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먹는 거야?” 한강 습지 자랑하더니…알고보니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 [지구, 뭐래?]
경기 고양시 장항습지 내 스티로폼과 페트병 쓰레기 사이에서 서식하는 왜가리 [그린피스 제공]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플라스틱 쓰레기 파편 사이를 헤엄치는 오리와 스티로폼, 페트병 쓰레기 사이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말똥게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김나라 그린피스 플라스틱 캠페이너)

한강을 따라 달리다 보면 김포대교와 일산대교 사이에 약 7.6㎞의 습지가 펼쳐진다. 울창한 버드나무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이곳은 장항습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생태적 가치도 전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곳이다. 지난 5월 람사르습지로 등재됐다.

“이걸 먹는 거야?” 한강 습지 자랑하더니…알고보니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 [지구, 뭐래?]
경기 고양시에 위치한 장항습지. 지난 5월 람사르습지로 등재됐다. [그린피스 제공]

경기 고양시에 위치한 장항습지. 지난 5월 람사르습지로 등재됐다. [그린피스 제공]

그런데 자세히 살펴본 장항습지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였다. 커다란 드럼통과 냉장고, 페트병들이 나뒹굴었고, 조각조각난 스티로폼이 수풀을 빼곡히 덮고 있었다. 이곳에 서식하는 왜가리, 오리, 저어새 등이 쓰레기로 뒤덮인 습지를 헤엄쳤고 심지어 쓰레기를 먹는 모습이 포착됐다.

더 놀라운 건 쓰레기들의 면면이다. 발견된 쓰레기가 백이면 백, 플라스틱이었다. 이곳에 걸리지 않은 더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한강을 빠져나와 바다로 흘러 들어갔을 터다.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려면, 결국은 일상 생활에서 나오는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재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걸 먹는 거야?” 한강 습지 자랑하더니…알고보니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 [지구, 뭐래?]
경기 고양시 장항습지에서 서식하는 말똥게 [그린피스 제공]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7일 ‘2024 한강하구 플라스틱 조사’를 통해 장항습지에서 4006개의 쓰레기를 포착했다고 밝혔다. 이중 플라스틱 쓰레기가 3945개로 98.5%를 차지했다. 플라스틱이 아닌 쓰레기는 61개로 1.5%에 그쳤다.

그린피스가 동아시아오션스와 함께 지난 8월 7일 장항습지에서 쓰레기가 집중되는 7곳, 총 108.2m 구간을 조사한 결과다. 출입이 통제되는 탓에 상공에 드론을 띄워 촬영한 뒤 영상 자료를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분석했다.

“이걸 먹는 거야?” 한강 습지 자랑하더니…알고보니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 [지구, 뭐래?]
장항습지 쓰레기 비율 [그린피스 제공]

플라스틱 쓰레기 중에서도 가장 많았던 건 스티로폼. 총 3237개(82.1%)로 10개 중 8개 꼴이었다. 70㎝부터 4㎝까지 크기도 들쑥날쑥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무래도 물결이나 바람 등 작은 충격에도 쉽게 부서지는 스티로폼의 특성 탓이다.

그린피스는 장항습지의 스티로폼 쓰레기가 수산물이나 신선식품 등의 냉동·냉장 포장 상자에서 비롯된 것으로 봤다. 해안에서 발견되는 스티로폼 쓰레기들은 주로 굴이나 김 등 양식장에서 쓰이는 부표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장항습지는 어업과 거리가 먼 한강 하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플라스틱 병이었다. 605개(15.3%)가 발견됐다. 흔히 생수나 음료가 담긴 페트병이다. 그린피스가 605개의 페트병 중 상표를 식별할 수 있는 33개를 분석했더니 롯데칠성과 코카콜라가 54%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걸 먹는 거야?” 한강 습지 자랑하더니…알고보니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 [지구, 뭐래?]
경기 고양시 장항습지 내 새들이 플라스틱 쓰레기 위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그린피스 제공]

당장은 장항습지를 터전으로 삼은 생물들이 위험하다. 쌓인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풍화되면서 미세플라스틱으로 분해될 가능성이 커서다. 조류와 습지 동물들이 미세플라스틱을 먹이로 오인해 섭취할 수 있다. 고양시에 따르면 멸종위기 야생생물인 저어새를 비롯해 왜가리 등 36과 122종의 조류가 장항습지에 있다고 한다.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습지와 강, 토양 등을 오염한다는 점도 문제다. 장항습지에 걸리지 않은 더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한강을 타고 서해 등 바다로 유입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많은 플라스틱은 한강을 끼고 있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나온 생활쓰레기다. 장항습지가 한강 하구에 위치한 데다 생태계 보전과 안보 등을 이유로 출입이 통제돼 왔기 때문이다. 김나라 그린피스 플라스틱 캠페이너는 “장항습지는 육상 쓰레기가 해양으로 유입되는 관문 역할을 하며, 도시 쓰레기의 특성을 파악하기에 적합한 장소”라고 설명했다.

“이걸 먹는 거야?” 한강 습지 자랑하더니…알고보니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 [지구, 뭐래?]
경기 고양시에 위치한 장항습지. 지난 5월 람사르습지로 등재됐다. [그린피스 제공]

페트병, 스티로폼 박스 조각 등 장항습지에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었다. 그린피스에서 2020~2023년 해마다 발표한 플라스틱 배출 기업 조사에 따르면 전체 플라스틱 배출량 중 70% 이상이 식품과 음료 포장재로 쓰이는 일회용 플라스틱으로 조사된 바 있다.

결국 소비자들이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재를 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식품 기업 등에서 일회용 플라스틱으로 포장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린피스의 주장이다. 식품 기업들이 일회용 플라스틱의 실제 사용량과 감축 계획을 수립하도록 강력하고 범세계적인 플라스틱 규제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걸 먹는 거야?” 한강 습지 자랑하더니…알고보니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 [지구, 뭐래?]
공동주택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장에 페트병이 쌓여있다. 주소현 기자

이에 오는 25일부터 부산에서 열릴 국제플라스틱협약 제5차 정부간협상(INC5)에서 플라스틱 생산 감축 목표를 반드시 포함할 것을 주문했다. 그린피스는 2040년까지 플라스틱 생산량의 최소 75%를 줄이는 강력한 목표가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나라 캠페이너는 “플라스틱은 이미 공기와 물 등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곳에 존재하며, 우리의 몸속에도 침투하고 있다”며 “플라스틱 생산을 근본적으로 줄이는 목표 설정과 오염을 유발하는 석유화학과 대형 소비재 기업 등에 적절한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걸 먹는 거야?” 한강 습지 자랑하더니…알고보니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 [지구, 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