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최근 퇴직한 한 선배도 은퇴 자금 일부를 채권으로 묶었어요. 고금리 시대가 다시 찾아오긴 당분간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만기가 긴 상품으로 고정적인 이자 수익을 노리는 거죠. 금리가 가파르게 떨어지면 채권 가격은 오르니까,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도 있고요.(은행원 A씨)”

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지면서 채권으로 자금이 몰리고 있다. 개인 채권 순매수 규모는 1년만에 4조원 가깝게 늘어났다. 지난해 이미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는데, 올해 또 경신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위험이 거의 없는 특수채 순매수 규모는 1년만에 3배 이상이 됐다. 기타금융채 순매수 규모도 가파르게 늘었다.

무슨 채권을 살까

정부나 공공기관, 주식회사 등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한다. 즉, 채권을 산다는 건 발행 주체에게 돈을 빌려주는 행위이고, 당연히 이자도 나온다. 금리가 표시돼 있는 건 물론이고, ‘쿠폰(이표)’의 형태로 언제 얼만큼 이자가 들어올지도 미리 알 수 있다.

발행주체가 다르기 때문에 안전성과 금리도 다르다. 채권 중 가장 안전한 상품은 국고채다.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부도가 날 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금리는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이외 채권들은 신용등급 별로 금리가 다르게 나타난다. 신용등급이 높으면 금리가 낮은 대신 안전하고, 낮으면 금리가 높은 대신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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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한국전력공사 경기본부 전력관리처 계통운영센터 [연합]

표시된 신용등급보다 안전하다는 믿음을 주는 채권도 있다. 특수채다. 특수채는 공공단체나 공적 기관 등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특별법인이 발행하는 채권을 말한다. ‘한전채(한국전력 채권)’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기술적으론 신용등급이 존재하지만, 정부가 뒤에 있다고 믿기 때문에 위험이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특수채는 같은 AAA 신용등급 은행채보다도 안전하다고 믿는다”며 “정부의 ‘뒷배’가 있기 때문이다. ‘아휴 한전 망하는 거 보셨어요? 안 망해요’라는 말이 들리는 이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들어 개인 순매수 규모가 가장 많이 늘어난 것이 이 특수채다. 금융투자협회에 다르면 올해 초부터 지난 12일까지 개인은 특수채를 2조8000억원 순매수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조9000억원이 늘었다. 순매수 규모가 3.5배 증가한 것이다.

앞으로도 특수채 매수 열기는 식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일단 공급 측면에서 물량이 쏟아지고 있고, 부도 위험이 없다는 믿음 때문에 그 공급을 받을 수요가 탄탄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 6월14일 한전채 5000억원을 발행했다. 지난해 9월11일 이후 9개월 만에 채권 발행을 재개했다. 이후 지난 5일까지 총 3조6000억원 규모의 한전채가 시장에 쏟아졌다. 발행 가능한 여유분은 12조3000억원 남았다.

기존에 발행한 한전채 물량 만기가 돌아오면서 신규로 추가 발행될 물량도 상당하다. 이달부터 오는 12월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한전채 물량은 11조3000억원에 달한다. 국채 발행 물량이 지난해에 비해 그다지 증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비슷한 안전성을 가진 특수채가 공급 물량을 늘리면서 매수세가 계속될 수 있다.

특수채 만큼 순매수 늘어난 여전채…펀드 투자도 활황

기타금융채도 순매수 규모 증가세가 특수채 만큼 강하다. 기타금융채는 통상 여전채를 말한다. 카드사나 캐피탈사가 발행하는 채권이다. 신용등급 별로 차이가 있지만 특수채에 비해 금리가 높은 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기타금융채 개인 순매수 규모는 지난 12일까지 6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조9000억원(38.5%)이 늘어났다. 절대 규모로 봐도 국채 순매수(8조6000억원) 다음으로 순매수 규모가 컸다.

금리 측면에서 이점이 있다. 지난 8일 기타금융채(3년물, AA-) 스프레드는 55.9bp(1bp=0.01%포인트)를 나타냈다. 연초 100bp까지 벌어졌던 스프레드는 지난달 19일 연저점인 48.4bp까지 내려왔지만, 이후 증가 추세로 전환했다. 여전채 스프레드는 여전채 금리와 국고채 금리의 격차를 말한다. 여전채 스프레드가 커진다는 것은 국고채에 비해 금리가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한은 관계자는 “기타금융채는 캐피탈채, 카드채 등 여전채를 말하는데 과거보다 위험 우려가 많이 줄었고, 금리도 높은 편이니 수요가 생겨났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투협 관계자도 “기타금융채는 시장이 안정되면서 과거 대비 비교적 위험이 부각되지 않은 덕을 봤다”며 “기타금융채 신용등급은 싱글에이가 많기 때문에 금리가 더 높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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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펀드를 통한 채권투자 규모도 크게 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 국내 채권형 펀드의 설정액은 60조1242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한 주 동안 8075억원 늘었고, 하루 사이 2066억원 증가했다.

당분간 채권시장은 계속 뜨거워질 전망이다. 미국이 조만간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과 한국도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둘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의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예상치에 거의 부합하는 2%대를 기록했다. 이에 시장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9월 금리인하를 기정사실처럼 받아 들이고 있다. 한국은행도 오는 22일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적인 의견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채권 매수세가 식지 않으면서 개인 순매수 규모는 2년 연속 최대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커졌다. 올해 상반기(1~6월) 개인 투자자들의 장외 채권 순매수 규모는 23조1000억원으로 종전 최대 기록인 지난해 상반기(19조2000억원)보다 20.3% 많다. 이대로 가면 연간 기준 개인 투자자의 역대 최대 순매수 규모인 지난해 37조6000억원을 무난하게 넘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