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46·사진)은 동ㆍ서양 명화를 디지털 픽셀 단위로 쪼개 재해석하는 작가다. 명화 속 장면을 배경으로 이른바 ‘움직이는 미술(Moving art)’ 작품을 만든다.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 한 소녀’도, 조선 문인화가 표암 강세황의 산수화도 그의 작업 소재로 쓰인다. 명화와 픽셀이 빚은 유쾌한 마리아주(Mariage)는 어려운 예술 작품을 대중에 더욱 친근하게 만들었다.

이이남은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조선대 미술대학 조소과를 마치고 연세대 영상대학원에서 수학했다. 30회가 넘는 국내외 개인전은 물론, 뉴욕, 베니스, 상하이 등 세계적 아트페어와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 미디어아티스트로 참여했다. 현재는 담양, 광주 지역에서 작업 활동을 하고 있다.

[헤럴드 디자인포럼 2015]백남준 뒤잇는 차세대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 작가...동·서양 명화+픽셀…유쾌한‘마리아주’

조각을 전공한 작가는 1997년께 미술에 첨단 기술을 접목하는 미디어아트로 작업 방향을 바꿨다. 클레이 애니메이션 기법의 ‘움직이는 조각’이 그 첫번째였다.

2006년 9월 서울미디어아트비엔날레에서 김홍도, 김정희, 모네 등 고전회화를 미디어 기술로 재해석한 ‘움직이는 그림’을 선보인 이후, 이이남은 백남준의 뒤를 잇는 차세대 미디어아티스트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실 이러한 작품을 하게 된 계기는 “대중에 사랑받고 싶어서”였다. 그는 “현대미술을 한답시고 오랜 기간 외롭게 창작활동을 해 왔다. 1997년 작업을 시작해서 2007년 처음으로 작품을 팔 수 있을 정도였다”고 했다. 그리고 느꼈다. “나 혼자서만 좋은 작품을 할 게 아니구나.”

이후 이이남은 자신의 작품 앞에 관람객이 오래도록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리고 모두에게 익숙한 명화를 차용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밀로의 비너스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같은 유명한 조각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는 등 다방면으로 소재를 확장하고 있다.

이이남의 움직이는 그림 시리즈는 LG전자의 ‘사랑해요 LG’(2007) 같은 기업광고나 방송ㆍ연극 등 무대미술에 모티브가 됐다. 2007년 중국에서의 첫 전시 이후 2008년부터는 이이남의 아이디어를 차용(혹은 도용)한 이른바 ‘짝퉁’ 작품들이 우후죽순 쏟아졌다. 일본에서도 고전 회화를 차용한 콘셉트의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디어에 대한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는 여전히 이이남의 몫이다. 최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고향인 산시성 웨이난(渭南)에서 시 홍보를 위한 미디어아트 제작을 그에게 의뢰했다. 이이남은 “중국에서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많을 텐데 내게 의뢰를 한 것은 움직이는 그림에 대한 오리지날리티를 인정한 것 아니겠나”라는 생각이다.

이이남은 13일 담양에 디지털 미술관 ‘이이남아트센터’를 오픈했다. 죽녹원 내 약 500㎡ 규모로 들어선 2층짜리 건물이다. 11월에는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에서 개인전을, 2016년에는 카타르, 프랑스, 베이징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이이남 작가가 오는 11월 10일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개막하는 ‘헤럴드디자인포럼2015’에 연사로 나선다. 강연 무대에서 이이남은 대중과 소통하는 작품 세계, 어려웠던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창작의 힘에 대해 이야기 할 예정이다.

김아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