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106.77원→12월 1183.3원

당시 트럼프 정부 앞 슈퍼달러

지금은 환율 하단이 1400원대

외국인 3일간 국채 1.6조 매도

비상계엄 사태에 이은 탄핵정국으로 정치 리스크가 최고조에 달해 자본시장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9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 등이 표시돼 있다. 환율은 이날 장초반 장중 고가기준 2년 2개월만에 최고치를 찍은 뒤 1430원대 중반에서 거래되고 있다. [연합]

탄핵정국 여파로 환율이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가장 최근 사례인 박근혜 전 대통령 사태 땐 3개월 만에 평균 환율이 76.53원 폭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당시에도 달러 강세 영향에 기초한 환율 상승이었지만, 정치 불확실성도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다.

최근엔 상황이 더 안 좋다. 트럼프 효과로 ‘슈퍼달러’가 돌아왔단 점은 비슷하지만, 환율 레벨 자체가 달라졌다. 당시엔 1200원을 상단으로 봤지만, 지금은 1400원이 하단이다. 달러가 훨씬 더 강해졌고, 원화 체력이 그만큼 약해졌다.

채권시장도 마찬가지다. 탄핵 관련 불확실성이 8년 전보다 더 커지면서 외국인의 국채 매도세도 거세졌다. 최근 3일간 외국인이 내던진 국채 물량은 1조6000억원어치로, 국채를 순매수했던 2016년 말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9일 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2016년 월 평균 원/달러 환율 주간거래 종가(오후3시30분기준)는 9월 1106.77원에서 12월 1183.30원으로 폭등했다.

환율은 ‘태블릿 PC’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 10월(월 평균 1127.65원)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하야는 절대 없다. 차라리 탄핵하라”는 청와대 발표가 나온 11월엔 월 평균 환율이 1163.22원을 기록, 한 달 만에 35.57원 상승했다.

원/달러 환율은 박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발의된 12월에도 상승하며 안정세를 되찾지 못했고, 2017년 1월에도 월 평균 1182.24원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월 평균 환율은 2월(1143.36원)이 돼서야 1100원대 중반으로 내려왔다.

물론 정치 불확실성만 고환율을 이끈 건 아니다. 당시 달러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올릴 수 있단 전망 속에 강세를 나타냈다. 트럼프 효과도 있었다. 그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당선되며 미국 경기가 호황을 누릴 수 있단 기대감이 퍼졌다. 여기에 우리나라 정치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환율 오름세에 불을 붙였다.

지금도 상황이 비슷하다. 두번째 트럼프 시대를 앞두고 슈퍼달러가 돌아왔고, 미국 기준금리 인하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단 ‘신중론’이 대두했다. 가뜩이나 환율 상승을 부추기는 요소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 계엄을 선포하고, 이에 탄핵 정국까지 이어지면서 원화 가치가 치명상을 입었다.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계엄군을 국회에 투입하자 환율은 4일 오전 12시 20분 1442.0원까지 뛰었다. 2022년 10월 25일(장중 고가 1444.2원) 이후 약 2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날 환율 변동 폭(야간 거래 포함)은 41.5원 기록했다. 코로나 여파 등으로 달러가 급격한 강세였던 지난 2020년 3월 19일(49.9원) 이후 4년 8개월만에 최대 폭을 나타냈다.

이후에도 탄핵 국면이 이어지면서 환율은 안정세를 되찾지 못 했다. 6일 원/달러 환율 야간거래종가(7일 새벽 2시 기준)는 거래일(5일)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 1415.1원) 대비 7.9원 오른 1423.0원를 기록했다. 비상 계엄 사태가 외환시장을 강타한 지난 3일 야간 거래 종가(4일 새벽 2시 기준, 1425.0원) 이후 불과 3거래일 만에 1420원대를 재돌파했다.

9일 오전에도 환율은 추가로 올라 장 중 한때 1430원을 기록키도 했다. 주간거래 장중 고가 기준으로 지난 2022년 10월 26일(1432.4원) 이후 약 2년 2개월 만에 최고치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정국 불안 연장이 원화 위험자산 투자심리를 극단적으로 위축시키고 있다”며 “비상계엄에서 시작된 정국 불안 장기화는 국내증시 외국인 자금 이탈을 부추기는 재료이기 때문에 오늘도 원화 위험자산 포지션 청산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년 상저하고 전망은 유지하되 일련의 사태가 원화 가치 추락으로 이어질 악재라고 진단해 단기적으로 상단을 1450원으로 상향 조정했다”며 “1분기와 2분기 전망치를 20원씩 일괄적으로 높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중국이 내년 경기 부양책을 결정하는 중앙경제공작회의가 11일부터 진행된다는 점도 환율 변동성을 키울 수 있는 요인이다. 국내 시장에서 이탈한 외국인 자금이 중국 시장으로 흘러갈 수 있어서다.

이주원 대신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부양 기대감이 재차 형성될 경우 국내 자금 이탈 및 중국 자산으로 유입되지는 않을지 경계가 필요하다”며 “정치 불확실성이 완화되기 전까지 환율은 높은 레벨에서 변동성이 큰 모습을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환율이 1500원에 육박할 수 있단 우려에 대해 “코멘트를 할 때가 아니다”고 답했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지난 7일까지 3일간(12월 4~6일) 외국인은 1478억원의 국채를 순매도한 것으로 집계됐다. 3일간 총 1조5930억원의 국채를 매도한 반면, 매수한 채권은 1조4452억원에 그쳤다. 이는 8년 전 국회에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추진되던 때보다 매도세가 더 거세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가결됐는데, 당일까지 3일간(2016년 12월 7~9일) 외국인들은 국채를 4381억원 팔고 5609억원에 사들이며 종합으론 1228억원 순매수를 기록했었다.

국채 매도·매수 여부는 대외신인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8년 전보다도 현재 우리 경제에 대한 대외신인도가 더욱 악화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외국인 투자자가 불확실성을 이유로 국채를 순매도하면 채권금리가 상승하고 자금 이탈로 원·달러 환율 상승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악순환’도 우려된다.

홍태화·정호원·홍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