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국민연금이 도입되었다. 올해 기준 국민연금은 가입자 2205만명, 수급자 684만명, 기금 1147조원 규모의 세계 3대 연금으로 성장했다.
모든 나라가 그러했듯 국민연금 또한 후한 설계로 시작되었다. 100만원 월급을 받는 근로자가 3만원의 보험료를 내고 60세가 되면 70만원을 받도록 설계된 것이다. 초기 제도설계자들에 따르면 보험료율은 처음에는 낮게 3%로 시작하여 15%까지 서서히 올리려 했으나 9%까지밖에 못 올렸다고 한다. 70%이던 소득대체율은 1998년 개혁을 통해 60%로, 2007년 개혁을 거치며 2028년 40%까지 조정을 앞두고 있다. 두 차례의 조정 이후 개혁의 불씨는 17년간 되살아나지 못했다.
개혁이 멈춘 현재의 국민연금은 수지균형이 맞지 않는다. 소득대체율 40%를 받기 위해서는 수리상 19.7%만큼의 보험료를 내야 하는데, 현재 9%임을 감안하면 10.7%포인트가 부족하다. 이로 인해 1140조원의 기금이 2056년 소진되어 2057년에는 월급의 28%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 현재의 적자구조는 미래에도 영향을 미쳐 매일 885억원, 연간 32조원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 9월 4일 연금개혁안을 발표했다. 그간 연금개혁안을 내지 않거나 복수안을 냈던 정부가 2003년 이후 21년 만에 단일안을 제시했다.
이번 개혁안에는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보험료율은 13%, 소득대체율은 42%로 조정하고, 1147조원의 기금수익률은 4.5%에서 5.5%로 1%포인트를 올리는 내용이 담겼다. OECD 24개국과 같은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검토하고, 청년들을 위해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달리하며, 지급을 보장하는 방안도 포함되었다.
특히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출산·군 복무 크레딧,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을 확대하고, 기초연금을 저소득 어르신부터 40만원으로 인상하며 퇴직연금과 개인연금도 연금역할을 하도록 했다.
정부 연금개혁안은 이제 국회 논의를 앞두고 있다. 연금개혁을 위해 국민연금법, 기초연금법,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에 관한 법을 함께 손봐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국회 논의가 필수적이다. 다행히도 국회에서 방향은 다소 다를 수 있으나, 연금개혁은 필요하고 그 시기는 올해가 적기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맞는 말씀이다. 올해는 연금개혁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이후에는 매년 중요한 선거(지방선거 2026년, 대통령선거 2027년, 23대 총선 2028년)가 매년 예정되어 있어 개혁이 사실상 어렵다. 독일 개혁 총리 쉬뢰더는 “국민들은 개혁에 대해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실제 10~20유로의 고지서가 도달하면 개혁을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은 전날 일정액의 술을 마시면 다음 날 점심을 공짜로 제공한 미국 서부의 한 술집에서 비롯되었다. 손님들은 나중에야 전날 술값에 다음날 점심 금액이 포함된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우리 연금은 거꾸로인 것 같다. 지금 우리가 내지 않은 10.7% 보험료는 그만큼 우리 딸, 아들과 손녀 손자들이 내야 한다. 현세대가 지금 연금개혁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