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좋아도 역사·정치·금융 모르는 디자이너는 외계인”

중국의 비즈니스 문화는 독특 음식과 쇼핑위주 관광 벗어나 문화와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야

‘헤럴드디자인포럼2015’의 다섯번째 세션 ‘브랜딩, 정체성을 디자인하라’의 연사로 나선 홍콩 디자이너 토미 리(Tommy Li)는 무대에 오르자마자 “나는 산업 디자이너라기보다 브랜드 디자이너가 맞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브랜드 닥터’라는 별명의 소유자답게 그는 강연 내내 자신이 그동안 수많은 브랜드들을 어떻게 혁신하고 재탄생시켜 왔는지 구체적인 사례들을 열거해 시선을 집중시켰다.

[헤럴드디자인포럼 2015] “디자이너도 역사ㆍ정치ㆍ금융 섭렵해야”… 홍콩 브랜드 디자이너 토미 리
홍콩의 대표적 디자이너 토미 리는 “디자이너도 역사와 정치, 그리고 금융 지식을 섭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토미 리는 중국 시장을 예로 들며 리브랜딩(Rebranding) 작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을 중점적으로 설명했다. 그동안 수많은 브랜드 디자이너들이 중국 시장공략에 나섰다가 번번히 실패의 쓴맛을 봐야 했다. 토미 리도 “중국에서 살아 남으려면 담배ㆍ독주ㆍ나이트클럽 중 하나는 좋아해야 한다”고 말할 만큼 중국의 비즈니스 문화는 독특하다. 하지만 그가 중국 시장에서 브랜드 디자이너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보다 더 중요한 세 가지를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역사와 정치 그리고 금융이다.

토미 리는 “베이징에서 택시를 탔을 때 운전기사가 청나라 이야기부터 시진핑 주석과 현 공산당 등 정치 얘기를 늘어놓더라”며 “중국인들은 그만큼 역사와 정치 이슈를 무척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중국인과 신뢰를 구축하려면 우선 중국의 역사와 정치부터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역사와 정치를 모르면 외계인(Alien) 취급을 받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중국 금융시장에 대한 지식까지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는 시진핑 정부가 클럽 등지에서 접대에 과도한 비용을 쓰는 것을 금지하자 톈안먼 광장 인근의 한 클럽을 차를 마시고 명상하는 조용한 야외정원으로 탈바꿈시켰다. 변화하는 중국의 정치 상황을 읽고, 기존의 브랜드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 토미 리의 대표적인 성과물로 꼽힌다.

한편, 도시 브랜드와 관련해 토미 리는 서울이나 도쿄, 홍콩 등 대부분의 도시들이 음식과 쇼핑관광 홍보에만 치중하고 있는 점을 아쉬워 했다. 그는 “음식과 쇼핑은 이미 다 와서 해봤던 경험들이다”며 “외국인이 가장 매료되는 부분은 문화와 사람이다. 도시의 손쉬운 부분에만 집중하지 말고 그 뒤에 깔린, 깊이 있는 것들을 들여다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미 리의 디자인사무소는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브랜딩 회사로 선정됐을 만큼 폭넓은 인정을 받고 있다. 2005년엔 회원 수가 300명으로 한정된 프레스티지 아티스트 모임 AGI의 멤버십을 획득했다.

김현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