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태국의 한 악어 농장. 악어의 척추를 따라 칼질을 한다. 목덜미를 내리쳐 척수를 끊는다. 그런데 이 악어, 움직인다. 무려 산 채로 악어의 가죽을 발라내는 중이다.
멋드러진 명품 가방의 악어 무늬, 알고 보면 이처럼 비윤리적인 도축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동물권단체들은 동물 가죽을 이용하는 명품 브랜드 퇴출을 요구하고 있다.
30일 서울 강남구 에르메스 매장 앞에서 한국동물보호연합은 기자회견을 열고 “수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인도적이고 지속가능한 브랜드로 이미지 전환을 위해 동물 가죽을 이용한 상품 생산의 중단을 잇달아 선언하고 있는 가운데, 에르메스의 매출은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세계적으로 동물권에 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패션 브랜드들은 악어 등의 동물 가죽에서 인조 및 비건 가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그런데 에르메스는 오히려 이같은 추세를 이용해 호주 등지에서 새로운 악어 사육 농장을 대규모로 조성하는 등 반사이익을 꾀한다는 게 한국동물보호연합의 주장이다.
에르메스는 핸드백, 지갑, 부츠 등의 제품에 흠집이 없고 피부 조직이 고른 악어의 가죽만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악어 가죽 핸드백을 만들기 위해서는 악어 3-4마리의 가죽이 사용되며, 재킷에는 악어 6마리의 가죽이 필요하다고 한다.
특히 악어에서 가죽을 벗겨내는 과정에서 비윤리적인 도축이 자행된다. 살아있는 채로 척추를 따라 목부터 꼬리까지 칼을 밀어 넣어 발라낸다.
악어에게는 극심한 고통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가죽을 벗겨내는 과정에서도 생명이 끊어지지 않아서다. 국제 동물권단체 페타 아시아는 “악어는 부상을 입은 후에도 1시가 30분 이상 살아있고 의식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살아있는 동안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가죽이 손상되지 않도로 움직임을 극도로 제한해서다. 앞뒤로 방향을 바꾸기조차 힘든 좁은 철창에 갇힌 채 죽을 날만 기다리는 셈이다.
인간에게도 악어 가죽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건 좋은 선택지는 아니다. 인수공통감염병 등을 유발할 수 있는 데다 가죽 공정 과정에서도 화학 물질이 첨가되기 때문이다.
가격도 배로 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약 1600만원(1만1400달러)에 판매되는 에르메스의 한 가방의 원가가 약 140만원(1000달러)에 불과하다고 지난 6월 보도했다.
유독 에르메스가 한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에르메스는 지난 5월 200여 명이 동시에 입장할 수 있는 팝업스토어를 열고, 에르메스의 제작 방식과 소재 등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는 에르메스가 한국에 진출한 지 27년 만에 처음 열린 대중 행사다. 에르메스는 구매 실적이 있는 소비자만을 대상으로 제품을 판매해 대중이 쉽게 구입할 수 없는 명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국내에서는 악어 등 야생 동물 가죽으로 된 제품에 거부감이나 문제 의식이 다른 국가 대비 덜하다는 이유로 전세계적으로 악어 가죽 가방 판매에 비난이 높아지면서 한국 시장이 공략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악어는 지각력을 가진 야생 동물이며, 핸드백을 만들기 위해 희생될 수 없는 소중한 생명”이라며 “이제는 야생동물에 대한 착취를 중단하고, 야생동물의 모든 거래를 종식해야 한다. 에르메스는 악어 학살을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