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스포츠팀(경주)=유병철 박건태 기자]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 중반까지 한국 여자탁구는 경주를 주목했다. 근화여중·고 때문이다. 이태조 권미숙 박경애 김분식 김무교 등 향후 국가대표로 한국 여자탁구를 책임지는 걸출한 선수들이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근화를 잡기 위한 실업팀들의 경쟁에서 대한항공이 앞섰고, 근화여중-근화여고-대한항공으로 이어지는 루트는 한국 여자탁구의 중심축이었다. '근화여중·고 탐구'에 앞서 경북의 주니어(중고)탁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알고 보면 경북은 17개 광역시도 중 탁구 토대가 좋은 편이다. 경기도를 제외하면 보통 광역단체마다 부(남중 여중 남고 여고)별로 1개팀이 있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서울만 해도 남자는 대광고, 여자는 독산고뿐이다. 시도대항전인 전국체전이나 소년체전에서 지역예선을 하거나 연합팀을 구성하는 경우가 드문 것이다. 그런데 경북은 남고(포항 두호고, 구미 인동고), 여고(근화여고, 영천여고), 남중(포항 장흥중, 구미 천생중) 여중(근화여중 영천여중)에서 부별로 2개팀을 운영하고 있다. 지방 학교체육이 열악한 현실에서 경북 탁구는 인정할 만하다. 그래서 <헤럴드경제 스포츠팀>과 <월간탁구>, <한국중고탁구연맹(회장 손범규)>이 공동으로 실시하는 ‘탁구 명문교를 찾아서’ 프로젝트는 그 시작을 경북탁구인 두호고(1편)와 근화여중·고로 정했다. 대구의 탁구명문 심인중고가 지난 11월 23일 창단 60주년(심인중 기준)을 맞으면서 2편으로 치고들어오는 바람에 근화여중고가 3편의 주인공이 됐다.
근화여중·고는 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 경영하는 학교법인 선목학원 산하 12개 중고교 가운데 하나로 1949년 2월 근화여자중학원으로 개교했다. 탁구는 여고의 경우 1964년에 창단해 남녀고등학교 중 가장 오래됐다(2위는 1973년 심인고). 여중은 한국전쟁을 전후로 창단해 현존하는 학교 탁구팀 중 최고의 전통을 자랑한다. 개교 직후 수녀님들이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모아 탁구로 힘든 상황을 극복하도록 했다. 이렇게 시작된 근화 탁구는 오랜 전통을 만들면서 경주와 경북을 넘어 한국 최고의 선수들을 배출하게 됐다. 중고교의 전국대회 우승은 단체전과 개인전을 합치며 100회 넘는다. 특히 1980~90년대 전성기를 거치며 근화탁구는 세계적인 선수들을 배출하게 됐다. 현 국가대표인 서효원(렛츠런탁구팀)을 포함해 20명이 넘는 국가대표가 근화에서 나왔다. 지도자도 노연호(86년), 윤길중(99년), 강희찬(97년) 등 소문난 조련사들이 거쳐갔다. 뿌리가 튼튼한 만큼 근화탁구는 생활체육에서도 강하다. 학교가 위치한 경주와 경북은 물론이고, 졸업생들이 결혼 등으로 전국으로 이주하면서 근화 출신 탁구장이 많다. 일주일에 2회 정도 근화여중고 탁구체육관을 동호인들에게 개방하며 경주지역 동호인들과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경주탁구협회는 매년 1,000만 원 정도를 근화여중고 탁구팀에 후원한다.
근화는 생활체육 스타도 배출했다. 언니(서효원)와 함께 선수생활을 한 서효영은 한국 생체탁구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가 됐다. 선수 출신의 수준 높은 기량에 단아한 외모와, 알기 쉬운 탁구레슨 등으로 인기가 높다. 사실 근화탁구는 서효원 이후 침체에 빠졌다. 탁구에서도 수도권 및 대도시 쏠림현상이 심해지면서 전력이 약해진 것이다. 하지만 2016년 류기현 코치가 근화여고로 오고, 2018년 김정철 코치가 근화여중으로 오면서 부흥의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근화여고는 간판 유소원(3학년)을 중심으로 전국대회 우승후보로 성장했다. 2016년 회장기 대회에서 우승했고, 2017년 전국체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올해 6월에는 에이스 유소원이 빠지고도 다시 회장기 우승컵을 탈환했다. 류기현 코치는 “한국 현실에서 지방탁구가 좋은 전력을 구축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전력을 떠나 근화 탁구는 특별하다. 전통이 오래된 만큼 학교의 지원이 탄탄하고, 지역사회에서도 근화 탁구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근년에는 전력도 한층 강화된 만큼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탁구팀의 자부심을 갖고 좋은 성적을 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근화는 올해 탁구전용체육관을 리노베이션 해 훈련여건까지 크게 업그레이드했다. 고등학교의 경우, 유소원이 졸업하지만 정은송(2학년) 남윤정(1학년)이 건재하고, 신입생으로 이호진이 합류하면 전국 4강 이상의 전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채연-정연 자매가 중심인 근화여중도 지금은 전력이 떨어진 상태지만 전국강홍인 경주용황초와 명문 안산제일초로부터 계속해서 유망주를 수급하고 있어 전력향상이 기대된다.
한때 근화 출신의 탁구선수들은 명문실업팀 대한항공으로 입도선매됐다. 졸업생 5명 중 4명이 대한항공으로 가기도 했다. 대한항공뿐 아니라 실업팀들은 실력이 빼어난 근화선수들을 스카우트 하기 위해 수시로 경주로 내려왔다. 회식 자리를 마련하고, 이동편의를 위해 버스를 빌려주고, 훈련에 필요한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탁구부와 관련된 취업민원까지 해결해줬다는 후문이 있다. 근화 전성기를 이끈 노연호 코치(현 안산제일초)는 “전성기의 근화는 공식대회 성적은 걱정도 하지 않을 정도였다. 나가면 무조건 우승이었다. 그리고 좋은 선수들이 계속해서 나오다 보니, 자질이 조금 떨어져 보이는 선수도 금세 정상급선수로 발돋움하곤 했다. 탁구실력이 좋은 유망주들은 근화로 오고 싶어했다”고 술회했다. 안강제일초 출신인 서효원은 “(선배)언니들이 탁구를 워낙 잘쳤다. 어렸을 때 근화여중고 언니들로부터 많이 배웠고, 또 그들처럼 잘 해야겠다는 생각에 탁구가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꽃은 원래 피고 지는 법.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처럼 서효원 이후 근화 탁구는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꽃을 피울 준비에 한창인 것이다. 언제 그런 전성기가 올까? “다른 학교는 운동부를 해체한다고 하지만 근화에서 탁구부는 학교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학교의 이름인 근화처럼 작지만 강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오랫동안 소신을 지키죠.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탁구선수들을 계속 배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근화여고의 최돈석 교장의 말 속에 운문에 대한 현답이 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며 열심히 하면 튼실한 열매는 저절로 맺어지는 것이다. 참고로 근화(槿花)는 데레사 성녀가 가장 좋아하신 꽃이라고 한다. 일명 제비꽃, 바이올렛(Violet). 작고 연약하나 추위에 강해 인내와 겸손과 성실을 상징한다.
■ [탁구 명문교를 찾아서 (3) 근화여중·고 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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