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세운4구역 건물높이 145m로 완화
초고층 완공후 종묘 조망권에 대한 시각차
대법, 서울시 손 들어주자 양측 대립 격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취소 가능성
지나치게 넓은 보존구역, 재산권 침해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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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서울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둘러싼 논쟁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은 종묘 앞에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세계유산 지정이 취소될 수 있다며 반대하는 반면, 서울시는 세운지구 개발로 종묘 경관을 훼손하지 않는데다 개발 지연에 따른 지역 주민들의 재산권 침해도 고려해야 한다며 대립하고 있다. ‘종묘대전’이 문화적, 사회적 문제를 넘어 정치적 문제로까지 비화하는 가운데, 양측이 갈등을 벌이는 이유와 주요 쟁점을 짚어본다.
세운 4구역이 종묘 조망에 미칠 영향 논란
최근 종묘 일대를 둘러싼 갈등이 재점화된 것은 서울시가 세운4구역의 건물 높이 계획을 2배 이상으로 늘리면서다.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세운재정비촉진지구와 세운4구역에서 가능한 건축물의 최고 높이를 70m에서 145m로 변경하는 내용이 담긴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변경) 및 지형도면’을 고시했다. 종로변은 98.7m, 청계천변은 141.9m까지 건물 높이를 조정했다.
여기에 대법원이 지난 6일 문체부 장관이 제기한 ‘서울특별시 문화재보호조례 개정조례안’ 의결 무효확인 소송에서 서울시의 손을 들어주자 양측간 갈등이 더욱 첨예해지는 형국이다. 대법원은 국가유산청과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다 해도 서울시의 조례 개정은 법령 위반이라 보기 어렵다고 봤다.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은 2004년 도시환경정비사업 구역으로 지정된 이래 20여 년간 반복돼 왔다. 건물 최고 높이는 당초 90m에서 104m로 변경했다가 오세훈 서울시장 1기였던 2009년에는 122.3m까지 키워 서울시 심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후 문화유산위원회의 우려로 인해 반려된 뒤 72m로 낮아졌다.
문체부와 국가유산청은 수 년간에 걸친 기관간 협의 사항을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변경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있다. 여기에 종묘 앞에 초고층 건물이 들어설 경우 1995년 한국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의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종묘 앞에 세워질 높은 건물은 서울 내 조선왕실 유산들이 수백 년간 유지해온 역사 문화 경관과 종합적 가치를 직접적으로 위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의 입장은 다르다. 시는 세운4구역에 초고층 건물이 들어선다고 해도 종묘 경내에 그늘이 발생하지 않아 실질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경관녹지 대신 개방형녹지로 계획을 변경하면서 주변 시야가 트여 용적률과 높이를 완화해도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오 시장은 “남산부터 종묘까지 쭉 뻗은 녹지 축이 생기면 세운상가가 종묘를 가로막을 일이 없다”며 “세운지역 재개발 사업이 종묘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양측이 제시한 개발 예상도를 보면 이러한 입장차가 확연히 드러난다. 본질은 같지만 녹지 공간 조성을 강조한 서울시의 세운4구역 가상도는 고층 건물들 사이에 녹지 축이 강조되 종묘의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국가유산청이 공개한 경관 예상도는 화각을 좁게 해 세운4구역의 고층 빌딩이 불쑥 튀어나온 모습을 강조했다.
유산청, 영향평가 요구…서울시는 ‘글쎄’
세운4구역 재정비 사업에 대한 세계유산영향평가 수용 여부도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국가유산청은 그동안 수차례 서울시에 세계유산영향평가 실시를 요청했으나, 서울시는 이를 거부해 왔다. 심지어 유네스코도 지난 4월 서울시에 재정비 사업이 종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전체 계획에 대한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으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종묘에 대한 세계유산영향평가 이행은 법적·행정적 근거가 없어 이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국가유산청이 종묘가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 30년이 지나도록 종묘에 완충구역을 설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유네스코의 자문기관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의 검토 보고서와 세계유산영향평가 권고 내용이 담긴 공문에 대해선 “(받기는 했으나) 영어 원문으로 작성돼 의미를 파악할 수 없어 대응 방안을 마련할 수 없다”고 회신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이 가운데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회는 지난 13일 종묘 일대를 세계유산지구로 지정하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지정 예고를 올린 지 1년여 만이다.
세계유산지구는 세계유산 구역과 그 보존에 필요한 완충구역을 말하는 것으로,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세계유산법’)에 따라 국가유산청장이 지정해 관리할 수 있다. 세계유산법에 따르면, 세계유산지구에서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건축물 또는 시설물을 설치·증설하는 사업을 하려는 자(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포함)는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문체부와 국가유산청이 우려하는 종묘 세계유산 취소에 대해 오 시장은 “세계유산 지정 해제는 그야말로 기우”라면서 “유네스코를 비롯해 세계유산 지정 실무를 담당하는 분들이 종묘 경계로부터 100m 이상 떨어진 건축물에 대해 걱정한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영국 리버풀 또는 일본 도쿄 왕궁…선택은
유네스코는 지난 1995년 종묘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당시 인근 지역에서 고층 건물 인허가가 없다는 점을 보장할 것을 명시했고, 정부는 이를 받아들인 바 있다. 만약 서울시가 계획대로 재개발을 진행한다면 당시 유네스코와 체결한 약속을 깨게 되는 셈이다.
아울러 종묘 주변에 고층 빌딩이 들어서면 세계유산에 요구되는 ‘시각적 완전성(Visual Integrity)’이 훼손될 수 있다. 개발 건축물이 세계유산특별법이 정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훼손했다고 판단되면 세계유산 지정 철회도 가능하다. 이 경우 유네스코는 ‘위험에 처한 유산’으로 등록하고 개선되지 않으면 등재를 취소한다. 실제로 유네스코의 기준을 유지하지 못해 세계유산 지정이 철회된 사례도 있다. 영국 리버풀 해양산업도시와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이 대표적인 예다.
다만 일부에선 세계유산 보호의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광범위한 보존 구역 설정 때문에 생기는 재산권 침해 문제도 생각볼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그간 서울 종로구, 중구 등의 일대는 ‘땅을 팔 때마다 유물이 나온다’고 말이 나올 정도로 건설 현장에서 여러 유물들이 발견되면서 도심 개발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세운4구역 재개발 역시 문화재 보호 이슈로 수십 년간 공회전을 해왔다.
이에 세운4구역 토지주들은 지난 19일 입장문을 내고 “2009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강남 선정릉도 주변에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지만, 세계문화유산 등재(취소)가 문제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주경상 세운4구역 상임위원은 “영국의 런던타워나 일본 도쿄 왕궁도 주변 200~400m 주위에 재개발이 이뤄져 빌딩들이 들어서 있다”면서 “주 시야각 60도 밖에 위치한 세운4구역만 콕 집어 높이 규제를 강제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현경·손인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