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기후동행카드에서 K패스로 전환했습니다”
지난 6월 말 시민 A씨는 기후동행카드 사용을 석달 만에 접었다. 할인 폭이 별로 크지 않은 데다 사용할 수 있는 지역이 제한적이라서다.
A씨는 “출퇴근 위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한달에 교통비로 6만원 초반대, 공휴일이 끼거나 연차 쓰는 달이면 5만원 중후반대를 써 절약은 안되는 것 같았다”며 “서울 내 운행 중인 경기나 인천버스도 가끔 타는데 기후동행카드를 쓸 수 없어 오히려 차량 선택의 폭은 좁아졌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의 대표적인 교통 부문 기후대응 정책인 기후동행카드가 본격 시행된 지 반년이 지난 가운데 이용률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싼 가격이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자가용에서 대중교통으로 유인해 도로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를 줄이겠다는 당초 취지를 살리기 위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게 시만·환경단체들의 제언이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와 우리모두의교통운동본부는 지난 6월 24∼27일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 사는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대중교통 이용 행태 ▷승용차 이용 행태 ▷서울시 대중교통 정책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설문을 31일 발표했다.
이 설문에 따르면 서울과 수도권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기후동행카드 가격보다 월 교통비를 적게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응답자 2781명 중 약 35%는 교통비를 월 3만원 미만으로 지불하고 있었다. 월 3만원 이상 5만원 미만인 경우가 20.4%, 월 5만원 이상 7만원 미만 25.4%, 월 7만원 이상은 19.6%였다.
이런 이유로 기후동행카드 이용률은 시행 반년 차에도 10% 안팎에 머물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10일 하루 평균 기후동행카드 이용자 수는 50만9877명(9월 말 기준)으로 하루 평균 서울 대중교통 이용자(432만7603명)의 11.8%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기후동행카드는 자가용 이용 저감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 대중교통 이용 확대 등을 목표로 한 서울시의 정책이다. 지난 1월 시범 사업으로 도입돼 3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월 정액 6만2000원(공공자전거 따릉이 포함 시 6만5000원)에 서울 지역 지하철과 서울시에서 면허를 받은 시내·마을버스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서울 이외 지역에서는 김포시(김포골드라인), 남양주시·구리시(진접선·별내선), 공항철도 인천공항1·2터미널역에도 기후동행카드가 적용된다.
서울뿐 아니라 경기와 인천 등 수도권으로 범위를 넓히면 이용률은 더 떨어진다. 그린피스 등의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 3000명 중 7.9%만이 현재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하고 있었다. 4.4%는 이용 경험이 있지만 현재는 이용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이외 87.7%의 응답자는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한 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이 지목한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 적용 지역와 가격, 크게 두 가지다. 인천과 경기에 거주하는 서울 대중교통 이용자들은 기후동행카드를 ‘내 집’까지 타고 올 수 없다.
서울에 거주하는 대중교통 이용자들도 굳이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할 이유가 없다. 기후동행카드의 가격 6만2000~6만5000원보다 교통비가 덜 들기 때문이다.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하지 않는 응답자 2764명 중 48.8%는 ‘이용 노선이 할인 혜택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서’ 이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 다음으로는 ‘비용 이점이 적기 때문에’라는 응답이 21.0%로 두 번째 이유로 나타났다.
바라는 보완점도 이용하지 않는 이유와 일치했다. ‘적용되는 노선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응답이 49.5%로 가장 높았고, ‘정기권 비용이 더 저렴해야 한다’(20.6%)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응답자를 지역 별로 나눠 보면 이같은 경향성은 더욱 두드러졌다. 인천 및 경기에 거주하는 응답자 1909명 중 55.0%는 적용 노선 확대를, 서울에 거주하는 응답자 1091명 중 30.5%는 더 저렴한 비용을 보완점으로 지목했다.
이용률만 저조할 뿐 아니라 정책 효과도 뚜렷하지 않았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기후동행카드 전체 이용자의 약 9%는 기후동행카드 이용 후에 자가용 이용을 줄였다고 한다.
기후동행카드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자가용 수요를 대체하고 대중교통 이용을 촉진시키기에 미흡하다는 게 시민·환경단체들의 지적이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센터장은 “기후동행카드는 자가용 이용자의 관점에서는 이용 편리성을 압도할 만큼의 경제적 편익이 약하고 시 경계를 이동하는 시민에게 불리한 제도”라며 “서울시는 타깃 별로 정책의 유인 구조를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가격 만큼 중요한 것. 대중교통 이용의 편의성이다. 대중교통 이용 확산을 위한 필요 정책(중복 응답)이 ‘대중교통 요금 보조 정책 확대’라는 응답자는 63.7%로 2위를 차지했다. 1위는 바로, ‘출퇴근 혼잡 시간대 지하철 및 버스 차량 증차’(68.0%)다.
그 외에 전면적 무상교통 실시(24.9%), 버스 및 자전거 전용 도로 증가(23.0%), 승용차 유지비 인상 및 금전적 혜택 감소(17.9%), 차 없는 거리 확대(13.2%), 도심 승용차 차 공간 감소(9.7%) 순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최은서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도로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서울시 전체 배출량의 18% 차지하는 만큼 현 서울시 탄소 중립 주요 전략 로드맵에 더 구체적인 탈내연기관 목표와 교통 수요 관리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