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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⑥기후재앙 ‘하얀사과’…변해가는 한반도 과일지도 [라스트 포레스트]
[라스트포레스트 - 농작물은 알고 있다]
남부지역 중심으로 열대작물 재배 늘어
키위 2만t…바나나·강황·망고 등 수백·수천t
기존 작물 설곳 잃고 북쪽으로 이동 추세
빨간사과, 더워지고 일교차 적어 착색 안돼
80년 뒤 한반도서 사라질수도
많은 열대작물이 국내에서도 재배되고 있다. 농부 주동일(63) 씨의 농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올리브. [신보경·안경찬 PD]

[헤럴드경제] 이국적인 이파리 사이로 작고 동글동글한 열매가 보였다. 콩알보다는 조금 더 컸고 단단했다. “내후년이면 이 열매로 기름을 짜서 오일을 생산할 겁니다.” 국토 최남단부인 전라남도 고흥군 백일도. 농부 주동일(63) 씨가 열매 달린 나무 줄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네 번의 겨울을 버텨낸 나무라니까요. 이 정도면 기후에 적응을 했다고 봐야죠.”

주 씨가 재배하는 바로 이 열매, 올리브다. 남유럽, 북아프리카 등 지중해 지역에서만 널리 재배되는 줄 알았던 올리브 나무가 전라남도 땅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고 있다. 그것도 이미 5년여 전부터다.

현재 주 씨가 올리브 나무를 경작하는 땅은 5만3000평(17만5200㎡)에 이른다. ‘안 되면 어떡하지…’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 주 씨에겐 걱정이 앞섰지만, 이제는 확신이 먼저다. “불과 7, 8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올리브) 농산데… 기후변화가 모든 걸 바꿔놓았어요.”

한반도에 열대작물이 상륙하고 있다.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등 국토 끝자락에서는 올리브와 망고, 파파야 등 열대과일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키위는 한해 2만t 넘는 물량이 출하되고 있다. 카레의 ‘주재료’로 알려진 강황이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이름표를 얻은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기후변화가 가져온 이색적인 모습이다.

국내에서 재배되던 기존 작물들은 생산면적과 생산량이 감소하고 있다. 노지 재배 농법을 고수하던 농가는 하우스 농법을 겸용하기 시작했다. 비교적 따뜻해진 날씨와 이상기후 여파 탓에 노지재배를 하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면서다.

국내 농가 아열대 작물 재배 현황

열대작물도 Made in Korea

17일 농촌진흥청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생산된 올리브는 0.5t에 달했다. 올리브를 수확한 농가 수는 전국에 8곳. 2018년 대비 2개 농가가 순증했다. 2017년에는 올리브를 수확한 농가가 전국에 단 한 곳밖에 없었던 바 있다. 국내 올리브 생산량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아직 나무가 덜 자란 주 씨의 올리브밭을 포함한 다른 농가들이 올리브를 수확하면 국내 올리브 생산량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작물은 일찌감치 국내에 뿌리를 내렸다. 키위가 대표적이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남해출장소 집계에 따르면 키위는 지난해 재배농가수가 2658 곳, 생산량도 2만3800.8t에 달했다. 2006년 남해출장소에서 집계를 시작할 당시, 1만4682t에 달했던 키위생산량은 지난 2009년부터는 2만t까지 올라와 비슷한 수준을 꾸준히 매해 유지하고 있다.주생산지는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지역이다. 이곳에서의 재배물량의 98%가 노지재배다. 대표 생산지 중 하나인 고흥군의 연평균 기온은 13도(℃)가 넘고 일조시간은 2370시간 이상으로 겨울철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드물다.이미 아열대 기후에 근접한 셈이다.

비교적 해양성 기후에 가까운 남해안과 동해안, 또 서해안 일부지역에서 키위 재배는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 울산광역시에도 재배농가가 있다.

남해출장소 관계자는 “서해안과 동해안 지역에 사시는 농민들이 키위를 재배하고 싶다고 수차례씩 문의전화를 주신다”면서 “해외에서 많이 수입했던 골드키위도 국내 농가에서 재배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 농가 측은 “아직 겨울바람이 매서워, 남해안 지역을 제외하곤 아직까지 100% 키위를 재배하기 좋은 날씨는 아니다”라면서도 “오랜시간 뿌리를 내린 나무들은 추운 겨울에도 노지에서 잘 버텨준다”고 덧붙였다.

카레의 주원료로 알려진 강황은 지난해 전국 367개 농가에서 586.8t이 수확됐다. 망고는 159개 농가 399.3t, 바나나는 61개 농가 1212.7t이 생산됐다. 그외 파파야(688.5t)와 커피(4.9t), 구아바(28.4t)도 결실을 맺으면서 농가수입에 보탬이 됐다. 특히 바나나와 커피 재배가 최근 유행을 타면서 농가수가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포항에서 하우스 바나나 체험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상훈(41) 포항동선바나나체험농장 대표는 “농장을 방문한 많은 시민들이 아직까지는 다들 신기해하신다”면서 “여름에는 자연온도로 바나나를 재배할 정도가 된다”고 했다.

