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시티-뷰’
교수 출신 우신영 작가, 등단과 동시에 수상
송도신도시 중산층-노동자 각양각색 초상
완벽한 중년 부부의 맞바람…결핍과 욕망 표현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모두가 석진과 수미처럼 좋은 식사와 운동을 할 만한 여유가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참아내는 식욕과 게으름을, 인내하지 못하는 족속들이 답답했다. 값싼 쾌락을 당겨 누린 대가로 병들고 늘어진 신체를 끌며 자신들을 찾아오는 고객님과 회원님들이 경멸스러웠다. 그런 인간들의 어리석음과 충동성이 자신들의 주머니를 불려주고, 그 덕에 백화점 지하 식품관에서 유기농 아보카도를 사고 피트니스 회원권을 갱신할 수 있는데도.」(소설 ‘시티-뷰’ 중)
우신영 작가의 신간 소설 ‘시티-뷰’를 읽는 독자는 누구든 어느 한 편에 서게 된다. 식욕과 게으름을 참아내며 남들이 선망하는 몸을 갖춘 사람이거나, 아니면 아프고 병든 몸을 임시방편으로 고치려 해도 끝내 실패하고 마는 사람들 중에서 말이다. 그만큼 현대인은 누구나 ‘몸’의 이슈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강박과 불만을 느낀다. 그렇기에 그가 작품에서 표현한 몸에 대한 극사실적인 묘사는 쓴 웃음이 나거나 혹은 우울해진다.
우 작가는 장편소설 ‘시티-뷰’로 등단과 함께 ‘제14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했다. 국어교육과를 전공한 그는 지난 10년 간 대학교 교단에서 현대소설을 가르치다 지난 2월 퇴사한 이후 본격적으로 집필 작업에 돌입했다. 초스피드로 써내려간 작품이지만, 소설 속 등장인물의 묘사와 이들이 뱉어내는 말을 보면 오랜 시간 관찰하지 않고서는 잡아낼 수 없을 정도로 미묘한 부분들이 많다.
최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우 작가는 “집필 기간은 몇 달 안되지만, 지난 7년간 송도에 거주하며 마음 속으로 생각해오던 것이기에 7년 동안 썼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그는 몸에 대한 이야기를 쓴 배경에 대해 “현대소설 교육론 첫 수업은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돈’과 ‘성(姓)’이라고 가르치며 시작한다”며 “그런데 이 둘이 교차하는 가장 미시적이면서 구체적 장소가 몸”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신영아,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그랬던 것처럼 부자랑 빈자는 몸이 바뀌는 정도의 설정이 아니고서는 더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나봐’라고 이야기를 한 것이 계속 제 머리에 맴돌았어요. 그래서 한번 몸에 대한 이야기를 씨줄-날줄로 통과해보자고 마음먹었죠.”
경제자유구역을 표방한 송도 신도시는 여타 인천의 구도심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계다. 젊은 사업가 중산층 가족과 지극히 한국적 얼굴을 하고도 온 가족이 영어로 소통하는 ‘검은 머리 외국인’들로 이루어진 독특한 공간이다. 또 주변은 온통 최신식 푸른 통유리로 된 현대식 건물들이 도열해있다. 어두운 저층 주거지, 가난한 노인 등은 소거됐다.
‘석진’과 ‘수미’ 부부는 각각 소화기내과의사와 ‘비생계형’ 필라테스샵 원장으로, 송도신도시의 안온한 중산층을 대변한다. 내시경 검진으로 적지않은 수입을 올리는 석진은 환자의 생김새만 봐도 위와 대장 속 종양이 몇 개 일지 가늠할 수 있다.
발레리나를 꿈꿨던 수미는 이제 필라테스샵 홍보 수단으로서 자신의 몸을 완벽히 관리된 상태로 유지한다. 단지 밥벌이 때문은 아니다. 계급 의식도 침투해있다. 로펌 대표 집안의 외동딸이기도 한 그녀는 ‘불편한 것이 예쁜 것’이라는 신조로 집에서도 밀착되는 옷을 입는다. 아내의 수준에 맞추기 위해 섬 출신 ‘개천에서 난 용’ 의사 남편도 등산과 클라이밍으로 뱃살이 나오지 않게끔 관리한다.
