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로보틱스 협동로봇 활용 중인
부산 제조업·서울 서비스업 현장 둘러보니
생산성 20% 늘고 휴먼에러는 제거
차별화된 고객 경험 차원서도 긍정 반응
〈그 회사 어때?〉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얼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헤럴드경제(부산)=김은희 기자] 지난 29일 찾은 부산 기장군 정관신도시 우성정밀. CNC(컴퓨터수치제어) 가공 생산설비 30여대가 줄지어 서 있는 공장에선 스무 명 남짓 되는 직원들이 선풍기 바람에 땀을 식히며 가공기를 작동하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평범한 전자부품 제조공장이지만 이곳에선 ‘특별한 직원’이 일하고 있다.
그는 커다란 가공기 2대를 오가며 중장비 부품을 만들고 있었다. 잠깐의 휴식도 찰나의 머뭇거림도 없이 움직였고 가공시간 5분을 포함해 단 6분 만에 제품을 뚝딱 완성했다. 머신텐딩(장비에 가공물을 싣고 내리는 공정) 솔루션을 적용한 두산로보틱스 협동로봇의 이야기다.
헤럴드경제는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는 두산로보틱스의 고객사를 방문해 협동로봇이 산업현장에 스며들 수 있었던 경쟁력을 확인했다.
우성정밀 공장에선 사람과 로봇이 함께 일하고 있었다. 사람의 팔을 닮은 이 로봇의 업무는 간단하다. 원기둥 모양 금속 소재의 위·아래를 깎는 가공기를 차례로 작동하는 것이다. 소재를 집어 넣고 작동버튼을 눌러 가공을 시작하고 끝나길 기다렸다가 세척하고 빼내면 된다. 로봇팔 끝에 달린 비전 카메라가 눈이 돼 작업물 위치 등을 감지하고 필요한 작업을 알아서 한다.
사람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지만 사람을 대체하기보다는 사람과 함께 일한다는 데 협동로봇의 목적은 맞춰져 있다. 안전펜스 설치 없이 같은 공간에서 일하며 작업 효율과 생산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협력적 성격이 강해 ‘협동’이라는 이름도 붙여졌다.
일부 생산 공정에 두산 로봇을 본격적으로 적용한 지 이제 막 3개월이 지났을 뿐이지만 현장을 총괄하는 경영팀장은 상당한 만족감을 표했다. “사람을 대신해 사람이 하는 작업을 똑같이 합니다. 작업 속도는 사실 비슷해요. 그렇지만 사람이 8시간 동안 같은 일을 하면 실수를 안 하기 어려운데 로봇은 아니죠. 불량이 아예 없다고 보면 돼요.”
로봇 도입으로 품질과 함께 생산성도 향상됐다고 했다. 8시간 작업을 기준으로 현장 작업자가 완제품을 100개 정도 만든다면 쉬지 않는 로봇은 그보다 20% 이상 많은 123개를 생산한다. 장비 간 인터페이스를 연동하면 생산량은 138개까지 늘릴 수 있다.
우성정밀은 고객사가 원하는 수준의 품질 확보와 신뢰할 만한 작업환경 구축을 위해 협동로봇을 활용한 공정 자동화를 추진하게 됐다. 내년 로봇 한두 개를 추가하는 등 향후 5년간 협동로봇 도입을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협동로봇 수명이 최소 8~10년 정도인데 2~3년이면 도입 비용을 상계할 것으로 우성정밀은 계산하고 있다.
로봇에 적용된 솔루션 ‘픽시스’는 두산로보틱스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있는 TSI코리아가 설계했다.
픽시스는 커스터마이징(맞춤제작서비스) 형식으로 제작해 온 기존 협동로봇 솔루션과 달리 어떤 가공기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기능을 표준화했다. 지금까지 제조업 현장에 협동로봇을 적용하기 위해선 맞춤복을 제작해야 했다며 기성복을 사듯 로봇을 주문하고 약간의 ‘수선’만 하면 되는 셈이다.
TSI코리아 관계자는 “픽시스는 일종의 양산형 협동로봇 솔루션으로 별도의 설계 없이 공정 최적화가 가능하다”며 “국내 보급률이 높은 두산로보틱스 제품을 활용해 국내 시장을 중심으로 사업을 우선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조업뿐 아니라 최근 들어선 F&B(식음료) 산업에서의 협동로봇 도입은 늘어나는 분위기다. 두산로보틱스는 올해 초 F&B 특화 협동로봇 시리즈를 출시하고 서비스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 27일 찾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7층 멤버스바 더 블랙에선 두산 브랜드를 단 ‘로봇 바리스타’가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고객의 주문을 받은 ‘사람 바리스타’가 원두를 잘 갈아 필터에 끼운 드리퍼에 넣으면 그의 임무는 끝. 여기서부터는 온전히 로봇의 몫이다.
로봇은 커피가루 위로 둥글게 원을 그리며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균일한 물줄기를 일정한 속도로 내리붓는 모습은 섬세한 바리스타의 손기술을 빼닮았다. 3분여 간의 부드러운 움직임 끝에 로봇은 커피를 완성했다. 사람 팔 모양의 로봇이 만든 말 그대로 ‘핸드’드립 커피다.
