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태어날 때부터 희귀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였다. 이름조차 생소한 결절성 경화증. 유전자 이상으로 몸이 종양을 억제하지 못한다. 뇌, 심장, 피부 등 여러 장기에 종양이 생긴다. 뇌의 손상으로 지적 장애와 뇌병변 장애도 수반된다. 일상 생활이 어렵다. 기대 수명은 불과 28~33세.
부모는 아이가 갓난아기일 때 이혼했다. 친부가 홀로 아이를 키웠다. 20대가 되자 아이의 뇌 종양이 점점 커졌다. 친부는 제거 수술 대신 약물치료를 택했다. 지난 2024년 2월, 아이가 사망했다. 향년 25세.
친모는 이혼 후 한 번도 아이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그런 친모가 친부를 상대로 5000만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친모 A씨는 “친부가 수술을 선택하지 않아 아이가 죽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판 과정에서 “친부가 살인죄를 저질렀다”고 했다.
경제적·심리적 부담감에 수술 대신 약물 치료
아이의 뇌에 종양이 발견된 건 지난 2019년 10월이었다. 병원에선 “종양이 확실히 성장하고 있다”며 “방치할 경우 뇌압 상승 등으로 상태가 나빠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친부 B씨는 수술 여부에 대해 곧바로 결정하지 못했다. 전신마취 수술에 대한 심리적·경제적 거부감을 느낀 것으로 조사됐다.
병원 사회사업팀의 도움을 기다리는 사이 아이의 상태가 나빠졌다. 지난 2021년 11월, 뇌압 상승으로 시력을 상실했다. 병원에선 “이젠 수술을 하더라도 시력이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종양을 제거하지 않을 경우 경련이 지속되며 사망할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발작이 반복되자 B씨는 아이의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검사 결과, 병원에선 “증상 호전을 기대하고 하는 수술은 아니다”라며 “연명 외에 치료 효과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술 난이도가 높아 수술에 의한 사망 가능성은 5% 정도지만 예상할 수 없는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80%로 높다”고 밝혔다.
결국 B씨는 수술을 받지 않기로 했다. 경제적인 문제가 있었다. 병원 설명대로 추후 아이의 상태가 오히려 악화할 가능성도 있어 부담을 느꼈다. 수술 대신 약물 등으로 보존적 치료를 받기로 했다. B씨는 아이를 요양병원에 입원시켰다. 한때 증상이 호전되기도 했으나 2년 뒤 아이는 숨을 거뒀다.
친모 “친부 수술 포기는 살인 저지른 것”
친모 A씨는 아이의 사후 진료기록을 확인했다. 일부 발췌된 부분을 확인한 뒤 친부를 상대로 지난 2024년 8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수술하지 않을 경우 사망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도 B씨가 수술을 결정했다가 거부했다”며 “보호자로서 계속적인 치료를 통해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저버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형법상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살인을 저지른 것”이라며 “5000만원을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부작위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일부러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법원서 기각…오히려 친모 태도 지적
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을 맡은 수원지법 민사22단독 장성신 판사는 지난 6월 8일,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1심은 “B씨가 부작위에 의해 망인을 살인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결론 내렸다.
1심 법원은 “B씨는 망인을 치료하기 위해 수차례 병원에 내원해 안과, 신경외과, 비교기과 등 여러 진료과 주치의와 만나 상담하고 검사를 받으며 치료에 필요한 적절한 조치를 받기 위해 노력했다”고 살폈다.
이어 “B씨는 처음부터 뇌종양 수술을 거부했던 게 아니다”라며 “결절성 경화증의 경우 유전질환으로 호전되지 않기 때문에 수술을 받더라도 연명 외 치료 효과가 없고 연명 기간도 길지 않기 때문에 오랜 고민 끝에 망인에 대한 수술적 치료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감정의 소견에 따르면 결절성 경화증 환자의 사망 중위 연령은 28~33세에 불과하다”며 “수술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사망 결과를 회피하거나 유의미한 기간 연명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 과정에서 감정의가 “망인이 2021넌 11월에 수술을 진행했다고 하더라도 향후 3년 생존율은 75% 정도였을 것”이라고 의견을 제시한 것도 근거로 삼았다.
1심은 오히려 A씨의 태도를 지적했다.
법원은 “B씨는 선천성 장애를 갖고 태어난 망인을 약 25년 간 홀로 양육했다”며 “이 과정에서 A씨는 이혼 후 망인이 사망에 이를 때까지 단 한 번도 망인을 접견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이어 “A씨는 망인이 생전에 결정성 경화증 및 합병증으로 어떤 증상과 어려움을 겪었는지, 병증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수술을 진행했을 때 생존 가능성은 어느 정도 됐는지, 망인의 의사는 어땠는지, B씨가 수년간 어떤 협의를 거쳐 수술적 치료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게 됐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질타했다.
이 판결은 지난달 7일 확정됐다. 1심 판결에 대해 A씨가 항소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