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연사로 발뮤다의 모든 것 강연
음악인서 디자이너로 변신 계기 등 소개 13년만에 1500배 성장…아들에 상속 거부 디자이너 지망생들, 자기취향 믿고 지켜야 ‘즐거운 경험’ 파는 발뮤다, AI사업 준비 중 빼어난 입담에 객석 수차례 웃음 터지기도
“록 밴드 활동 시절 여성팬의 집에 놀러 갔다가 ‘프레임’이라는 디자인 잡지를 보게 됐다. 그것이 음악을 관두고 디자인 기업을 세운 계기가 됐다.”
테라오 겐(44)은 그렇게 처음 ‘디자인 세계’에 발을 들였다. 정작 그의 여성팬은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대신 테라오의 아내가 됐다. 테라오는 아내의 꿈까지 이어 받았기에 더욱 열정적으로 사업에 나섰다.
그가 2003년에 세운 일본의 소형 가전업체 ‘발뮤다’는 첫해 600만엔(약 58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13년 뒤 매출은 90억엔(약 877억원)을 기록하며 1500배 성장했다. 직원도 테라오 본인 한 명으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85명의 강소기업으로 자리잡았다.
테라오는 7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헤럴드디자인포럼2017’의 마지막 연사로 나서 발뮤다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에 대해 열띤 강연을 펼쳤다.
다른 연사들과 달리 별도의 프레젠테이션은 준비하지 않았다. 스크린에는 ‘BALMUDA’라는 회사 로고만 띄워 놓았다. 대신 록스타를 꿈꿨던 20대 시절과 제조업 기술을 익히기 위해 공장을 전전했던 이야기, 부도 위기까지 내몰린 회사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어 다녔던 지난 날로 40분 강연을 꽉 채웠다. 그의 입담에 객석에선 수차례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테라오는 자신의 실패담을 들려주겠다며 고등학교를 자퇴하게 된 사연부터 소개했다. 대학 진학률이 꽤 좋은 고등학교에 다녔던 그는 어느 날 학교에서 지망 대학과 장래 희망을 묻는 설문지를 받았다.
테라오는 “재산도, 경험도 없던 17살 당시 제가 유일하게 갖고 있던 것은 ‘가능성’이었다”며 “직업란에 무언가를 써넣는 것은 제가 가진 훌륭한 가능성에 대한 모독이라 생각해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눈에는 이런 설문을 하는 어른들이나 설문에 순순히 응하는 친구들이 이상해보였다. 결국 테라오는 백지를 내고 자퇴를 택했다.
이후 뮤지션 생활을 하던 그가 사업에 눈을 뜨게 된 건 애플, 파타고니아, 바즐 세 기업 때문이었다. 테라오는 “세 기업은 아무리 봐도 시장을 보고 물건을 만드는 게 아니라 창업자 본인이 만들고 싶은 걸 만들었는데 그게 팔리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테라오가 디자이너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도 마찬가지다. 디자인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이나 관심사를 믿고 계속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소비자에게 ‘즐거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그의 철학대로 발뮤다는 ‘물건’이 아니라 ‘체험’을 판다. 2015년 선보인 토스트기 광고 역시 제품 사진 대신 발뮤다 토스트기로 구운 빵의 맛과 촉감을 전면에 내세워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어 당겼다.
이제 발뮤다는 영역을 넓혀 로봇, 인공지능(AI) 분야로의 진출을 준비 중이다. 테라오는 구체적인 진행 상황에 대해선 함구했지만 로봇 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제품 라인업을 내년쯤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별도로 진행된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들도 자신처럼 창업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마침 올해 14살인 그의 아들도 로봇에 흥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테라오는 벌써부터 발뮤다와 아들의 회사가 훗날 시장에서 경쟁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김현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