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대기 순번, 일일이 확인 불가 -아이 한명인 워킹맘, 사실상 맨 끝순위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 2014년 4월 복직을 앞두고 아이를 보낼 어린이집을 알아봤다. 그런데 보낼 수 있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물론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출산 전부터 서울시 보육포털시스템에 입소대기 신청을 해놨다. 하지만 여전히 수십, 수백번째였다. 급한 마음에 약간 거리가 떨어진 곳까지 전화를 돌렸고, 어린이집 입소는 3월에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3월 입소 기간을 놓쳤으니 더욱 자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도 약간 떨어진 가정어린이집에서 한 아이가 적응을 못해 곧 그만 둘 것이란 이야기를 듣고, 다음 날 바로 입소를 하게 됐다. 그 어린이집은 대부분의 아이가 4시쯤 하원을 한다는 말을 듣고 그 시간에 맞출 수 있다고 한 것 뿐인데 바로 들어오라는 말을 들었다. 순번이 아니어도 말만 잘하면 어린이집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됐다.
하지만 내가 진짜 순서가 안됐는지는 여전히 알 수가 없다. 당시 원장은 “어머니 집이 멀텐데 오실 수 있나요?”하고 물었다. 이후에도 집이 가깝고 바로 올 수 있는 사람 위주로 연락을 하는 것을 보니 순번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더욱이 워킹맘은 전업맘에 비해 아이를 오래 맡기는 경향이 있으니, 어린이집 원장이 선뜻 연락을 먼저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린이집 순번과 관련해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원장의 순번 조작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전국의 수많은 어린이집을 일일이 조사할 수도 없고, 또 학부모에게는 순번 리스트가 공개되지 않기때문이다. 누가 몇번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의를 제기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답답한 마음에 서울시에 문의를 했지만 “특정 어린이집이 순번에 문제가 있다고 민원(?)를 제기하면 조사해 적발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일일이 파악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러니 원장의 순번 조작이 암암리에 이뤄지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후에도 어린이집 순번이 법대로(?) 지켜지지 않는 사례는 주변에서 쉽게 목격됐다. 오죽하면 “(어린이집에 들어가려면) 무조건 원장에게 자주 찾아가라”는 말이 공공연히 들릴까. 아직도 입소대기 신청을 하고 순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실제로는 자주 찾아가고 부탁을 하면 비교적 쉽게 받아주는 곳이 많아 보인다.
가정어린이집은 물론이고 서울형 어린이집도 순번이 법대로 지켜지지 않는 곳이 있다. 아파트 단지 내 서울형 어린이집의 경우, 아파트 입주민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 같은 순위라면, 입주민이 100% 우선 입소다. 하지만 이런 기준을 아는 학부모는 많지 않다. 심지어 어린이집 원장도 이런 규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2015년 말 단지 내 어린이집으로 옮기려고 어린이집 원장에게 “단지 내 서울형 어린이집은 입주민이 100% 우선권을 갖지 않느냐고”고 물었지만, 답변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울시 담당자에게 “같은 순위라면 입주민이 100% 우선 입소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원장과 직접 통화를 하게 한 뒤에야 나중에 추가 합격으로 간신히 단지 내 어린이집에 입소할 수 있었다. 입주민 우선권이 적용되지 않았다면, 그리고 입주민 우선권에 대해 알아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면 입소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국공립어린이집의 경우, 순번대로 연락을 한다. 하지만 아이가 한명인 워킹맘에겐 국공립어린이집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아이 한명인 워킹맘은 사실상 입소대기자 중에 가장 낮은 순번이기때문이다.
법적으로는 아이 한명당 한 등급이 올라가고, 일을 하는 경우 한 등급이 높아진다.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일을 하지 않아도 취업을 준비중이라는 서류를 내면 ‘취업중’인 것으로 인정된다. 결국 전업맘들은 이런저런 식으로 대부분 서류상 워킹맘이 되기때문에 아이 한명인 워킹맘은 사실상 가장 순번이 느리다.
당장 일을 해야 하는 워킹맘이지만, 아이 한명 낳고서는 제대로 일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출산 전 입소대기 신청을 하는 것도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내가 출산 전 입소대기 신청을 했더라도 나보다 아이가 많은 사람이 뒤늦게 입소 신청을 하면 내가 후순위로 대거 밀리기때문이다.
지난 달 유치원 입학이 확정된 한참 뒤에 인근 국공립어린이집에서 입소가 가능하다는 연락을 처음 받았다. 그렇게 기다리던 국공립어린이집이 이제는 필요가 없게 된 5세를 앞두고서야 연락이 온 것이다. 5세가 되면 유치원에 가는 아이들이 많아 어린이집에 자리가 비는 경우가 많기때문이다.
워킹맘에게 어린이집이 가장 필요한 것은 4세까지다. 4세까지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은 참 어렵다. 말도 못하는 어릴 적, 애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일을 그만두는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보곤 했다. 당장 내 주변에는 일을 그만두고 전업맘이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워킹맘은 손에 꼽을 정도다. 지금은 휴직을 하고 있어도 복직을 앞두고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도 있다.
아직까지 한국은 워킹맘이 애를 맡기고 일할 여건이 마련되지 못했다. 마음 편히 일하는 것은 사치에 불과하고, 아예 맡길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다가 전업맘이 되곤 한다.
“저출산이 문제”라고만 외치지 말고, 왜 저출산이 되고 있는지 그 원인을 파악해보면 의외로 답은 쉽다. 일을 하든지, 하지 않던지 똑같은 조건으로 어린이집 입소가 이뤄지니, 일에 치이고 육아에 치이는 워킹맘은 결국 직장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한명인 워킹맘이 사실상 후순위로 밀려 어린이집 입소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서는 안되고, 서울시 보육포털시스템의 입소대기 순번도 제대로 된 점검이 이뤄져야 한다. 시스템만 갖추고, 현실에서는 원칙대로 적용이 되지 않는다면 있으나마나한 시스템에 불과하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입소 대기 순번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공개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어린이집 원장이 개인 사생활을 근거로 공개를 하지 않고 있는데, 내 순번만 갖고는 조작이 이뤄졌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아울러 워킹맘들이 차별을 받지 않도록 확실한 가점이 있어야 한다. 일을 하지 않고 아이들만 돌보는 전업맘에게도 물론 쉴 시간이 필요하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필요가 있어 보이긴 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일을 하는 것이 사실상 아무런 가점이 되지 않는다면, 일하면서 애를 키우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전 둘째는 안되요. 하나 키우기도 이렇게 힘든데요. 누가 애를 봐주는 것도 아니고, 한국은 아직까지 엄마가 일일이 아이를 돌봐야하는 시스템이잖아요. 어릴 적에 한번,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또 한번 워킹맘에게 고비가 온다고들 하잖아요. 한국의 워킹맘은 조부모나 도우미가 전적으로 돌봐주지 않으면 힘든 구조에요.”
이 같은 워킹맘들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저출산 극복은 말뿐인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