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온·SKTI 합병법인 1일 출범

내년 2월 SK엔텀 합병도 예정

원소재 수급에 트레이딩 능력 결합

조달 경쟁력 강화·비용 절감 시너지

연 5000억 규모 재무개선 효과 기대

배터리 바닥 찍었나…첫 흑자 달성 ‘주목’

〈그 회사 어때?〉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얼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SK온 살리려고 합병되는 두 개의 ‘알짜 기업 ’…적자 탈출 ‘핵심 열쇠’ 될까 [그 회사 어때?]
미국 조지아주 SK온 공장 [SK온 제공]

[헤럴드경제=정윤희 기자] SK온과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합병법인이 지난 1일 첫 발을 내딛었다. 같은 날 출범한 모기업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법인에 상대적으로 가려졌지만, 사실상 SK온이 모기업 합병을 촉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K온의 합병 시너지가 사업구조 재편(리밸런싱)의 성패를 가늠할 핵심 지표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최근 시장 일각에서는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는 배터리 업황이 바닥을 찍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합병과 함께 SK온의 실적 역시 개선될지 관심이 쏠린다.

SK이노베이션은 1일 SK E&S와의 합병과 함께 전기차 배터리 자회사인 SK온과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SKTI)과의 합병 절차를 마쳤다.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은 ‘SK온 트레이딩인터내셔널’을 새 사명으로 SK온의 사내독립기업(CIC) 형태로 운영된다. 내년 2월1일에는 SK온과 SK엔텀과의 합병도 예정돼있다.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은 국내 유일의 원유·석유제품 전문 트레이딩 회사다. SK에너지, SK인천석유화학의 원유 수입 및 석유 제품 수출을 담당한다. 사실 대중에게 익숙한 기업은 아니어도 SK그룹의 에너지 부문 핵심 사업인 원유·석유 분야를 떠받치고 있다. 지난 2013년 SK에너지에서 트레이딩 사업부문을 물적 분할해 설립됐으며, 분사 이후 빠르게 성장해 현재는 연간 영업이익이 5000억원을 웃돈다.

SK엔텀은 국내 최대 사업용 탱크터미널 기업으로서 유류 화물의 저장과 입출하를 관리하고 있다. SK그룹의 원유, 석유화학 설비가 밀집돼 있는 울산컴플렉스(CLX)에 원유와 석유화학 제품을 저장할 수 있는 탱크, 선박이 접안하는 부두시설 등을 갖췄다. SK엔텀은 올해 1월 SK에너지의 원유운영, 해상출사 조직을 인적분할해 설립됐다. 아직 분사 1년이 채 되지 않은 만큼 공정거래법 등에 따라 1년 후인 내년 2월1일 SK온과 합병한다.

SK온 살리려고 합병되는 두 개의 ‘알짜 기업 ’…적자 탈출 ‘핵심 열쇠’ 될까 [그 회사 어때?]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이 임차한 선박(왼쪽)이 해상 블렌딩을 위한 중유를 다른 유조선에서 수급 받고 있다.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제공]

SK온이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SK엔텀을 합병한 것은 ▷원소재 소싱(Sourcing) 경쟁력 확보 ▷안정적 수익 창출이 가능한 사업구조 강화 효과를 노린 것으로 시장은 분석한다. SK온은 이를 통해 배터리 사업의 지속가능성과 성장을 위한 기반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윤용식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합병으로 (SK온) 배터리 사업의 원소재 조달 능력 강화 시너지가 기대되며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SK엔텀 모두 안정적인 수익 창출 능력을 바탕으로 합병 후 SK온의 재무 부담을 축소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이 보유한 트레이딩 노하우를 리튬, 니켈 등 배터리 소재에도 적용함으로써 원소재 소싱 경쟁력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리튬, 니켈 등 배터리 소재 역시 국제유가와 마찬가지로 가격 변동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배터리 핵심소재 중 하나인 리튬 가격은 지난해 약 80% 가까이 폭락하며 최근 3년 내 최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코발트 평균 가격은 1년 전에 비해 42% 떨어졌으며, 니켈 역시 런던금속거래소 기준 지난달 톤당 1만5920달러 수준으로 1년 내 최고치인 2만1270달러 대비 74% 수준이다. 반면, 지난 2022년에는 니켈과 코발트 등 광물가격이 전년도와 비교해 각각 161%, 57%씩 치솟기도 했다.

