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삭감 없는 ‘10시~16시 유연근무제’ -야근 없애고 칼퇴근하는 문화 정착돼야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 #1. 워킹맘인 A씨(36)는 올 6월 복직을 앞두고 있다. A씨는 유연근무제가 가능한 회사에 다니고 있어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시간을 단축할 생각이다. 아이가 둘이라 유연근무제를 하지 않으면 직장에 계속 다니기 어렵기때문이다. 다행히도 이미 A씨처럼 아이를 낳고 유연근무제를 선택해 근무하는 동료가 있지만, 그래도 A씨의 마음은 복잡하다.
“유연근무제가 가능한 곳이니 남들에 비하면 좋지만, 현실적으로는 줄어든 시간 보다 훨씬 많이 임금이 삭감되요. 그보다 더 문제는 지금 유연근무제로 회사에 다니는 동료에게 물으니 4시 퇴근은 잘 지켜지지 않다고 해요. 4시 무렵에 중요한 회의가 잡히면 모른 척 뿌리치기도 어려워 4시 퇴근이 생각만큼 잘 안돼, 월급만 대폭 깎이고 시간적인 이점도 별로라는 생각이 든다네요.”
#2. 워킹맘 B(31)씨는 올 9월 복직을 앞두고 지방에 계신 부모님을 다시 모셔오기로 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B씨는 첫째 출산 후 복직해 야근하면서, 둘째 출산 후 복직을 심각해 고민해왔다. 늦은 시간 야근의 고충이 너무 커서 복직을 포기하려했지만, 막상 둘을 키워보니 경제적인 부담이 느껴져 결국 복직을 하기로 했다.
“모르는 사람을 들여 두 아이를 키우자니 도저히 답이 안나와요. 결국엔 부모님 밖에 의지할 곳이 없네요. 지방에 집을 두고 서울까지 오시라고 하는 것이 부담돼서 첫째 출산 후 내려가셨는데, 결국 다시 오시기로 겨우 설득했어요. 아이 키우면서 일하기 참 힘들어요.”
#3. 워킹맘 C(41)씨는 최근 유치원 소풍을 앞두고 걱정이 하나 생겼다. 평소에는 종일반에 맡겼는데, 소풍 날은 도시락과 간식 등을 집에서 준비해보내야 하는데다 하원 시간이 일괄 3시30분으로 정해져서다. 평소 차량으로 하원을 하는데, 그날은 하원 차량도 운행하지 않고 모두가 유치원에서 아이를 데려가야 한다니 반차를 내야하나 고민했다. 다행히도 유치원 측에서 결국 종일반은 평소와 같은 시간에 하원하며, 차량도 평소와 같이 운행한다고 해서 고민은 마무리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그가 제시한 아이가 있는 맞벌이 부부를 위해 10시~16시 유연근무제 도입 공약에 눈길이 쏠린다. 만8세(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를 대상으로 최장 24개월 범위 내에서 유연근무제를 임금 삭감없이 실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얼마나 잘 정착이 될지는 의문이다. 아직은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 큰 탓이다.
실제로 한국여성정책원의 ‘일ㆍ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차출퇴근제와 시간선택제 등 정부가 시행하고 이는 유연근로제 중 한개라도 도입한 업체는 21.9%에 불과하다. 특히 5~9인 사업체의 경우, 12% 만 유연근로제를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야근이 일상화되고, 칼퇴근이 어려운 한국의 직장문화에서 유연근로제를 도입하고 있는 곳 자체가 매우 것이 현실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야근때문에 아예 아이 돌보기가 어려운 B씨 같은 워킹맘이 가장 많다. 또 A씨의 경우처럼 유연근무제가 도입된 곳이라도 임금을 대폭 깎고 사실상 퇴근 시간에 눈치를 보는 상황이 많으니 실제 적용까지는 괴리가 있어 보인다. 법은 있돼 실천이 제대로 될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C씨의 경우처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 등에서 일하는 부모의 상황을 무시한 채 근무시간 중에 아이를 챙기라는 것도 개선이 되어야 하는 점이다. 현재는 근무시간 중 아이를 챙길 일이 매우 많다. 유연근무제도 좋지만, 수시로 아이를 챙기기 어려운 고충도 어느 정도 해소되어야 한다.
맞벌이 부부 유연근무제 도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그에 앞서 불필요한 야근을 없애고 칼퇴근이 가능한 문화가 보다 근본적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그래야 법과 현실이 따로인 괴리감이 줄어들 수 있다.
한국의 연 평균 근로시간은 1인당 211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두번째로 길다. OECD 평균 근로시간이 1766시간 임을 고려하면, 한국 국민은 1년에 347시간이나 더 일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하루 8시간 근무를 가정했을 때, 한달 반(43.4일)에 해당한다.
현 정권에서 한국의 기업문화, 노동문화가 한층 업그레이드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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