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 청담·P21 등 독립공간 오픈 아트페어·연합 전시로 차별화 시도 안목·경영수업 통한 실무능력 강점 유명작가 위주서 ‘다양성’ 정착 주목
젊은 갤러리스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1세대 창업주를 도와 경영 전면에 나서는가 하면, 뜻이 맞는 화랑끼리 모여 소규모 아트페어를 열기도 한다. 자신만의 안목과 경영수업을 통해 다져진 실무능력은 이들의 무기다. 단색화를 비롯 근현대 유명작가들 위주의 현재 한국미술시장에서, 이들의 활동이 ‘다양성’이란 요소를 잘 정착시키고 시장을 키울 수 있을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는 올해 개관 30주년을 맞아 청담동에 분점인 ‘학고재 청담’을 23일 오픈했다. 우찬규 학고재갤러리 대표의 차남인 우정우(32)씨가 이곳의 대표를 맡았다. 청담동 빌라촌에 99㎡(30평)의 소규모로 시작하지만 소개할 작가는 소소하지 않다. 우정우 학고재 청담 대표는 “강남 컬렉터들이 의외로 강북으로 잘 안 넘어온다. 한남동도 고려했는데 이미 자리잡은 갤러리들과 경쟁하기 보다는 새로운 파이를 만드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며 “해외에선 활발하게 활동하고 유명하지만,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를 집중적으로 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을 모토로 한국적 색채를 유지하며 현대를 담아내는 작가와 민중미술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본점과 차별화는 물론 ‘가격이 오를 작가’를 소개하는 상업화랑 본질의 목적에 충실하겠다는 뜻이다.
개관전으로 영국작가 피오나 래(55)를 선택했다. 1988년 데미안 허스트가 주도한 프리즈(Freez)에 참여, 데뷔했으며 ‘yBa(young British artists)’로 꼽히는 작가다. 당시 골드 스미스 컬리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이 “1988년, 데미안 허스트와 함께했던 학생들은 전무후무하게 특별했다”고 회고할 정도로 예술적 역량이 뛰어나다. 전시에 나온 작품은 지난 5년간의 근작으로 동화와 문학, 만화를 추상적으로 풀어냈다. 흑백톤부터 파스텔톤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색채감각과 유기적 붓터치가 인상적이다.
지난해 이태원에 P21을 오픈하며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는 최수연 대표도 박여숙 갤러리 대표의 차녀다. 최정화, 유승호, 윤향로, 최선 등 중견-신진작가를 넘나들며 동시대 주요작가 개인전을 개최했다. 개관 당시 최 대표는 “젊은 화랑주라고 신진작가만 소개할 생각은 없다”며 “미술관과 시장에 동시에 어필 할 수 있는 작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엔 상하이 ‘웨스트번드아트페어’에 최연소 갤러리로 초청받아, 최정화의 대형 설치작인 ‘과일나무’와 ‘플라워 샹들리에’를 소개하며 국제적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있다.
이렇듯 1세대 창업주와 차별화를 꾀하는 미술계 2세들은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갤러리들과 아트페어나 연합 전시에도 적극적이다. 지난달 서대문구 영천시장 원룸텔 해담하우스에서 열린 ‘솔로쇼’는 16개 갤러리가 작가 1명씩만을 프로모션하는 실험적 형태의 아트페어를 개최했다. 갤러리2,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갤러리 조선이 결성한 ‘협동작전(coop)’이 주축이 돼 진행한 솔로쇼는 판매실적과 작가 프로모션 모두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은 오는 12월에는 ‘솔로쇼’에 이어 ‘더 갤러리스트(The Gallerist)’라는 연합전시(WAP art spaceㆍ12월 14~17일)를 이어간다. 작가나 작품이 주가 아닌 ‘갤러리스트’들이 주인공이 되는 전시다. 정재호 갤러리2 대표는 “전시장에서 관객들이 보는 건 갤러리스트의 안목”이라며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고 어떤 일을 하는지도 전시장에서 가감없이 보여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시장은 참여 갤러리의 사무실로 꾸려질 예정이다. 작품을 비롯 가구, 조명 등 다양한 아이템이 선보인다. 가나아트갤러리, 갤러리ERD, 갤러리조선, 갤러리2,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아트사이드갤러리, 조현화랑, 학고재, P21, Whitsle 등 10개 갤러리가 참여한다. 글로벌 아트페어, 작가 미술장터 등 미술시장 유통구조가 급변하는 가운데 ‘화랑’ 본연의 역할을 돌아보는 젊은 갤러리스트들의 고민이 미술시장에 던지는 의미가 크다. 한국 미술시장 변화의 신호탄으로 읽힌다.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