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김상수 기자] “아주 잘했어.”
세계적 소프라노 조수미 박사의 노래가 절정에 이르고, 3000여명에 이르는 관객은 숨소리조차 내질 않았다. 천상의 목소리가 멈추자 일순간 뜨거운 갈채와 환호가 쏟아졌다. 우아한 손짓으로 이에 화답하곤, 천천히 피아노를 향해 걸었다. 그리곤 손으로 피아노를 다독이며 말했다. “아주 잘했어.”
조수미가 부른 ‘피렌체의 꽃 파는 소녀’를 연주한 이 피아노는 피아니스트가 없는 피아노, 인공지능(AI) 피아노다. 성악가의 목소리를 들으며 노래 흐름과 분위기에 맞게 연주를 알아서 조절한다. 그런 연주에 조수미는 마치 피아니스트를 대하듯 마음을 전했다. 찰나의 교감이었지만, 이날 특별한 무대의 의미를 고스란히 보여준 장면이었다.
세계적 소프라노 조수미 박사가 지난 5일 대전 KAIST 류근철 스포츠컴플렉스에서 헤럴드미디어그룹 주최로 열린 ‘이노베이트 코리아 2024’에 등장, AI와 함께 화려한 무대를 선보였다. 이날 선보인 3곡 모두 각각 AI의 차별화된 기술이 접목됐다.
▶“과학기술의 발달, 인간중심적으로 이뤄져야” = KAIST 초빙 석학교수이기도 한 세계적 소프라노 조 박사가 무대에 오르자 3000여명 관객이 일제히 뜨거운 환호로 반겼다. 그는 “인공지능, 로봇, 빅데이터 등 과학기술은 놀라운 잠재력을 갖고 있기에 이런 기술이 인간의 감성이나 창의력을 억압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AI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창조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고, 예술가를 협업을 통해 창의성을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AI 등 과학기술은 인간의 감성, 창의력을 최대한 존중하고 촉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전했다.
인간중심적인 과학기술 발달을 강조하며 “이는 단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닌, 우리가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문제”라고도 표현했다.
그러면서 “우리 인생을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드는 데에 과학기술이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양한 AI 기술 접목, 연이은 실험적 무대 선봬 = 강연에 이은 첫 번째 공연은 헨델의 ‘울게하소서’였다. 이 공연엔 AI의 가사 추적 기술이 적용됐다. 조 박사가 노래하자 공연 화면엔 한국어로 번역된 가사가 노래에 맞춰 표시됐다.
남주한 KAIST 교수(문화기술대학원 조수미 공연예술 연구센터장)은 “통상 성악 공연을 볼 때 뒤에서 실시간으로 사람이 가곡을 들으며 번역된 가사를 수동으로 관객에게 보낸다”며 “이번 공연에선 AI가 성악가의 목소리를 듣고 자동으로 시점을 추적해 가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렌체의 꽃 파는 처녀’는 조 박사와 AI 피아노의 협연이었다. AI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에 얹어진 천상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청중을 압도했다. 노래가 절정에 이를 땐 마치 실제 피아니스트처럼 반주를 멈춰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마치 귀를 기울이듯 감정의 진폭에 따라 선율도 함께 움직이는 듯했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피아노 건반이 화면에 비치자 관객들도 탄성을 내비쳤다.
마지막 곡인 ‘꽃의 이중창’은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KAIST 출신 최순범 대표가 창업한 스타트업 오드아이의 AI 보컬 기술이 적용된 무대였다. 공연에 앞서 최 대표는 “조 박사의 음색과 창업을 학습한 AI가 함께 노래를 부른다”며 조수미와 조수미 아바타의 듀엣 공연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년 ‘이노베이트 코리아 2023’에서 세계 최초로 AI와의 합동 공연을 선보였던 조 박사는 이날 역시 AI와의 듀엣 무대로 대미를 장식했다. 아름다운 화음으로 함께 부르다가 조 박사가 독창하고 뒤이어 ‘조수미 아바타’가 독창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조 박사는 ‘아바타’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살며시 미소를 짓기도 했다. 어우러지는 음색에선 때론 조 박사가 아바타를, 또 때론 아바타가 조 박사를 도와주며 서로 돋보이게 하는 등 작년보다 한층 더 진화된 듀엣 공연을 선보였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 소속된 조수미 공연예술연구센터는 음악 분야에서 인간과 AI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다양한 기술 개발 및 공연 시나리오를 연구 중이다. AI와 메타버스 기술을 바탕으로 공연 및 예술 전문연구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