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맨서 프리챌·SK컴즈, 인터파크 쇼핑까지…李대표“후배 창업자들이여, 사소한 실패가 모이면 성공으로 이어진다”
경영학과를 나와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얼리어답터(early adopter) 세상을 열어가는 사람, 1990년대 초 ‘PC는 내친구’라는 책을 내 많은 이들에게 컴퓨터 입문을 하게 해준 사람, 온라인 모임 서비스의 원조로 불렸던 인터넷 사이트 프리챌 창업에 동참한 사람, 삼성물산을 거쳐 프리챌ㆍ다음재팬ㆍSK커뮤니케이션즈 등 IT업계에서 숱한 변신을 한 사람, 현재는 ‘펫’에 눈이 꽂힌 사람….
인터넷서비스의 1세대로 불리는 이태신 인터파크 쇼핑부문 대표는 설명을 하자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만큼 그의 인생 줄기의 핵심은 과감한 도전과 변신이다.
강남 테헤란로에 위치한 인터파크 사옥에서 최근 이 대표를 만났다. 첫마디를 강하게 내놨다.
“경력이 참으로 다양하시네요. 그렇게 변신하고 또 변신한 이유가 뭡니까?”
“글쎄요. 역마살이 끼었나보죠. 그냥 하다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어찌보면 싱거운 답이 돌아온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의 경력을 보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숱한 도전’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사실 인터파크보다 프리챌의 초창기 맴버로 유명한 인물이다. 전제완(현 싸이월드 대표) 씨와 김용진(현재 착한경영연구소 소장) 씨, 걸출한 두 인물과 함께 프리챌의 시작을 함께했다. 프리챌은 온라인 모임 서비스의 원조격인 인터넷 사이트다. 이들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선후배 사이이자 삼성물산의 동료였다. 프리챌은 사라졌지만, 그 이름은 여전히 이 대표에게 훈장으로 남아있다.
이 대표는 프리챌 외에도 다음재팬, SK커뮤니케이션즈(이하 SK컴즈) 등 굵직한 IT기업을 두루 거쳤다. 성공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지만, 가끔은 실패를 맛보면서 굴지의 기업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봤다. 그의 인생도 그것과 함께 희열과 실망, 그리고 재도전으로 점철됐다.
▶삼성맨 출신의 국내 인터넷서비스 1세대 CEO =“당연히 이태신도 나가는 줄 알았대요.”
잘나가던 삼성맨이었던 이 대표는 친한 형들이었던 전제완ㆍ김용진 씨의 권유로 삼성을 퇴사하고 벤처기업 프리챌에 합류하기로 결심했다. 이 대표는 전제완ㆍ김용진 씨와 함께 삼성에 다니면서 ‘PC는 내친구’라는 컴퓨터 서적을 썼다. 컴퓨터 입문서인 그 책이 대박나면서 12만부가 팔렸다. 이 대표는 자연스럽게 IT벤처를 꿈꾸기 시작했다.
“뒤도 안돌아보고 나왔어요. 그만큼 확신이 있었으니까요.”
그는 지금도 그 시절 선택에 대해 당당하게 얘기한다. 후회하지 전혀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열악했다. 지금은 전설이 돼버린 프리챌이지만 당시에는 조그만 IT벤처기업에 불과했다. 그가 프리챌에서 맡은 역할은 비즈니스 총괄 부사장, 하지만 실상은 ‘잡무 담당’에 가까웠다. 영업과 마케팅, 서비스기획, 재무랑 회계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일이 없었다.
“말이 좋아 총괄 부사장이지 정말 다양한 방면의 일을 했습니다. 은행창구를 뛰어다니거나 마케팅을 위해 길거리에서 유인물을 나누어주기도 하고 투자사에 직접 찾아가 투자를 받기도 했어요. 디자인 자회사 사장직을 맡기도 했죠. 그때 많은 것을 경험했고, 그만큼 많은 것을 배웠죠. 어쩌면 그게 인생의 자양분이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프리챌이 흔들리면서 퇴사한 뒤 , 이 대표는 회사를 나왔다. 최고의 IT기업의 창업맴버였던 이 대표에겐 수많은 러브콜도 뒤따랐다.
하지만 이 대표는 가는 곳마다 모진 풍파를 겪었다. 사업은 잘 되지 않았고 쉽게 문을 닫았다. 다음재팬은 일본 시장에 정착하지 못했다.
