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제는 소비와 투자, 수출 등 삼두마차가 끌어야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 한국 경제는 그러나 수출 주도의 ‘외끌이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 모습이다. 올해 정부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잠재성장률 2%에도 못미치는 1.8%로 제시한 것도 소비와 투자, 즉 내수부문의 취약성 때문이다. 누적된 고물가, 고금리에 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가계가 옷, 차, 먹을거리 등 전방위 품목에 대해 지갑을 열지 않으면서, 지난해 소매판매액 지수가 2003년 ‘카드 대란’ 사태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꺾였다. 국내 기업들의 올해 연구개발(R&D) 투자 심리도 최근 10년 사이 최악이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 따르면 기업들의 R&D 투자 심리를 나타내는 RSI는 지난해 12월 79.6(투자부문), 84.2(인력부문)로 나타났다. 2013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RSI 지수가 90이하로 조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수 부진과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가신인도,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등 국내외 불확실성이 가중된 영향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13일 경제·민생과 직결된 세제 관련 법안을 우선 처리해 달라고 정치권에 호소한 것도 내수 진작의 절박성 때문이다. 올해 몰아칠 경기 한파에 대응하려면 내수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바람을 막아줄 장치가 필요하다. 전통시장 신용카드 공제율 확대, 반도체 투자세액공제 지원, 건설산업 구조조정 지원, 중소·중견기업 임시투자세액공제 연장 등 7건을 민생불안 해소와 산업경쟁력 강화 등을 위한 ‘조세개편 과제 7선’으로 제시했다. 자영업자·소상공인 등 경제침체의 직격탄을 맞게 될 취약계층을 지원할 과제와 연관성이 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될 사안들이다. 여야도 애초에 큰 이견없이 공감대를 이룬 내용들이다.

문제는 계엄·탄핵 정국이 펼쳐지면서 내수 진작 조세개편 법안들이 줄줄이 뒤로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여야정 국정협의체에서 우선 순위로 다뤄봄직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의 적법성, 내란특검법에 외환죄 포함 유무 등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으로 조세개편 과제 논의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여야 합의를 믿고 기다려온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기업들의 낭패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국은행이 경기 부양용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따른 물가 상승 우려에 선을 긋고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정책에 힘을 싣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한다. 물가관리가 최대 목표인 통화정책 기관이 내수 진작의 화급성을 강조할 정도로 소비와 투자 부진은 한국경제의 아킬레스건이 된 상황이다. 정치적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는 정치 일정 못지않게 불황 한파에서 민생을 지키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