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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은 “생존하는 종은 가장 강한 종도, 가장 지적인 종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다”라고 말했다. 바이오 연구 역시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끊임없이 변화와 진화를 거듭하며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해 왔다.

지난 14일 열린 2024 바이오미래포럼에서도 데이터와 AI를 융합한 새로운 접근법(NAM, New Approach Methods)이 바이오 연구 혁신의 열쇠로 논의됐다. NAM은 동물실험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 생리와 유사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혁신적 대안으로, 인공장기 칩, 오가노이드, 컴퓨터 모델링, AI 기반 예측 모델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기술은 연구의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하고, 효율성과 재현성을 크게 높여 신뢰할 수 있는 결과를 제공한다.

NAM의 가장 큰 특징은 기술 개발을 넘어 규제과학과 국제 표준을 아우르는 포괄적 프레임워크라는 점이다. 기술 개발 과정에서 생성된 데이터가 규제과학에 연계된다면 혁신적 기술의 개발 속도와 산업화 성공률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정책 동향을 보면 NAM은 이미 바이오 연구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인간 건강과 질병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향상시켜 기존의 동물모델을 대체할 표준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Complement-ARIE’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며, 식품의약국(FDA)는 2022년 동물실험 의무규정을 없애고, NAM을 포함한 과학적 접근법을 허용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유럽연합은 2023년에 비동물실험 기반 규제 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위한 로드맵을 공개하는 한편, 화학물질 규정에 동물실험 대체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포함시켰다. 중국은 일반 화장품의 허가 및 승인을 위한 동물실험을 2021년부터 면제하고, 대체 시험법을 활용한 안전성 평가를 허용하는 등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NAM이 아직 초기 단계지만, 연구와 규제의 혁신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규제 당국은 NAM을 적용하여 동물실험을 최소화하는 새로운 정책을 수립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오가노이드 국제 표준화를 위해 인증 절차를 진행 중이며, 간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독성시험법 개발에 착수하는 등 세계 연구 표준을 정립하고 있다. 또한 질병 모델링과 신약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오가노이드 연구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 다른 기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바이오도 기술 혁신이 발전을 견인한다. 차세대 유전체 해독기술의 발전이 유전체 및 정밀의료 분야의 비약적 발전을 이끌었듯이, NAM은 바이오 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고 있다. 이를 위해 혁신적 아이디어가 지속해서 발전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며, 연구개발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양질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AI 학습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높은 개발 비용, 긴 회임기간, 기업 영세성 등 전통적 어려움에 더해 최근 국내 바이오산업은 글로벌 경제 둔화라는 복합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 NAM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열쇠의 하나로, 연구 효율성과 재현성을 높이는 대안이자 바이오 연구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NAM과 함께 바이오 연구의 새로운 진화가 시작되고 있다. 기술적 환경 변화에 적응하여 바이오경제 시대를 선도하는 글로벌 리더로 도약하자.

김장성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