이들과 관계된 젊은 남자 헬스트레이너 ‘주니’, 그리고 근방 남동공단 조선족 여공 ‘유화’, 평생 노동만 하다 죽은 석진의 어머니의 몸은 제각기 노동자의 몸을 대표한다.
‘길고 미끈한 종아리’를 가진 주니(예명)는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과 약간의 퍼스널트레이닝 수수료를 받는다. 뿌리펌부터 제모, 피부관리까지 겉모습은 멀끔하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는 최대한 절약한다. 하루의 식단은 단백질셰이크와 초특가로 구매한 냉동 닭가슴살 뿐이다.
연변에서 드라마 ‘커피프린스’를 보고 한국에 온 유화는 인천의 한 그릭요거트 공장에서 일한다. ‘콜드체인시스템’에서 하루종일 일하는 통에 그의 몸은 언제나 차다. 차가운 식판에 놓인 음식은 차마 못 먹겠어서 퇴근 후 뜨거운 국밥을 들이키는 통에 이는 이미 상해버렸다. 석진이 돈을 주고 가짜 암벽을 탄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그러면서 “우리 같은 사람은 사는 게 운동인데”이라고 덤덤하게 말한다.
결혼 후 섬에서 평생 낚시꾼들을 상대하며 생선회와 칼국수를 만들어 판 석진의 어머니는 석진이 의대 입학 후 온몸에 퍼진 암으로 죽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며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는데도 몸이 퉁퉁 부어 비만인 듯 보인다. 삶이 온통 노동으로 점철됐기에 죽음은 그녀에게 오히려 쉼이 돼주었다.
석진과 수미는 각자의 결핍된 부분을 서로 채워주는, 알맞게 만난 부부다. 개천용 석진은 일평생 양지에서만 살아온 수미가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환히 비춰줄 것 같다. 그래서 그녀의 속물적인 부분을 보고도 결혼을 결심한다. 수미는 학원과 과외로 차 한 대 값을 들였지만, 수학 성적이 늘 바닥이었다. AI(인공지능) 같이 수학과 과학을 잘한 의사 석진은 그녀의 열등감을 알맞게 채워준다.
하지만 우 작가의 말대로, 부자와 빈자는 몸이 바뀌지 않고선 끝내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을까. 수미는 주니와, 석진은 유화와 각각 불륜을 저지른다. 석진의 매력없는 몸을 보다가 서구 체형의 주니를 보며 수미는 유혹을 감행한다. 석진도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꾸며진 아내를 두고 남루하기 이를데 없는, 치아 상태마저 엉망인 유화에게 오히려 끌린다.
작품을 주로 이끌어가는 것은 석진·수미 부부이지만 유화와 주니, 그리고 그들의 주변 인물인 노동자계층의 서사 역시 흥미롭다. 작품에서 나오는 외국인 여공, 고층빌딩 청소부 등은 교수 출신인 우 작가와 거리감이 있는 인물들이지만, 일종의 ‘부채감’으로 그들의 삶을 작품에 녹여냈다.
우 작가는 수상 소감에서 “글로 읽고 귀로 들은 노동자 문제를 (작품에서) 다루게 돼 한편으로 마음이 복잡하고 무거웠다”며 “책상물림이라는 부채감이 컸다. 현대소설 강의에서 가난, 방화, 살인 이야기를 필연적으로 다루는데, 이런 것들이 나에게 항상 교단 위 강의 내용이었다는 점이 부대꼈다”고 언급했다.
“저는 운이 좋은데, 그럼 동시에 누군가의 운을 뺏고 있는 거 아닌가 싶었어요. 그냥 국·영·수를 잘했다는 것만으로 제게 너무 많은 운과 기회가 주어졌어요. 그럼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들은 자라서 무엇이 됐을까 궁금했어요. 어쩌면 이 사람들의 삶에서 더 많은 글과 이야기가 탄생할텐데 ‘(쓰는 권력은) 내가 다 쥐고 있네’라는 자각이 들었죠. 그래서 발언 기회를 좀 나눠주고 싶었어요.”
원래 소설의 제목은 ‘면도날’이었다. 칼로 제 몸을 베어야만 살아지는 삶도 있다고, 통속과 신파를 피해 작가는 전한다.
시티-뷰/ 우신영 지음/ 다산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