 곳이 참여했다. 후원사도 아트바젤의 공식 파트너인 스위스 글로벌 금융기업 UBS가 이름을 올려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아트페어가 끝난 이후 참여 갤러리나 관객들의 평가는 기대만큼 화려한 건 아니다. 당다이 페어에 참여한 국내 한 갤러리는 “대만 고객들이 많이 왔으나, 대작보다는 집에 걸어 놓을 수 있는 소형작품에 관심이 많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갤러리 관계자도 “첫 회라 디렉터인 매그너스가 자신의 인맥을 총 동원해 내로라 하는 컬렉터들도 많이 왔다” 면서도 “문제는 이들이 홍콩에도 오는 사람이고 상하이에도 오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갤러리 입장에서는 신규고객 발굴이 중요한데 그 부분이 아쉽다”고 말했다.
하루만에 사라진 아트페어도 있다. 예정대로라면 지난 1월 24일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샌즈 엑스포와 컨벤션센터에서 열렸어야할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는 오픈을 열흘 앞두고 갑작스럽게 취소됐다.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는 2011년에 시작한 아트페어로, 싱가포르의 주요 아트페어 중 하나다.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의 대표인 로렌조 루돌프(Lorenzo Rudolf)는 참여하기로 한 35개 갤러리에 “사정상 아트페어를 취소하게 됐다”는 짧은 메일을 보내 이같은 사실을 알렸다. 갑작스런 취소 이유에 대한 언급은 없어 온갖 추측이 나오고 있지만 자금상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했을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실제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는 최근 몇 년간 그 규모가 꾸준히 줄었다. 2016년 170개 갤러리가 참여했으나 2017년엔 130개로, 지난해엔 84개 갤러리만 참여했다.
대형 아트페어들이 자리잡고 사라지는 사이, 한국시장은 아직까지는 조용하다. 가을에 열리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를 비롯 아트 부산, 대구 아트페어 등 국제 페어들이 열리지만 그 규모는 수 백 억원 규모에 불과하다. 국내 컬렉터만을 위한 안방잔치인 셈이다. 미술계 관계자는 한국 아트페어 시장에 대해 “홍콩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컬렉터들이 홍콩으로 유입되는 경향도 있는데다, 글로벌 컨벤션 회사가 들어와서 수익을 내기 쉽지 않은 구조”라고 봤다. 그러나 한국 컬렉터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는 만큼 언제까지 한국시장이 ‘무풍지대’ 일지 예측하긴 어렵다.
한편, 오는 21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코엑스홀 C에서는 화랑미술제가 열린다. 1979년 개막 올해로 40년째 열리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아트페어다. 역사에 비해 그 규모가 성장하지 못한건 안타까운 지점으로 꼽힌다. 행사를 주최하는 화랑협회의 고민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