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인공지능에 판결받고 싶은 시대

“차라리 인공지능한테 판결 받고 싶네요. 덜 억울할 듯합니다.”

최근 한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인공지능 판사=현행법에 따라 기계적으로 판결, 인간 판사=전관예우ㆍ사회지도층ㆍ유전무죄ㆍ감정에 의한 판단. 당신은 어느 쪽?”이란 글도 눈에 띈다. 송사를 겪으며 억울한 일을 겪었다는 사연 뒤엔 으레 이런 댓글이 줄줄이 따라 온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도박사건 이후 드러나는 ‘전관’ 변호사들의 ‘억’ 소리 나는 수임료는 법조계 신뢰를 땅으로 떨어뜨렸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데 수임료를 수십억원씩 내는 것일까’,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 언제나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법관들의 그 무섭고 추상같은 판결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같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됐던 거구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 짖는다. 요즘 법조계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차라리 인공지능에 판결받고 싶은 시대

자연스럽게 인공지능(AI) 판사, AI 변호사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구글의 AI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은 이후 이런 분위기는 더욱 커졌다. 알파고가 했던 것처럼 아무런 감정 없이 객관적 사실과 경우의 수를 판단하고 전 세계 모든 판례를 찾아 가장 납득할 만한 판결을 내놓는 AI 판사가 등장한다면 어떨까? 늦은 밤이건 새벽이건 언제든 전화를 걸어 질문하면 친절한 목소리로 궁금증을 해결하고 위로하는 AI 변호사가 나온다면 어떨까?

주목할 만한 건 이런 시나리오가 꿈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AI의 능력은 점점 강해질 수밖에 없다. 이미 풍속, 도덕규범 등 불확정적인 개념까지 어마어마한 경험치를 비교해 가며 가치판단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매일매일 실시간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고, 각종 기사와 연구논문 등 글을 올리고, 쇼핑을 하며 취향을 드러내고,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다는 만큼 AI가 참고할 경우의 수(빅데이터)는 무한정 확장된다. 이를 실시간으로 참고하며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 기능으로 스스로 학습하고, 홀로 패턴을 찾고, 공식을 만들고 깨기를 반복한다.

한 학자는 AI를 인간이 만든 마지막 발명품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앞으론 AI가 인간의 필요를 스스로 판단해서 발명해 주기 때문이다.

실제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뉴욕의 대형 로펌 베이커앤드호스테틀러는 최근 AI 변호사 로스(ROSS)를 고용했다. 로스는 사람들의 일상 언어를 이해하고 초당 10억장의 법률 문서를 분석해 변호에 필요한 최적의 자료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과연 인간 법조인이 당해낼 수 있을까. 2013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향후 20년 이내 행정법원 판사가 사라질 확률을 64%로 예상했다. 판사(40%)와 변호사(35%)가 없어질 가능성도 꽤 높게 평가했다. 최근 로스쿨을 들어간 미래의 법조인은 당장 자리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처럼 사법불신이 심각한 나라에선 어쩌면 AI 판사ㆍAI 변호사 도입이 더 빨라질 지 모른다. 전관예우 등으로 불신이 깊은 사법 시스템의 변화는 어쩌면 전혀 엉뚱한 곳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지도 모르겠다.

- 박일한 사회섹션 법조팀장jumpcut@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