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론 거듭하던 野, 결국 폐지안 수용
초기부터 '주식대박' 꿈 찬물에 부정여론 지속
밸류업에도 투자이민 중대요인 해소 분석
시장도 즉각 반응…코스피·코스닥 1%이상 상승
[헤럴드경제=서경원·유동현·김민지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4일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폐지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목에 생선 가시 빠졌다”며 안도 섞인 환호성이 나오고 있다. 지속적으로 금투세 폐지를 주장했던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은 당내에서도 일치된 의견을 내지 못한 채 유예론을 거듭 견지해 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금투세 시행에 대한 불씨가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것이 자본시장에는 중대한 불확실성으로 작용, 주식 등 주요 지수의 상방을 제한해 왔는데 이번 정치권의 합의로 이로 인한 투자심리 냉각은 상당부분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역대급 세제갈등으로 온나라 홍역=그동안 금투세는 온 나라를 흔들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세제는 종종 갈등을 불러오지만, 금투세는 유독 그 정도가 심했다. 도입 찬반을 둘러싼 논쟁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며 금융업계에서는 금투세를 시장의 최대 리스크 요인으로 꼽기도 했다.
금투세는 주식과 펀드 등 금융투자로 얻은 이익이 5000만원이 넘으면 초과 액수에 대해 22∼27.5%의 세금을 물리는 것이 골자다. 현재 우리나라는 주식 매매차익(양도차익)이 사실상 비과세다. 대신 매도 시 무조건 증권거래세를 걷는다. 이 틀은 1970년대 박정희 정부 말기에 만들어졌다. 당시엔 금융소득을 파악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려웠던 데다, 아직 낙후했던 국내 자본시장에서 투자를 장려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절충형 제도였다.
이 세제는 국내 금융투자 시장이 급속히 발전하며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우선 증권거래세는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조세원칙에 어긋난다. 주식으로 손해를 봐도 매도 시 무조건 세금을 내야 한다. 부당 과세의 소지가 크다. 종전의 틀에 새 금융투자 상품들을 대거 포함하면서 과세 논리가 너무 복잡해지고 일관성이 없는 것도 골칫거리다.
예컨대 국내에 상장된 외국 주식 ETF는 매매차익이 몽땅 ‘배당소득’으로 잡혀 세금이 매겨지지만, 국내 주식 펀드는 이 수익이 비과세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세제가 투자자의 발목을 잡고 시장 선진화를 막는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금투세 도입 논의는 탄력을 받았다. 금융투자소득에 과세한다는 단일 명제 아래 제도를 단순화하고, 개인 투자자는 공제 한도(비과세 구간) 연 5000만원을 적용해 부담을 덜어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금투세는 초기부터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당초 비과세인 매매차익에 세금을 매기는 조처라 대중의 반감이 불가피했다. ‘주식 대박’의 꿈에 찬물을 끼얹어 투자자들을 한국 증시에서 몰아내는 부작용만 클 것이란 지적이 쏟아졌다. 애초 2023년 1월 시행 예정이었다 2년 유예된 것도 이런 우려가 배경이었다.
▶1월 尹 반대입장으로 폐지론 본격 점화=반대론은 올해 1월 윤석열 대통령이 금투세 폐지 추진을 공식화하며 정점을 찍었다. 윤 대통령은 “구태의연한 부자 감세 논란을 넘어 국민과 투자자, 우리 증시의 장기적 상생을 위해야 한다”며 폐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장은 금투세가 우리 증시에 미칠 악영향에 크게 주목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시장 안팎에서는 금투세 과세 대상(국내 상장주식 기준)을 전체 개인투자자의 1% 내외로 추정하고 있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최근 한국예탁결제원으로부터 받은 2023년말 기준 상장주식 소유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금투세 부과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큰, 5억원 이상 주식을 보유한 개인투자자는 2023년 말 기준 약 14만명이다. 이는 전체 개인투자자(약 1407명)의 1%에 해당한다.
국내 주식 평균 수익률을 10%로 가정했을 때 금투세 기본공제인 5000만원의 10배인 5억원이 넘는 주식을 보유하면 과세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이들이 보유한 주식은 금액으로 약 401조2500억원 규모로 전체(약 755조4400억원)의 53.1%에 달한다.
금투세 찬성 측은 과세 대상자 수에 주안점을 두는 반면, 반대 측은 과세 대상자가 보유한 주식 금액과 투자 심리에 주목했다. 찬성 측은 과세 대상자가 1% 안팎으로 극히 일부에 불과해 대다수 투자자는 영향이 없고 시장 충격도 크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밸류업에도 투자이민 가속화=이런 가운데 정부가 올해 밸류업의 기치를 올리고 국내 자본시장의 레벨업을 추진해 왔지만 금투세 등의 영향으로 ‘투자이민’은 더욱 가속화된 상황이다. 단적인 예로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해외 자산을 기초로 하는 상품에 대한 투자 편중 현상이 심화되면서 국내 투자 ETF와의 성장 격차가 눈에 띄게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거래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9월말 기준 국내 상장된 ETF 중 해외 자산을 기초로 한 상품 386종의 순자산은 53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5년 전인 2019년만 해도 해외투자 ETF 상품이 115종, 순자산 3조7000억원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순자산이 14.4배로 증가했다. 반면 국내 자산을 기초로 한 ETF 상품은 507종, 순자산 106조1000억원으로 2019년 335종, 48조원에 비해 순자산이 2.2배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는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자산에 대한 관심 확대와 맞물린 현상으로 풀이된다. 올해 들어 미국 증시가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며 안정적인 우상향 흐름을 보이고, 인도 등 신흥국 증시도 빠른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 증시는 박스권 행보를 보이면서 해외 자산으로 투자처를 옮기는 투자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준서 동국대 교수(경영학과) “현재 한국 증시가 저평가 받고 있고 어렵다보니까 단기적으로 금투세 폐지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다만 중장기적으로 향후 시장이 안정화되면 다시 금투세를 논의할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희철 iM증권 연구원은 “금투세가 개인들 세금 자체 영향을 주다보니 세금 자체가 확정이 안된 상태에서 시행은 오히려 투자 불확싱성을 높이며 시장에 불안을 높일 수 있었다”며 “금투세 자체가 특히 코스닥에 안 좋은 영향을 주고 있어서, 코스닥이 개인 위주 투자라는 점을 감안할 때 개인 입장에서는 수익 측면에서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민주당의 금투세 폐지 결론을 내리자 국내 증시가 1%대 넘게 오르며 상승폭을 키우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0시 18분 현재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28%(32.55포인트) 오른 2574.91를 나타내고 있다. 같은 시간 코스닥 지수는 2.64%(19.25포인트) 뛴 748.30을 기록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