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소비성향 4년째 감소 역대 최저 가계소득 정체·고령화로 장기화 우려 日 ‘잃어버린 20년’ 답습할 가능성 “재정·통화정책보다 체질개선 우선”
“인구 고령화가 미래의 주택가격에 미치는 잠재적인 영향 등으로 향후 인플레이션에 대한 가계의 기대수준이 회복하지 못하고 소비위축이 지속될 수 있다. 이로 인해 기업이 투자를 보류하고, 대외여건이 취약하다는 인식 때문에 이 추세가 강화되면 IMF의 기본전망(baseline scenario)에서 가정하는 꾸준한 경제회복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경제성장으로 귀결될 수 있다.”
이달 한국을 방문해 한국정부와 연례협의를 가진 IMF(국제통화기금) 대표단이 진단한 한국경제의 현주소다. 한마디로 내수가 회복되지 않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한국경제의 하방위험 가능성, 특히 장기적인 저성장 위험성이 있다는 진단이다.
실제로 가계 소비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민족 대이동’이 이뤄지는 설 명절 닷새 연휴를 앞두고도 소비가 살아나고 있다는 뚜렷한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각종 지표에서도 소비 위축은 그대로 드러난다. 가계의 평균 소비성향(가계의 처분 가능소득에 대비한 소비지출 규모)은 지난해 72.9%로 4년 연속 감소하면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소비위축은 경제구조의 변화에 따른 결과로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일시적인 변수에 따른 단순한 소비 심리변화가 아니라 저성장, 고령화 등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이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의 김진성 경제연구실장은 “현재 나타나는 소비심리 위축은 정체된 소득과 자산가격 회복에 대한 기대 감소, 주거비 상승, 교육비 등 부담 증가, 급속한 고령화와 부족한 노후대비 등 구조적인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를 반영한 인식의 전환에 따른 것”이라며 “소비심리는 상당기간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소비심리 위축이 길어질 경우 투자위축→경제활력 저하→소비위축의 악순환으로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한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실제로 한국 경제 상황은 일본의 1990년대 초 일본과 닮았다.
일본은 90년대 이후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물가가 0%대로 폭락했고,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가 극도로 위축됐다. 여기에 고령화, 인구 감소와 같은 구조적 요인들이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으면서 장기적인 침체에 빠져든 것이다.
가계 소득이 정체된 상황에서 빚만 쌓이다보니 소비를 줄이고, 저출산, 고령화 현상과 맞물려 잠재성장률까지 떨어지고 있는 한국의 상황과 닮은꼴이다. 1990년대 일본과 최근 한국의 주요 경제지표들이 이를 대변한다.
LG경제연구원과 통계청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990년대 일본의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0.5~1.8%, 경제성장률은 0.8~2.6% 수준이었다. 지난해 한국의 소비자 물가상승률 1.3%, 성장률 3.3%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규모다.
일본이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고,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내렸지만 투자나 소비로 연결되지 않은 상황도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1990년대 당시 일본의 정책금리는 1.75%, 가계소비는 0.9~2.3%였다. 지난해 한국의 금리는 2%, 가계소비는 2.8%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두 차례 금리를 인하(각 0.25% 포인트)했지만 소비와 투자의 불씨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지 않으려면 재정확대나 통화정책 이전에 경제의 체질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LG경제연구원은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에 발빠르게 대응하려면 혁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일본과 한국 경제는 생산과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도 비슷하다”며 “IT 분야 등 기술개발과 함께 소프트웨어, 서비스 경쟁력 등 지식인프라 구축, 인재 육성 등 탈공업화 시대에 맞는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이해준ㆍ원승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