로봇 바리스타는 단연 고객의 눈길을 끌었다. 식음료 업계에 협동로봇이 진출한 계기가 인력난 해소나 효율성 증대에만 있는 게 아니라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차원도 크다는 점에서 로봇 바리스타 ‘채용’은 이미 성공적이다.
두산로보틱스의 협동로봇은 제조업 현장에서도 서비스업 현장에서도 두루 활약하고 있다. 공작기계, 식품 외 자동차, 전기·전자, 소비재, 가구, 화학, 의료 등 적용 산업군이 다양할뿐더러 현대자동차, 포스코, LG전자, LG에너지솔루션, 삼성 등 국내 주요 기업은 물론 에머슨, 로레알, 지멘스 등 굴지의 글로벌 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협동로봇의 수요처가 그만큼 다양하다는 의미다.
두산로보틱스가 최근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 절차를 본격화한 가운데 IPO 흥행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도 시장에서 두산로보틱스의 경쟁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두산로보틱스의 출발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산은 협동로봇을 유망 신사업으로 점찍고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의 하나로 두산로보틱스를 세웠다. 그로부터 3년여간 연구개발(R&D)에 매진했고 자체 기술로 협동로봇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두산건설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촉발돼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 두산으로 이어진 유동성 위기가 있었지만 신사업 관련 투자를 꾸준히 이어갔다. 이는 신사업 육성에 대한 박정원 회장의 강력한 의지였다. 박 회장은 본격적인 협동로봇 양산에 돌입한 첫해 독일 뮌헨에서 열린 ‘오토매티카 2018’을 직접 찾아 로봇 등 신사업을 가속하겠다는 뜻을 거듭 강조했다.
올해 6월에도 박지원 부회장이 ‘오토매티카 2023’ 내 글로벌 협동로봇 제조사의 전시장을 일일이 둘러보며 “성장기에 진입한 협동로봇 시장 선점을 위해 새로운 기회를 적극 발굴해 나가자”고 언급했을 정도로 협동로봇 사업은 그룹 차원에서 적극 지원 사격하고 있는 분야다.
지금까지의 성적표는 우수하다. 협동로봇 양산을 시작한 2018년부터 줄곧 국내 시장 1위를 유지하고 있고 2021년 이후로는 글로벌 시장 톱5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매출 흐름도 좋다. 2018년 99억원 규모였던 매출은 2019년 173억원, 2020년 202억원, 2021년 370억원, 2022년 450억원 등으로 매년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25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연간 기준으로는 580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증권가는 예측하고 있다.
글로벌 협동로봇 시장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는 것도 두산로보틱스로서는 긍정적인 신호다.
시장조사업체 프레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협동로봇 시장은 2022년 약 24억달러(3조1800억원)에서 2032년 약 396억달러(52조4700억원)로 연평균 32.4%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상용화가 시작됐지만 협동로봇은 최근에야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고 앞으로의 성장성이 더 크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시장은 최근 정부 주도의 산업 촉진 등에 힘입어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 향후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리서치는 예상했다.
두산로보틱스는 이번 상장에서 1620만주를 공모한다. 공모 예정가는 2만1000~2만6000원으로 총 예상 공모금액은 3402억~4212억원이다.
수요예측은 9월 11~15일, 일반청약은 9월 21~22일 진행할 예정이다. 수요예측 상단 가격으로 상장에 성공하면 시가총액은 1조6800억원 수준이 된다. 오는 10월에는 IPO가 마무리될 것으로 증권업계는 보고 있다.
두산로보틱스는 이번에 상장으로 조달하는 자금을 R&D에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전 직원의 약 40%를 R&D 인력으로 구성할 정도로 기술 혁신에 집중하고 있지만 향후 시장 선점을 위해선 더욱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에 기술력을 고도화하고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강화함으로써 협동로봇 시장 전반을 아우르는 생태계 구축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별도 연구소 설립과 전문 인력 추가 채용도 고려하고 있다.
생산 역량도 강화한다. 현재 두산로보틱스 수원 공장의 캐파(생산능력)는 외주 1000대를 포함해 연 3200대 수준으로 글로벌 주요사 대비 미비한 실정이다. 이에 수원 공장을 2026년까지 1만1000대 규모로 증설하고 제2 공장을 신설하는 등 시설 투자에 총 310억원을 투입해 캐파를 늘릴 예정이다. 이와 함께 생산인력도 2026년 기준 400명 수준으로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두산로보틱스는 사업확장을 위한 해외 채널 확대를 적극 추진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범용성이 높은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로봇시장 확대를 검토하기로 했다. 이미 업계에서 가장 많은 13개 제품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지만 신제품 개발에도 계속 매진한다. 4개 이상의 라인업을 추가로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아울러 자율주행로봇(AMR)을 비롯한 기타 주변기술 기업 인수와 스마트팩토리 관련 파트너십 확대·구축 등 다양한 기업과의 협력을 위한 투자자금으로도 자금의 상당 부분을 사용할 예정이다.
IPO를 앞두고 두산로보틱스는 오는 2027년까지 매출액 7000억원대, 영업이익 2000억원대를 달성하며 영업이익률을 3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류정훈 두산로보틱스 대표는 “이번 IPO를 통해 다양한 산업에 협동로봇을 적용하는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