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학자들에 들어보니 사적 관계가 정당한 권위 넘어서 비공식라인 친밀한 한국적 문화 “국가 시스템 부도 직전“ 지적도
최순실 씨가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전부터 연설문 수정에 개입하는 것은 물론 외교나 대북 관련 민감 정보가 포함된 정부 부처 문서까지 받아보고 청와대 관련 행사와 인사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사상 초유의 비선 실세 스캔들로 번지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사적 관계가 정당한 권위를 넘어선 권위주의의 폐단이라고 한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다. “상식이 깨졌다. 불통과 오만이 합쳐진 밀실정치는 정말 안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우선 정치ㆍ사회학자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상식 밖의 일’이라고 규정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전혀 전문성이 없는 개인마저도 국정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며 이번 사건을 다른 정권의 비선 실세 스캔들과 구분했다. 그는 “김영삼 정부 시절 논란이 됐던 아들 김현철 씨만 하더라도 주변 훈련된 정무감각과 전문성을 갖춘 비선 그룹이 있었는데 이번엔 그것도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최순실 스캔들이 공식적인 직위와 기관 별 역할 분담에서 오는 정당한 권위는 오간데 없고 국정이 최고 권력자의 사적인 감정을 사로잡은 최 씨 개인에 의해 휘둘린 ‘권위주의의 폐해’에서 비롯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제도는 갖춰져 있지만 이를 운영하는 데 있어 의식이 따라가지 못하다보니 형제나 자녀를 넘어 한 사인(私人)까지 비선 실세로 행동하게 됐다”며 “예전부터 이어져온 우리나라 정치 의식에서 기인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공식라인보다 학연, 지연처럼 친숙함ㆍ친밀함에 쏠리는 한국적 문화에서 비롯됐다”며 “최고 권력자의 신뢰를 받는 실세는 실제 권력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이 같은 태도로 인해 제도권에 있는 공직자들이 업무 의욕을 잃어버리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고 꼬집었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쉽게 이를 받아들이거나 상황이 정리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공감대도 형성됐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청와대 공식 문건이 민간인에게 유출됐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법적 공방이 오고가면서 끝없는 싸움이 될 것”이라며 “박 대통령이 보좌진이 완비된 이후에는 최 씨가 개입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앞으로 또 다른 의혹이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의문”이라고 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이나 야당은 사과를 바란 것이 아니라 검찰 수사를 비롯해 사실을 규명하길 원했다”고 잘라말했다. 그동안 어떤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과를 아껴왔던 박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를 한 것은 이번 사건을 회피할 수 없다는 위기 의식이 반영된 것이지만, 이로써 끝나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이번 사건을 해결하려면 논란의 중심에 선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해임하고 사법처리를 서둘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정수석이라는 자리가 청와대 대통령과 핵심참모와 관련된 문제를 예방하고 차단해야 하는데 이런 국기문란 행위를 가만 둔 것은 직무 유기를 한 것”이라며 “이런 우 수석이 수사 보고를 받고 지휘를 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에 특별검사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준한 교수 역시 “미국의 경우라면 대통령이 나서서 수사를 받겠지만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좌지우지하는 우병우 수석을 가만 두는 것 보면 형사적 책임에 응할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서 교수는 “박 대통령이 특별감찰관 제도를 도입했지만 대통령 스스로 감찰관을 물러나게 해 무력화됐다”며 “독립기관으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세워져야 이런 문제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조선시대 상왕정치도 아니고, 정말 상식이 깨졌는데 미래세대가 뭘 보고 배울지 정말 걱정된다”며 “국가의 정신이나 시스템이 부도사태 직전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고 했다.
원호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