많은 열대작물이 국내에서도 재배되고 있다. 포항에 위치한 포항동선바나나 체험농장. 대표 한상훈(41) 씨가 포항시 관계자들에게 바나나를 설명해주고 있는 모습. [한상훈 씨 제공]
가속화되는 온난화...설 곳 잃는 기존작물

한반도 날씨는 빠른 속도로 따뜻해지고 있다. 기존 작물의 주산지는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추세다.앞으로 그 빈자리는 열대에서 자라던 작물들이 채워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이 지난 2018년 기상청 자료 등을 더해 내놓은 ‘기후변화에 따른 주요 농작물 주산지 이동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973년과 비교한 2017년도 국내 지역별 평균기온은 제주권의 경우 1.14℃, 수도권은 0.91℃, 충청북도권은 0.83℃, 전라북도권역과 경상북도권역은 0.63℃ 씩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존 농작물들의 주산지는 여기에 맞춰 이동하고 있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사과는 경상북도 영천에서 강원도 정선·영월·양구로, 포도는 경상북도 김천에서 충청북도 영동과 강원도 영월로, 단감은 경상남도 김해·창원·밀양에서 경상북도 포항·영덕·칠곡으로 옮겨갔다.

권헌중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연구소 연구관은 “기존 주산지에서도 평지에서 산지 쪽으로 생산지역이 이동하고 있다”면서 “농민들은 사과를 재배하기 좋은 산지를 찾아서 이동을 감행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주요 작물 생산량은 소폭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통계청이 집계하는 과실생산량 지표에 따르면 포도는 지난 2006년 전국적으로 33만49t이 생산됐지만, 지난해는 생산량이 16만6159t에 그쳤다. 단감은 2006년 1만7304t에서 지난해 8639t. 주산지 이동 작물에서 언급되지 않았지만 배 생산량은 2006년 43만1464t에서 지난해 20만732t로 생산량이 떨어졌다.

그외 노지 재배에서 하우스 재배로 생산 형태가 바뀌는 경우도 많다.

제주도를 상징하는 감귤이 대표적인 사례다. 노지감귤 비중은 아직 전체 비중의 73.8% 수준이지만 하우스재배 감귤 농가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승갑 감귤연구소 농업연구관은 “노지에서 가을철에 온도가 높거나, 비가 많이오면 귤 맛이 떨어지고 가격도 낮이지니까 하우스 재배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작물도 마찬가지다. 경기도 여주 금싸라기 참외는 현재 재배면적의 90%가 시설재배로 이뤄진다. 충청남도 아산의 특산물인 배방오이는 ‘노지오이’로 명성을 떨쳤지만, 최근 기상조건의 영향 등으로 인해 시설재배가 늘어가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2080년에는 한국 경지 면적의 62.8%가 아열대기후 지역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현재 한국 경지 면적 중 아열대기후 지역대라고 볼 수 있는 비율은 약 10.1% 수준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내놓은 대표농도경로(RCP)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하우스가스 배출량을 유지하는 시나리오 8.5에서는 강원도 산간을 제외한 남한 대부분의 지역이 21세기 후반기에 아열대 기후로 변경될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 2005년 국내에서 최초로 수확된 제주권 골드키위 농장의 모습. [연합]
‘이상기후’ 현상도 골칫거리

문제는 ‘뜨거워지는’ 날씨만이 아니다. 더운 날씨와 함께 잦아진 이상기후 현상도 작물을 재배하는 데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많은 이상기후가 닥쳐왔다. 3~5월 추운 날씨로 인해 한반도 중부·남부지역에 서리가 찾아왔고, 농가는 ‘냉해’ 피해를 입었다. 6~8월에는 역대급 긴 장마가 찾아왔다. 9~10월에는 때아닌 태풍이 한반도 남부지역을 휩쓸고 갔다.

여기에 농업 생산량은 큰 영향을 받는다. 사과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해 찾아오는 이상기후에 따라서 생산량이 39만 t에서 59만 t 수준까지 들쭉날쭉하다. 이상기후 현상이 잦았던 올해 사과 생산량은 전국적으로 45만 t에 그칠 것으로 예상돼 우려다.

열대작물도 여기에 영향을 받는다. 국내 키위생산량은 지난 2012년과 2013년에 예년대비 2000~3000톤 이상 크게 떨어졌다. 이는 주산지인 전남지역에 2012년도 찾아온 막대한 태풍 피해와 4월께 찾아온 저온현상 때문이다. 이 때문에 키위 나무에 달린 잎들이 떨어졌고 생산량에 큰 영향을 받았다. 아직 농가 숫자가 적은 편인 열대작물 농가들은 일부만 피해를 입어도 국내 생산량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해 생산된 전체 과실생산량 수는 이런 기후 변화 여파를 반영하는 듯 하다. 2006년에는 249만9028 t였지만, 지난해에는 220만6348 t까지 30만 t 가까이 줄어들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종합해 '기후 불확실성의 증가'라고 말한다. 정철의 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교수는 “사계절 24절기가 뚜렷해, 예측이 가능했던 한반도 기후가 이제는 제대로 예측하기 힘든 환경이 되고 있다”면서 “기후 변화로 인해 생물이 영향을 받는 것은 기후변화가 어느정도 누적됐을 때서야 나타나는 반응이다.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김성우 기자

zzz@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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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라스트 포레스트(Last Forest)

본 기획은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영상팀 기자, PD, 디자이너의 긴밀한 협업으로 만든 퀄리티 저널리즘 시리즈입니다. 본 시리즈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기획=이정아·김성우 기자, 신보경 PD

취재·진행=김성우·박이담 기자

영상 구성·편집=안경찬 PD

영상 촬영=안경찬·신보경 PD

디자인=허연주·변정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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