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월드투어’ 인프라 개척한 첫 그룹
2015~2016년 메이드 투어 150만명 동원
21일부터 대형 스타디움 월드투어 돌입
“품격 있게 나이 들어가는 아이돌의 모범”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월드컵에 맞먹는 효과.”
K-팝 그룹이 월드투어에서 일으키는 경제효과에 해외 매체들은 앞다퉈 이런 수사를 붙인다. 지금의 K-팝은 명실상부 ‘투어의 시대’로 돌입했다. “월드투어 돈다”는 말이 일상이 된 현재, 그 시초를 거슬러 올라가면 빅뱅이 존재한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 겸 글로벌 K-센터장은 “빅뱅이 K-팝 아이돌의 월드투어라는 개념을 가장 제대로 만들어낸 그룹”이라고 했다.
과거 K-팝의 영토는 동아시아에 집중됐다. 이 지역 밖에선 미국 등 일부 도시를 방문하는 수준에 머물렀고, 그곳에서도 교민 대상의 공연인 경우가 많았다. 이 교수는 “월드투어를 해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니 여러 지역에서 대규모로 할 수 없었다”고 봤다.
빅뱅은 2011년 영국 벨파스트에서 열린 ‘2011 MTV 유럽 뮤직 어워즈(MTV EMA, MTV Europe Music Awards)’에서 아시아 아티스트 최초로 ‘월드와이드 액트(Worldwide Act)’ 최우수상을 수상, 2012년 미니 5집 ‘얼라이브(ALIVE)’로 한국어 앨범 사상 최초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150위에 진입하며 글로벌 투어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투어가 시작된 것도 이때다. 2012~2013년 ‘얼라이브 갤럭시 투어( ALIVE GALAXY TOUR)’로 16개국 25개 도시에서 약 80만 관객과 만났다.
이규탁 교수는 “빅뱅은 단순히 교민 대상 행사가 아닌, 전 세계 현지 팬들을 대상으로 전 대륙을 순회하는 ‘진정한 의미의 월드투어’ 개념을 K-팝에 최초로 확립한 그룹”이라며 “빅뱅이 과감하게 개척하고 닦아놓은 글로벌 공연 인프라가 있었기에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BLACKPINK)의 대규모 스타디움 투어가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실현될 수 있었다”고 봤다. 후배 그룹들이 월드투어를 할 수 있도록 그 길을 넓고 평평하게 닦아준 선구자가 빅뱅이라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월드투어를 이어가며 빅뱅은 전 세계 공연 시장에서 K-팝 그룹 사상 최고 수준의 관객 동원력을 증명했다. 2015~2016년 펼쳐진 ‘메이드 월드 투어(BIGBANG MADE WORLD TOUR)’는 15개국 32개 도시 66회 공연을 통해 총 1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당시 K-팝 단일 투어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특히 일본에선 현지 정상급 아티스트조차 달성하기 어려운 ‘5대 돔 투어(도쿄돔, 교세라돔 오사카, 후쿠오카 야후옥션돔, 나고야돔, 삿포로돔)’를 해외 가수 최초로 5년 연속(2013~2017년) 개최하며 누적 420만 5500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에 전 세계 단독 콘서트 누적 관객 수는 800만 명을 넘어선다. 업계에선 “K-팝의 해외 비즈니스를 ‘음반 판매’에서 대형 스타디움을 지속적으로 채우는 ‘라이브 비즈니스’로 전환한 결정적 계기”로 본다.
사실 빅뱅의 20년이 늘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멤버들의 사법 리스크와 탈퇴(승리·탑), 긴 군백기와 그룹 재편의 풍파도 겪었다. 그럼에도 2022년 발표한 4인조 디지털 싱글 ‘봄여름가을겨울 (Still Life)’의 폭발적 흥행으로 막강한 ‘브랜드 회복력’을 입증했다.
빅뱅 20주년의 행보는 ‘아이돌의 수명은 짧다’는 가요계의 오랜 불문율을 깨고, K-팝 그룹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주는 본보기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빅뱅은 과거 1세대 아이돌처럼 반짝 전성기를 누린 이후의 일회성 재결합 모델을 탈피했다”며 “빅뱅을 비롯해 빅뱅 이후에 등장한 그룹들의 재결합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임 평론가는 “지금의 K-팝은 저변 확대로, 과거 음악을 디깅(digging, 깊이 파며 몰입)하며 소비하던 팝 장르처럼 자리하고 있는데, 대표 주자가 바로 빅뱅”이라며 “현재 활동 중인 많은 그룹의 모태 격이면서 새로운 세대가 K-팝 계보를 학습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고 봤다.
지드래곤, 태양, 대성의 3인 체제로 정비된 빅뱅은 데뷔 20주년을 맞아 신곡 ‘빅(BiiiG)’을 냈고, 21일을 시작으로 대형 스타디움 월드투어 대장정에 돌입한다. 지난해부터 예고한 20주년 대축제의 막이 마침내 오르는 것이다.
김도헌 평론가는 “베테랑 해외 록 밴드들이 투어를 돌며 오랜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처럼, 빅뱅도 신곡으로 자신들을 증명하기보다 팬들과 호흡하는 축제의 장을 만들고 있다”며 “신곡에 대한 갈증은 이미 독자적 입지를 굳힌 솔로 활동으로 풀고, 완전체 무대에서는 검증된 메가 히트곡들로 관객과 즐기는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늘 젊고, 아름다운 완벽함만을 강요받는 K-팝 신에서, 빅뱅은 베테랑으로서 품격 있게 나이 들어가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이규탁 교수 또한 “1세대 그룹들이 간헐적인 이벤트성 공연에 머무는 것과 달리, 빅뱅은 멤버 각자가 솔로 아티스트로서 꾸준히 활동하며 쌓은 역량을 그룹 활동의 시너지로 환원하고 있다”며 “자기 음악을 스스로 만드는 창작력을 바탕으로 20주년 이후에도 활동할 수 있는 K-팝 장수 그룹의 모범적 청사진을 제시했다”고 짚었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3인 체제 빅뱅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느슨한 연대’를 통한 브랜드 유지로 꼽았다. 정 평론가는 “멤버 개개인의 솔로 역량과 브랜드가 워낙 막강하기 때문에, 과거처럼 잦은 정기 앨범 활동을 이어가기보다는 상징적인 브랜드로서 ‘느슨한 형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며 “20주년처럼 의미 있는 분기점마다 대형 투어를 돌거나 기념 싱글을 발표하는 유연한 방식을 통해 독보적인 메가 브랜드의 생명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sh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