그래도 인내를 갖고 기다렸다. SK컴즈에 입사했을 때 그의 능력은 빛을 발했다. 당시 그의 역할은 무너져가던 싸이월드의 총괄본부장이었다. 싸이월드는 트위터ㆍ페이스북과 같은 외국 SNS에 밀려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대표는 이때 싸이월드의 사진첩에 주목했다. 당시 싸이월드는 가입자 수에서 트위터ㆍ페이스북에 밀렸지만 사진 업로드 기능이 잘돼 있었다. 그는 사진첩을 강화하기 위해서 사진 보정 서비스 ‘싸이메라’를 선보였다.
“페이스북과 정면 승부는 힘들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보정하는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시선을 돌렸어요. 싸이월드의 강점인 사진첩을 살려서 게릴라전으로 가자고 생각했습니다.”
앱은 대박이 났다. 싸이메라는 서비스 3개월만에 1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세계적으로 2억5000만명이 쓰는 서비스로 성장했다. 싸이월드가 무너진 뒤에도 SK컴즈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됐다.
▶‘톡집사’는 지금까지 경험이 집대성된 작품 =그때의 경력은 싸이월드가 무너진 뒤에도 이 대표를 인터파크에 있게 만들어줬다.
인터파크에서 주어진 특명은 사라진 쇼핑부문의 기반을 닦는 것이었다. 인터파크는 1997년 데이콤인터파크로 시작한 국내 최대의 온라인 커머스기업이었지만, 자회사인 G마켓을 이베이코리아에 팔고 쇼핑부문 경쟁력이 약화됐다. 하지만 온라인 커머스 시장이 커지면서 다시 쇼핑몰 사업에 도전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한번 1등 업체를 만들어 판 회사인데 또 새로운걸 만들어야 한다니 막막했어요. 하지만 온라인쇼핑 시장이 점차 성장하는만큼 아직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대신 기존의 오픈마켓이 아니고 새로운 커머스의 형태를 선보이겠다고 결심했죠. 마치 싸이메라처럼요. 인터파크만의 특색을 살리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대표는 ‘톡집사’를 고안했다. 채팅창과 비슷한 형식을 띠고 있던 상품 검색 도우미 톡집사는 고객이 원하는 상품의 정보를 입력하면 상품개요부터 특징ㆍ최저가까지 다양한 것을 알려주는 서비스다. 이 서비스 핵심은 ‘객관적인 정보를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인터파크 뿐만 아니라 티몬ㆍ위메프나 11번가 등 다른 온라인 커머스 업체의 상품도 검색해서 최저가를 알려준다.
쇼핑을 키우랬더니 정작 상품검색 서비스에 열중하자 초창기 사내반응은 좋지 않았다. 다른 쇼핑몰의 상품까지 검색해주니 더욱 그랬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톡집사는 시장에 연착륙했다. 톡집사 이용고객은 인터파크 상품을 구매하는 비율이 기존 접속자 대비 2.5배가량 높다. 고객관리 노하우도 늘어서 응답의 95%를 3분안에 처리할 정도로 발전했다.
그러자 회사 내 반응도 달라졌다. 인터파크는 현재 톡집사의 사업 역량 강화와 서비스범위 확대를 위한 개발과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처음 용팔이(용산 전자상가 전자제품 매매상들이 흥정을 하는 모습을 낮춰 부르는 말)가 장사하는 데서 콘셉트를 착안했어요. 오프라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거죠. 그리고 프리챌에서 얻은 SNS경험을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싸이메라에서 보여준 게릴라전술, SNS와 오프라인 전자거래, IT기업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며 얻은 경험이 영향을 준겁니다.”
프리챌에서의 SNS 사업 경력, 싸이월드의 보조서비스 싸이메라의 경험이 톡집사의 개발에 큰 힘이 된 것이다.
▶내 꿈은 밴처 컨설턴트 =그래서 그는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실수가 있을지언정 실패는 없습니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성공으로 향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사무실 시계는 항상 5분이 빠르게 설정돼 있다. 5분 더 빨리 움직여서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고 생각하기 위해서다.
이 대표의 마지막 꿈은 후배 창업가들에게 전수하는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가 되는 것이다. 그는 십수년간 IT기업에서 배운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싶다고 했다.
이런 그에게 후배 창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없는지 물어봤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절대 실패가 아니다’라고 해주고 싶어요. 사소한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고요. 이런 실패가 하나하나 모이면 언젠가는 성공으로 이뤄지는 법이거든요. 행여나 실패하더라도 망가지지 않을 정도의 실패라면 자주 하는 것도 괜찮다고,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실패를 성공의 밑거름으로 삼아온 관록과 절대 확신이 묻어나온다. 이 말을 할때 그의 눈은 때마침 반짝였다.
김성우 기자/
ysk@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