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끝난 ‘학군 1군지’ 대치동 가보니
‘물갈이’ 현상 실종…전세 가격 주춤
일부 신축 위주로 전세 수요 몰려
“이젠 대치동 고집 안해…개포동으로 수요 분산”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11월 수능이 끝난 직후부터 전셋값이 크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는데 썰렁하네요. 신축은 쫙 빠졌는데 구축은 전세 문의가 거의 없어요.” (서울 강남구 대치동 C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
2024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이 비교적 어려웠지만 서울 시내 인기 학군 지역의 ‘전세특수(학군 이사 수요)’가 잠잠하다. 보통 학군지 전세시장에서는 자녀가 수능을 본 세입자들이 빠져나가고 학군지 진입을 노리는 수요자들이 채워지는 ‘물갈이’ 현상으로 전세 가격이 요동친다.
하지만 올해는 ‘불수능’ 직후 학군지 전세 가격이 일제히 급등했던 과거와 달리 일부 신축 단지에만 수요가 몰리는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찾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들은 “보통 ‘불수능’ 직후 전셋값이 1억에서 2억가량 오르는데 올해는 신축 위주로 거래가 이뤄지고, 예전처럼 전셋값이 치고 올라가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이 일대에서 대치동 학원가를 걸어 다닐 수 있는 신축 대단지 아파트는 2015년 입주한 ‘래미안대치팰리스’가 유일해 선호도가 높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래미안대치팰리스 94.49㎡은 지난 16일 18억8000만원(18층)에 전세 거래됐다. 이는 지난 11일 직전 거래가인 17억(16층)보다 1억8000만원 오른 금액이다.
C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수능 직전 10개 넘게 있었던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세 물량이 수능 직후 순식간에 8개 거래됐고 지금 몇 개 안 남았다”며 “세입자로 들어오는 학부모들은 주로 SKY출신의 의사, 변호사 등 여유 자금이 있는 탄탄한 전문직”이라고 했다.
반면 은마·선경·미도 등 입주한 지 30년이 넘은 구축 아파트들은 신축 아파트에 비해 선호도가 떨어져 전세 수요가 예전만 못하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M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선경 1·2차의 경우 수능 직후 전세 문의가 일주일에 2건에서 3건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이제 젊은 학부모들은 학군지라고 해도 낡고 춥고 관리비가 비싼 구축 아파트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했다.
H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도 “같은 대치동이어도 신축과 구축의 차이가 매우 크다”며 “은마의 경우 전세 물건들이 꾸준히 나오고 거래는 되지만 물량이 쌓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난 30일 기준 은마 아파트의 전세 매물 건수는 419개로 한달 전 347개에서 20% 증가했다. 전셋값도 수능 직전인 지난 13일 76.79㎡가 6억3000만원(5층)에 전세 거래됐으나 수능 직후인 지난 27일 2000만원 떨어진 6억1000만원(5층)을 기록했다.
이처럼 대치동 구축 선호도가 낮아진 원인으로는 인근에 들어선 개포동 신축 대단지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장에선 “인근 개포동 신축 대단지가 대치동 구축 전세 수요를 흡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개포동은 대치동과 인접해 교육 환경이 우수한데다 단지 내 수영장, 헬스장, 독서실 등 고급 커뮤니티 시설을 갖춰 인기가 높다. 지난 2월 ‘개포자이프레지던스’에 3375가구가 입주한 데 이어 지난달엔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 6702가구가 집들이를 시작했다.
C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개포동 일대에 신축 대단지 아파트가 2년에 한번꼴로 입주하면서 떨어진 대치동 전세가가 예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며 “젊은 학부모들은 전셋값이 맞지 않으면 대치동 구축을 고집하는 대신 개포동 신축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