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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랜선친구] ①“친구도 내 입맛에 맞게” 합리적 관계 지향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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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온라인이나 SNS로 맺은 친구를 뜻하는 ‘랜선친구’는 현대인의 관계맺음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단어가 됐다. 최근 ‘랜선남친’ ‘랜선이모’와 같은 파생단어도 다양하게 생겨났다. ‘랜선’을 주제로 한 방송프로그램도 활발하다. ‘랜선’을 통한 관계맺음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고, 앞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짚어봤다 -편집자주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한수진 기자] 직장인 김지우(서울.28) 씨는 주말이면 다양한 모임을 즐긴다. 대학친구들부터 군대동기까지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며 여가시간을 보낸다. 여기에 최근 새로운 모임이 추가됐다. 바로 랜선친구와의 만남이다. 평소 활발하게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을 하던 그는 온라인으로 친목을 쌓아온 친구와 실제 만남을 가졌다. 일단 관심 분야가 같으니 대화가 잘 통했다. 두 세 번 만남이 늘어나다 보니 경계심도 쉽게 허물어졌다. 어느새 랜선친구는 김 씨의 현실 절친이 됐다.

김민주 씨(경기도.26)는 ‘겜알못’(게임을 잘 알지 못하는 이를 지칭)이지만 인터넷 게임 방송을 즐겨본다. 그 중에서도 BJ 수탉의 방송을 가장 좋아한다. BJ 수탉은 이른바 김 씨의 ‘랜선남친’이다. 사회생활 중 힘든 일을 겪을 때면 수탉의 방송을 보며 안정감을 찾기도 하고, 때때로 그의 방송을 틀어놓고 잠을 청하기도 한다. 소심한 성격 탓에 현실에서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는 그는 수탉을 통해 정신적 안정을 찾는다.

랜선친구와 온라인을 통해 단순 소통만 하던 시절은 끝났다.

최근 랜선친구와 적극적인 관계 실현 뿐 아니라 합리적 인간관계를 맺는 이들이 늘고 있다. 관계의 일부였던 인터넷 너머의 존재가 이젠 관계의 중심이 된 것이다. 방송이나 미디어 등에서 ‘랜선친구’라는 말을 흔히 쓰는 것도 이 같은 변화를 방증한다.

여러 세대에 걸쳐 랜선친구와 같은 온라인 친구는 존재했지만 이 주체들이 관계 형성의 중심이 된 건 최근에 와서다. 이 같은 변화의 이유로 전문가들은 ‘제너레이션 센시블’(Generation Sensible)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센시블은 합리적, 실용적이라는 말을 뜻한다. ‘제너레이션 센시블’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에 태어난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기도 하다. 즉 합리적 관계를 지향하는 세대라는 말이다.

이동귀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세대 변화에 따라서 관계 맺음의 방식이 다르다. 최근엔 온라인을 통해 합리적으로 인간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이들이 늘었다. 직접적인 관계는 시간과 비용이 든다. 하지만 랜선친구는 가상의 관계가 밑바탕이 되기 때문에 부담감이 적다. 한 마디로 가성비가 뛰어난 것”이라며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요소가 거의 없다. 주된 공통점이 같고, 관계를 맺고 끊는 게 쉽다. ‘뉴제너레이션 센시블’이라는 세대에 초점을 맞춰서 보면 된다. 문화소비의 주축이 되는 세대들이 합리적 인간관계를 추구하면서 랜선친구와의 관계를 중요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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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접속' 스틸 컷(사진=명필름·한국영상투자개발)



■ 스마트폰 하나면 다 되는 세상…친구도 내 입맛에 맞게

혹시 영화 ‘접속’을 기억하는가. ‘접속’은 랜선친구의 초석과도 같은 PC통신의 관계맺음을 잘 담아 낸 작품이다. 두 남녀주인공이 유니텔을 이용해 교신하며 서로의 아픔을 달래준다. PC통신이란 개인용 컴퓨터를 다른 컴퓨터와 통신 회선으로 연결해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한다. 이때 생겨난 랜선친구의 모임 장소는 1985년 만들어진 ‘천리안’을 시작으로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 등이 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커뮤니티는 동호회라는 이름으로 한때 활발한 유행을 이끌었다.

보다 적극적인 온라인 소통의 형태는 1999년부터 2007년까지 펼쳐졌다. 웹을 이용한 커뮤니티가 생겨나면서다. 다음과 네이버 카페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포털사이트인 다음에서 1999년 업계 최초 카페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외에 네티앙, 아이러브스쿨, 프리챌 등 다양한 웹 커뮤니티가 생겨나면서 웹을 통한 커뮤니티가 활개를 쳤다. 2007년 기준 네이버와 다음 카페 방문자 수가 각각 1,944만 명, 1688만 명(자료 : 랭킹닷컴)을 기록했던 것을 보면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PC통신이나 카페를 통한 커뮤니티 활동이 한 시대를 풍미하며 젊은 세대 사이에서 랜선친구가 대유행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는 재미를 위한 소통 활용이 주 목적이었다. 2007년 기준 네이버와 다음 카페 평균 체류 시간을 보면 각각 1분 49초, 12분 29초(자료 : 랭킹닷컴)이다. 지금과 비교했을 때 커뮤니티 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고, 온라인 만남에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실제 만남을 가지더라도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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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인터넷 이용의 어려움도 적극적 소통에 제약을 가져왔다. 컴퓨터로만 커뮤니티 활동이 가능했기에 정보를 주고받는 식의 커뮤니티만 형성됐다.

이후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중심 세대 관계에 변화를 가져왔다. 한국의 경우 스마트폰 이용자수가 지난해 11월 기준 4852만 명을 넘어섰다. 한 마디로 거리에 있는 시민 대부분이 상시 온라인 사용이 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이중 하루에 1회 이상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의 비율은 96.4%에 이른다. 주평균 14시간 이상 온라인을 이용하는 사람은 54.9%나 된다. 하루 두 시간 이상은 인터넷을 이용한다는 말이다. 이들의 인터넷 이용 목적도 커뮤니케이션(94.6%)을 위한 활용이 제일 활발하다. 게임 등의 여가활동(91.5%)보다도 앞선 수치다(자료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인터넷진흥원, 2017).

이렇듯 웹 커뮤니티의 한계점마저 없어지면서 랜선친구의 소통력과 가치가 높아졌다. 이 교수는 “과거 PC통신을 사용할 땐 속도 제한과 불안정한 연결망으로 소통에 불편을 겪었다면 지금은 온라인 접근이 상당히 용이하다. 언제나 스틸 온(Still on)상태다. 상시 온라인 소통이 가능하다. 관계 맺음에 있어서 자신의 입맛에 맞출 수 있는, 즉 판타지를 충족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①“친구도 내 입맛에 맞게” 합리적 관계 지향 시대
②랜선친구와의 동행, 그 명과 암
③‘여중생A’부터 ‘서치’까지…랜선 너머의 존재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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