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시 핵심 역할을 맡았던 주축 인사들이 모두 입을 맞춘 듯 ‘TV를 보고 알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계엄이 실패로 돌아가자 스스로의 ‘면책’을 위해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취지의 주장들이다. 그러나 경찰 핵심수뇌부는 물론 군 관계자들 역시 관련 발언들이 거짓이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발언이 거짓으로 확인된 일부 인사들에 대해선 영장 절차가 진행중이다. ‘TV보고 알았다’가 유행어가 됐다는 푸념도 나온다.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은 12일 오후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형법상 내란 중요임무종사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계엄선포 3시간 전께 조 청장과 김 청장을 서울 모처 안가로 불러 별도 회동을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조사결과 이들은 그간 국회에서의 발언과 달리, 비상계엄 발령 수 시간 전에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만나 비상계엄 관련 내용을 들었던 것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당시 경찰의 역할은 외곽지원이었다. 군이 직접 요인 납치·체포·구금을 맡았다면 경찰은 핵심요인들의 외곽 경호를 통해 봉쇄라인을 설치하고 반대 인사들이 현장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맡았다. 예컨대 국회 외곽 경비를 맡고 있는 경찰 국회경비대는 국회 출입을 봉쇄했고, 과천 소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외곽 경비 역시 경기남부경찰청에서 파견 지원이 나갔던 것으로 파악됐다. 윤 대통령은 조 청장에게 정치인들에 대한 위치 확인 요청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 청장은 계엄 직후인 지난 5일 국회에 출석해 ‘비상계엄을 언제 처음 알았냐’는 채현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 “언론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조 청장은 신정훈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이 ‘대통령이 직접 전화 했냐’는 질문에 대해선 “아니다”고 답했다. 그러나 확인결과 조 청장은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기 3시간 전, 안가에서 김봉식 서울경찰청장과 함께 윤 대통령을 만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특수단이 조 청장에 대한 영장 신청을 한 것 역시 조 청장의 최초 진술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통상 ‘진술 번복’은 증거 인멸 가능성으로 해석되는 탓이다. 조 청장은 비상계엄 발표 전인 오후 5시 42분께부터 6시 28분까지 집무실에, 밤 10시 2분까지 공관에, 이후 자정까지 집무실에 있었다고 경찰청은 밝힌 바 있다. 양부남 의원은 “내란죄 혐의를 받는 경찰청장과 서울청장이 명확히 소명하기는 커녕 허위 보고를 한 것은 국회를 기만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軍 인사들도 ‘TV보고 알았다’ 해명… 말 뒤집기 사례도
지난 10일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출석한 군 간부들도 줄줄이 ‘TV를 보고 알았다’고 해명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는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주요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렸는데, 이 자리에는 육군본부와 국군방첩사령부 소속 장성 등 군 간부 50여 명이 참석했다. 허영 민주당 의원은 “TV보고 알아? 계엄사령관, 계엄부사령관, 수방사령관 다 ‘TV 보고 알았다’고 처음에 답했으나 사실이 다 밝혀지고 있지 않냐”고 꼬집었다.
허 의원은 “(여기) 50명의 지휘관이 앉아 있는데 TV 보고 안 사람 손들어 보라”고 물었고, 박 총장 뒤에 있던 군 장성 대부분이 손을 들어 ‘TV를 보고 알았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계엄해제 직후에는 ‘TV보고 알았다’는 설명은 비상계엄 선포가 매우 비밀리에 진행됐다는 정황으로 인식됐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계엄 실패 시 면책을 위해 사전에 입을 맞춘 것 아니냐는 의혹이 가중되고 있다.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도 비상계엄 선포를 언제 알았느냐는 질문에 “(비상계엄 당일) 티브이(TV)를 틀어놓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바로 자막으로 떠서 그걸 보고 알았다”고 말했으나 이후 자신의 발언을 뒤집고 1일부터 계엄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중장) 역시 계엄 발표 사실에 대해 “텔레비전 보고 알았다”고 사전 모의설을 부인했다. 여 전 사령관은 홍장원 국가정보원 1차장에게 이재명·조국 등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줬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