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나마나 한 ‘등원 수요조사’ -어린이집 방학 vs 휴가 ‘불일치’ 문제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은 축복이다. 아이가 주는 행복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가 되지 않다. 하지만 워킹맘의 경우,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에 비례해 힘든 고난이 계속된다. 한국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쉽지가 않다. 내 아이는 올해 5살이 됐다. 이제 유치원에 입학한다. 3년 간 어린이집을 세번이나 옮기면서 엄마들이 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지 수긍이 갔다. 워킹맘 육아의 현실적인 문제점과 정책 개선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바람에서 연재를 시작한다. ‘헬컴투 워킹맘’이 ‘웰컴투 워킹맘’이 되는 그날을 고대하며….>
“어머니 보내셔도 되요. 근데 도시락은 싸오셔야 해요. 그날 식사를 준비해주시는 선생님은 나오지 않으시거든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 말고 또 몇 명이나 나오나요?”
“다른 아이들은 안와요, 어머니.”
“아, 네... 그럼 안보내야겠네요.”
지난 2014년 복직을 앞두고 간신히 들어간 어린이집에서 복직 후 첫 휴일에 ‘등원 수요조사’를 했다.휴일이었지만 근무를 해야 했고, 친정 엄마가 하루 종일 아이를 보는 것이 힘들 것 같아 ‘등원을 하겠다’고 표기를 해 보냈다. 이후 어린이집 원장에게 걸려온 전화는 뜻밖이었다. 말은 보내도 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보내지 말라는 '압박'이나 다름없었다.
쉬는 날에 내 아이만 어린이집에 가면, 보육교사는 내 아이때문에 휴일을 포기하고 일을 하게 된다. 나 같아도 그 상황이 좋지 않게 느껴질 것 같았다. 설령 불가피한 상황으로 내 아이만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해도 몇 시쯤 데리러 가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된다. 내 아이만 혼자 심심하게 하루를 보낼 생각을 하니, 보낼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당시 그 어린이집에서 매일 가장 늦게 하원하는 아이가 딱 한명 있었다. 그 아이는 최소한 휴일에도 등원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했다. 나중에 그 아이 엄마에게 물으니 “원장 선생님이 아무도 등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안간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엄마들에게 ‘아무도 등원을 안한다’는 말을 해서 진짜 아무도 등원을 못하는 상황을 원장이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매년 이맘 때쯤이면 어린이집은 새 학기 준비로 며칠 간 쉬곤 한다.
내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도 23일부터 28일까지가 새학기 준비 기간이다. 3년 정도 어린이집을 보내면서 워킹맘이 애 키우기 힘든 현실은 계속 와 닿았다. 매년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기면서, 어린이집 간의 차이도 알게 됐다.
어린이집에서는 휴일 혹은 여름ㆍ겨울방학때 ‘등원 수요조사’라는 것을 한다. 쉽게 말해 등원을 할지, 안할지를 적고 이름과 서명을 해서 보낸다. 처음에 멋 모르고 ‘등원한다’고 보냈던 나는 조금씩 ‘상황 파악을 못하는 엄마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등원을 하겠다’는 아이를 받아주지 않는 것은 법적으로 불법이다. 구두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위의 대화내용처럼 강요를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등원을 못하게 하는 방법이 실제로는 많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규모가 작은 가정식 어린이집의 경우, 방학에는 아예 수요조사도 하지 않고 쉬는 곳도 있다.
지난 3년 간 어린이집을 보내면서 연간 휴가가 15일 정도는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이를 맡길데가 없는 날이 평균 그 정도 되는 것이다.
어린이집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 각각 1주일씩이다. 평일 기준 10일에 달한다. 여기에다 새학기 준비가 3~4일 가량 되고, 그 밖에 각종 휴일에도 대부분 쉰다. 결국 워킹맘은 1년에 15일 가량은 휴가를 내야 내 아이를 돌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다 수족구 같은 법정전염병에 걸릴 경우, 평균 일주일 가량은 어린이집 등원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한국 대부분의 회사에서 연간 15일의 휴가를 내는 경우는 드물다. 여름휴가만 5일 주는 회사가 많다. 조부모가 돌보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이유다.
워킹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저출산이 심화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부모와 아이 간 시간의 불일치다. 아이의 등ㆍ하원시간과 부모의 출퇴근 시간의 불일치는 애 키우기 힘든 이유 1위에 꼽힐 정도다.
매일매일 빈 시간을 채워 줄 사람이 필요하고, 연간 15일에 달하는 휴일에 아이를 봐줄 사람까지 필요하니 조부모나 베이비시터의 도움 없이 키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까지 내 아이가 다닌 어린이집은 등원 수요조사를 통해 통합반으로 휴일에도 등원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나이를 섞어서 보육교사 한명이 순번을 정해 돌보기는 하지만, 아예 못보내는 것보다는 나았다. 시간이 생명인 워킹맘에게 어느 정도 시간을 책임져주니 말이다.
이제 3년의 어린이집 생활을 뒤로 하고 내 아이가 3월부터는 유치원에 가게 된다.
그런데 유치원의 방학기간은 더 길다. 유치원의 경우,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 각각 3주씩이다. 평일 기준 30일이다. 여기에다 새학기 준비 기간이 약 일주일이니, 평일 기준 5일이다. 결국 연간 35일의 휴가가 필요한 셈이다.
다만, 워킹맘의 경우 종일반을 신청하면 어린이집과 똑같이 여름 및 겨울방학이 각각 일주일씩이며, 새 학기 준비기간도 딱 하루라는 말을 듣고 그나마 위안을 삼았다. 그래도 여전히 11일은 기본이다.
아이와 엄마 간 시간의 불일치를 해소하는 방안과 어린이집의 등원 거부를 막는 보완장치 마련이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당장 ‘등원 수요조사’ 방식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각 가정에서 서류에 기재해 어린이집에 보내는 방식 보다는 온라인 사이트 상에서 개별적으로 입력을 하고, 입력 후에는 어린이집 관계자와 등원 아동 부모가 모두 볼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그래야 원장이 임의로 등원을 하지 못하게 하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보다 근본적으로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방학 때 워킹맘이 휴가를 쉽게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필요가 있다.
“그냥 아무 말 말아아죠. 괜히 우리 아이만 찍히면(?) 안되잖아요.”
엄마들 대부분이 어린이집과 원장의 잘못된 행동을 눈감아 버리는 이유다. 아이를 볼모(?)로 맡겨 둔 엄마 입장에서 내 아이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