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미국 보스톤에 거주할 때의 일이다. 귀가하는 어느 날 저녁, 퇴근길 지하철은 사람들로 매우 빡빡한 상황. 내 몸 하나 겨누기 힘든 사람들에 치이는 상황에 어딘가 조금 불편해 보이는 청년 두 명이 틈을 비집고 겨우 탑승했다. 본의 아니게 그들의 대화를 옆에서 듣다 보니 두 청년 모두 나이보다는 어린 지능을 가진 청년들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교육받아 대중교통을 타고 내리는 것에 익숙한 듯 보였고, 그 좁은 공간에서 탑승하고 내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를 반복해서 건네는 청년들에게 지하철 안의 승객들은 웃으며 응대해 줬다. 심지어 어떤 이는 먼저 말을 건네며 스포츠 이야기와 동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등을 다양하게 하였다. 5세 정도의 어린아이와 어른이 대화를 끊임없이 주고받는 느낌이었다. 30분 이상 같은 공간에서 목적지로 향하며 상황을 지켜봤던 나에게는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실시한 2022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장애인의 21.1%가 일상생활에서 차별을 경험했다고 하며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의 차별 경험이 각 38.1%와 33.8%로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차별을 경험한 주된 장소는 지역사회가 43.2%였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위와 같은 일이 똑같이 벌어졌다면 그 상황은 어떠했을까.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때의 그 상황과 같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는 않는다. 특히 차별을 경험한 장소가 대부분 지역사회라는 것은, 이들이 집 밖으로 멀리 떠나는 일이 없을뿐더러, 그 안에서조차 정당하게 대우받고 있지 못한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날 집에 오면서 개인적으로 집 주변에 살던 고등학생 정도 나이로 보이는 학생이 떠올랐다. 그 학생의 부모는 상당히 점잖게 보이는 사람들이었는데, 아이와 함께 동네를 걷거나 엘리베이터를 탈 때에는 늘 아이의 몸 움직임과 언행을 단속하거나 강제로 막은 게 일쑤였다. 동네 사람들을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을 테다. 말이 상대적으로 많고 몸 움직임이 큰 아이였는데, 지능은 7세 정도 되어 보이는 언행에서 사실 무서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나조차도 우리 아이들이 같이 엘리베이터를 탈 때 살짝 신경이 쓰였던 적이 있음을 고백하고 반성한다. 단순히 물리적 위해에의 신경 쓰임이 아니다. 어떻게 이러한 다양성을 설명할지,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할지 체화되지 못하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7세의 시선으로 한담을 할 수 있는 용기도, 자연스러운 배경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미국의 지하철에서 경험한 이러한 작은 상황에서조차 선진국의 조건을 엿볼 수 있다.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남들과 평균적으로 다르면 어색함을 느끼는 자들이 상당하다는 것은 장애인들이 느끼는 차별에 대한 경험에서 볼 수 있다. 급속하게 경제적 성장을 경험한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을 테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작은 부분부터라도 상대방에 대한 인정과 배려를 의식적으로, 그리고 학습적으로 경험하고 인내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작은 부분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상대방에 대한 포용과 배려로 발전하고, 사회통합과 함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초석으로 작용하리라 확신한다.
이윤진 건국대 건강고령사회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