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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했다. 서랍 안에 반듯하게 개켜 돌돌만 깨끗한 속옷이 잔뜩 쌓여 있다는 것, 갓 구워낸 빵을 손으로 찢어서 먹는 것이 인생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 바로 소확행(小確行)이라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랑겔한스섬의 오후’ 등 자신의 수필집에서 처음 사용한 이 단어는 약 20여년이 지난 2018년 대한민국의 트렌드로 떠올랐다. 왜 2030 밀레니엄 세대가 소확행을 찾아 헤매는지, 그 열풍의 이유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남우정 기자] 소확행 열풍, 대중문화에서도 감지된다. 대중문화는 말 그대로 그 어느 곳보다도 트렌드에 민감하다.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떠오른 소확행을 반영한 대중문화 콘텐츠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런 콘텐츠는 새로운 트렌드를 소개하고 보는 이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하며 또 다른 소확행의 순환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영화계는 소확행을 보여주는 작은 작품들의 선전이 눈에 띈다. 대표적인 작품이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다.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리틀 포레스트’는 서울살이에 지친 혜원(김태리)가 고향으로 돌아와 자급자족 생활하는 모습을 그려냈다. 영화는 이렇다 할 사건도 없고 계절에 따른 변화를 보여주지만 그 안에서 소소한 행복의 의미를 전달한다. 손익분기점이 80만명 정도인 작은 영화였지만 ‘리틀 포레스트’는 27일 기준 약 148만 관객을 기록하고 있다. 개봉한 지 한 달째지만 아직도 영화관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22일 개봉한 영화 ‘소공녀’는 아예 소확행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이솜)은 일당 4만 5000원에 가사도우미 일을 하고 퇴근 후 마시는 위스키와 담배가 유일한 낙인 캐릭터다. 미소는 담배값이 오르는 위기가 찾아오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집을 떠난다. 자신에게 확실한 행복을 위해 과감하게 집을 포기하는 미소는 소확행 라이프를 확실히 반영한 캐릭터로 N포세대를 대변한다. ‘리틀 포레스트’에 빠져 N차 관람까지 찍은 한 20대 관객은 “스케일만 크고 범죄, 조직이나 남성 캐릭터 중심인 한국영화에 질렸었는데 간만에 편하게 본 영화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할 수 있어서 여러 번 관람하게 됐다”고 전했다. 지난해 욜로 열풍이 불기 전부터 힐링을 키워드로 하는 프로그램은 꾸준히 등장했다. 다만 트렌드에 맞춰서 여행, 요리, 먹방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이 기세는 소확행, 워라밸, 1코노미 인기와 맞물리면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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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엘리어트 (사진=신시컴퍼니)

욜로 열풍과 맞물려서 시청자들의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JTBC ‘효리네민박’과 tvN ‘윤식당’은 두 번째 시즌으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겨울을 맞은 ‘효리네 민박’은 날씨 변수로 야외 활동이 줄고 제주도의 풍광이 도드라지진 않지만 집안에서 소소하게 즐기는 놀이와 대화만으로도 충분히 힐링을 선사하고 있다. ‘윤식당’ 역시 관광지가 아닌 스페인의 작은 마을로 장소가 이동하면서 동네 주민과의 관계가 두드러지게 됐다. 2030 여성들의 라이프 스타일 영역에 집중했던 CJ E&M 올리브는 기존의 콘텐츠 기조에 소확행 같은 트렌드 포인트를 더해 리브랜딩을 예고했고 아이돌 리얼리티에도 소확행이 키워드로 등장했다. Mnet 아이돌 세븐틴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SVT클럽’은 워라밸 등 젊은 키워드에 맞춰가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나섰다. ‘꽃보다 청춘’, ‘삼시세끼’ 시리즈로 예능 트렌드를 선두해 온 나영석 사단의 새로운 프로그램도 소확행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자급자족 라이프로 대리만족을 선사했던 나영석 사단은 오는 4월 새 예능 ‘숲속의 작은 집’을 선보인다. 숲속에서 고립된 채 생활하는 출연진의 모습은 ‘리틀 포레스트’를 연상시키게 한다. 공연계도 소확행을 느낄 수 있는 체험, 경험이 중시되고 있다. 최근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낸 ‘2018 공연예술트렌드조사 보고서’에서 GV(Guest Visit) 같이 관객이 공연을 체험하고 극에 참여하는 공연 트렌드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관객에게 발레와 탭댄스를 배울 수 있는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했다. 뮤지컬에 출연하는 배우들과 함께 안무를 배워볼 수 있는 수업으로 공연이 아닌 체험을 판매했다. 공연 단순히 공연만 관람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이 소확행 트렌드와도 맞물려 있다. 해외 스타들의 내한 공연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것도 소확행과 멀지 않다. 지난해 내한한 콜드플레이의 공연은 예매 오픈 1분만에 4만 5000장의 티켓이 모두 매진됐다. 공연 후 SNS에는 공연 인증샷이 넘쳐났다. 최근 내한 소식을 전한 존 레전드와 케이티 페리의 공연도 모두 매진됐다. 이들이 열성적인 팬도 있지만 영상으로만 보던 팝스타의 노래를 직접 듣기 위해 공연장을 찾는다. 현재의 행복을 위해 지갑을 여는 젊은 층의 소비 심리를 제대로 공략했다. [소확행]① 2030세대, 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을까[소확행]③ ‘탕진잼’의 유혹, 소확행 체험기[소확행]④ 결국은 소비?…소확행 향한 오해와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