전기차 제조 원가에서 배터리 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육박하는데, 배터리 제조 원가 중 양극재, 음극재 등 주요 소재의 원가 비중은 약 60%에 달한다. 그만큼 원소재의 가격에 따라 배터리 가격까지 차이 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SK온 살리려고 합병되는 두 개의 ‘알짜 기업 ’…적자 탈출 ‘핵심 열쇠’ 될까 [그 회사 어때?]
SK온이 개발한 ‘NCM9 배터리’ [SK온 제공]

SK온 관계자는 “결국 트레이딩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 거시경제 환경이나 시세를 보고 특정 원물을 제일 쌀 때 구매하는 능력”이라며 “배터리 비즈니스도 보통 3개월~6개월 단위로 진행되는 만큼 원소재 가격에 따라 (자동차 회사에) 배터리 가격을 높게 받을 수도, 낮게 받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배터리의 핵심부품인 양극재나 음극재, 분리막 같은 것들을 조달할 때도 핵심광물과 연동해 계약이 돼있다”며 “원소재 가격에 따라서 배터리 밸류체인에서 손익이 왔다갔다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배터리 원소재 조달에서 트레이딩 능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도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의 경우 이미 트레이더로서의 능력이 입증돼있다”며 “배터리 사업의 경우 배터리 가격 자체에 원자재 가격이 연동돼있다 보니 안정적인 배터리 원자재 수급을 위해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이 가진 역량이 결합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SK온이 조금 더 큰 성장을 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필요한 역량들을 갖춘다는 개념”이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기대감이 높은 것은 재무구조 개선 부분이다. SK온은 지난 2021년 출범한 이후 11개 분기 연속 적자를 낸 상태다. 막대한 투자에도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의 영향으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7916억원의 적자를 냈으며, 공장 가동률은 상반기 기준 53%까지 떨어진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SK온 뿐만 아니라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이 감당해야 할 재무 부담도 늘었다. SK그룹 리밸런싱 작업의 핵심으로 꼽히는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 역시 안정적인 자금 흐름(캐시플로우)을 구축해 배터리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평가된다.

때문에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SK엔텀이 SK온 품에 안기면서 한층 빠르게 재무 부담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의 지난 5년간(2019~2023년) 평균 매출액은 37조원,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4033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의 경우 EBITDA는 5746억원이다. SK엔텀 역시 지난해(SK에너지의 원유운영, 해상출사 분야) 영업이익이 500억원에 달한다.

SK온으로서는 합병으로 자체적인 이익 창출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이 보유한 대규모 현금성 자산(지난해 말 기준 8844억원) 역시 SK온의 차입금 부담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SK이노 배터리 사업, ‘SK온’ 분사 후 3년 만에 첫 분기 흑자
SK온 서산 공장. [SK온 제공]

SK온은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이 89.5%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SK엔텀은 SK이노베이션의 완전 자회사다. 추후 SK엔텀까지 합병이 완료되면 SK이노베이션은 SK온 합병법인의 91.1%를 보유하게 된다.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 역시 SK E&S 합병으로 수익성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합병법인이 출범한 1일 SK이노베이션의 장기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 등급인 ‘BB+’에서 투자적격 등급인 ‘BBB-’로 상향조정했다.

S&P는 특히, 배터리 부문과 관련해 “올 상반기 대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한 이차전지는 하반기 손실 규모를 축소할 것으로 보이지만 전기차 수요 성장세는 여전히 둔화하고 있는 모습”이라면서도 “다만 내년에는 이차전지 사업부도 미국 공장의 증설 물량이 더해져 EBITA 개선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희망적인 부분은 배터리 업황이 바닥을 지나고 있다는 점이다. 증권가에서는 SK온의 배터리 판매량 증가를 예상하며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생산세액공제(AMPC) 금액도 늘어났을 것으로 보고 있다. SK온의 AMPC는 지난 1분기 385억원을 기록한 후 2분기 1118억원으로 늘어났으며 3분기 역시 증가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SK온이 3분기 적자폭을 대폭 줄였을 것이란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SK온의 3분기 흑자전환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이 경우 SK온의 설립 후 첫 흑자를 기록하게 된다.

윤재성 하나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이번 합병으로 SK온은 물론 합병 SK이노베이션의 현금 흐름이 강화되며 재무적인 리스크는 상당 부문 완화된 것으로 판단한다”며 “다만 여전히 SK온(배터리)은 수요 부진 등의 리스크를 안고 있는 만큼 SK온의 조속한 정상화가 결국 주가 상승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