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혼인 약 28만건…30만건 벽 무너져 -지난해 합계 출산율 1.17명…2005년 이후 최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린이집 대기는 1년 이상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 “늘 보따리를 들고 다니고 애들이 자고 난 뒤 일을 하고, 아니면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했어요. 여성이 소수이니까 조금만 일에 소홀해도 눈에 띄어요. 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여성 법조인에 대한 평가가 될까봐 조심스러웠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가족이나 친척 등 육아를 도와주는 분이 없어서 다른 사람 손에 의존했는데, 그 과정에서 애들도 많이 힘들어했어요. 당시에는 어린이집에 들어가려고 해도 1년 이상 대기를 해야 했고요. 지금은 아이들이 중학생이 돼서 예전보다 엄마 손을 덜 필요로 하지만 그래도 매일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지난 13일 퇴임한 이정미(55) 헌법재판소 권한대행의 2011년 인터뷰 내용이 최근 새삼 화제가 됐다. 퇴임 직전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이라는 역사적인 선고의 주인공이 된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이 두 아이를 둔 워킹맘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더욱이 이정미 재판관은 지난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선고 당일 헤어롤 두개를 감고 나와 외신에도 보도가 됐다.

(주말)[장연주의 헬컴투 워킹맘]<5>이정미 재판관과 결혼ㆍ출산
[사진설명=지난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선고 당일 헤어롤 두개를 감고 차에서 내린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의 모습]

AP통신은 선고 시간보다 3시간 전 출근한 이 권한대행이 ‘깜빡 잊고’ 머리에서 헤어롤을 제거하지 않은 채 차량에서 내렸고, 이 사건이 한국의 포털사이트 검색어까지 올랐다고 전했다.

특히 “한국인 여성 재판관이 자기 일에 헌신하는 여성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줬고, 아시아권 국가에서 ‘일하는 여성’의 모습을 되짚어보는 순간이 됐다”며 “고통스럽고 어려운 결정인 역사적 판결을 앞두고, 아마도 불면의 밤을 보낸 뒤 황급히 나오면서 벌어진 ‘실수’였겠지만, 보는 이들에게 따뜻한 미소와 함께 감사와 감동을 줬다”고 보도했다.

이정미 전 재판관의 인터뷰는 워킹맘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이를 돌보고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데, 게다가 두 아이를 기르면서 어떻게 저런 자리에까지 올라 일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대단하다”는 생각이 우선 들기때문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의 책임감과 육아의 어려움이다.

워킹맘은 일을 할때, 자기 혼자 만의 문제가 아닌 여성 전체에 대한 평가가 될까봐 두려운 마음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 한 남성의 잘못은 개인의 일로 치부되지만, 여성 특히 워킹맘의 경우 “애가 있어서 그런가”라는 지적(?)을 받을까 상당히 조심하는 경향이 있다. 나로 인해 워킹맘에 대한 편견이 굳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당시나 지금이나 어린이집에 들어가기는 여전히 어렵다는 사실도 와 닿는다.

이정미 전 재판관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려 했을 때는 거의 20년 전이다. 지금은 계속 출산률이 떨어지고 있다고 하니, 어린이집 보내기가 쉬워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린이집은 물론 유치원도 가고 싶은 곳은 추첨에서 떨어지면 갈 수가 없고, 놀이학교에 울며 겨자먹기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점점 결혼도 안하고 출산률도 계속 떨어지는데 참 이상한 일이다.

(주말)[장연주의 헬컴투 워킹맘]<5>이정미 재판관과 결혼ㆍ출산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6 한국의 사회지표’를 보면, 감소하는 출산율은 반등할 기미는 커녕 오히려 더 떨어질 요인들이 눈에 띈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은 1.17명으로 2005년 1.08명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2012년 1.30명까지 오르면서 잠시 반등하는 듯 보였지만 계속 하락세다. 더욱이 아이를 낳는 나이가 계속 높아지는 점은 출산율 반등 전망을 어둡게 한다. 지난해 첫째 아이를 출산한 여성의 평균연령은 31.4세까지 올라갔다.

문제는 출산도 안할 뿐더라 아예 결혼도 하지 않겠다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의 ‘2016년 혼인ㆍ이혼 통계’를 보면, 지난해 혼인은 28만1600건으로 1년 전보다 7.0%(2만1200건) 감소했다. 1974년 25만9100건 이후 최저치다.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결혼하기 시작한 1970년대 중반 이후 한 번도 깨지지 않았던 혼인 30만건대 벽이 무너진 것이다.

젊은 세대가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일을 하려는 여성은 늘어나는데 아이를 낳아 기르기 어렵다는 커다란 ‘현실의 벽’이 존재하기때문이다. 게다가 결혼은 여성에게는 아직은 또 다른 족쇄이기도 하다. 출산보다는 어렵지 않겠지만, 여전히 여성은 집안일과 육아를 전담 혹은 주도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가부장적인 전통(?)이 이어지고 있기때문이다.

결혼도 출산도 모두 ‘나’ 자신을 포기하고, 희생해야만 온전히 평화가 찾아오는 구조이기때문이다. 한마디로 ‘슈퍼우먼’이 되지 않으면, 한국에서 워킹맘으로 살아가기는 참 힘들다. 물론 슈퍼우먼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매우 고달른 일이기도 하다.

이정미 전 재판관의 인터뷰에서 그나마 위로가 되는 말은 “아이들 양육 문제에 고민이 많을 여성 후배 법조인들에게 세월이 참 빨리 흘러간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세월이 빨리 흐르니 지금 이 순간을 참고 이겨 내란 말로 들린다. 한편으로는 위로가 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결국 워킹맘의 고민은 혼자 감당해내는 것 밖에는 대안이 없다는 생각에 답답함도 느껴진다.

일하면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즐거운 ‘워킹맘의 천국’이 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저출산 문제는 해결될 수가 없다. 혼인 30만건이 무너진 지금, 저출산 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는다면 한국의 총인구 감소 시점도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 0.45%인 인구성장률이 2032년 0%를 기점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이란 전망을 심각히 받아들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