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빵에 들어가는 달걀이 하루 100만 알, 어디서 난 거야?”
국내 제과점 프랜차이즈 중 가장 규모가 큰 파리바게뜨에서 매일 빵이 400만 개 생산된다고 한다. 여기 들어가는 달걀도 매일 약 100만 알에 이른다. 이 많은 달걀, 어디서 나는 걸까?
동물보호단체에서는 철창에 갇힌 125만 마리의 닭이 낳았다고 지적한다. A4용지 크기의 공간에서 옴싹달싹 못하며 달걀 낳는 기계 취급을 받는, 산란계들이다. 달걀 소비가 많은 대기업부터, 기왕이면 건강하고 행복한 닭들이 낳은 달걀을 써달라는 게 동물보호단체들의 주문이다.
무리한 요구만은 아니다. 동물들의 삶까지 염두에 둔 소비자들이 차츰 늘어나면서 유통업계부터 식품업계까지 ‘동물복지달걀’의 몫이 커지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는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11일까지 ‘케이지 프리’를 요구하는 시민 서명 4717건 모아 지난 12일 파리바게뜨에 전달했다. ‘케이지 프리’란 닭을 철창에 가두는 사육 방식이 아닌, 기본적인 복지를 고려한 농장에서 사육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파리바게뜨는 동물자유연대와 면담에서 “기업의 여러가지 여건상 당장 케이지프리 전환을 결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앞으로 동물자유연대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내부에서도 논의 절차를 거치는 등 케이지프리 전환에 대해 검토해보겠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닭장에 갇힌 산란계가 낳는 달걀을 쓰는 건 파리바게뜨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대다수의 식품기업들과 소비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나온 달걀을 사고 먹고 있다. 국내 산란계 93%에 달하는 7071만 마리가 비좁은 케이지에 사육되고 있기 때문이다.
닭들의 사육환경에 따라 달걀은 네 가지로 나뉜다. 달걀에 적힌 열 자리의 일련번호 중 마지막 자리가 나타내는 난각번호로 확인할 수 있다.
자유롭게 방목해 돌아다닐 수 있는 닭(방사사육)이 낳은 달걀, 실내에서라도 돌아다닐 수 있는 환경(평사사육)에서 나온 달걀에는 각각 1,2번이 붙는다. 이 달걀들만 동물복지 인증을 받는다.
3번과 4번 달걀은 닭장에서 사육된 닭들이 낳는다. 3번은 1㎡당 13마리, 4번은 1㎡당 20마리까지 생활한다. 특히 4번은 A4용지 크기의 닭장에서 평생을 부대끼며 죽어가는 닭들이 낳은 달걀인 셈이다.
한정된 공간에 닭의 밀집도를 줄이다보니 자연 동물복지 달걀의 가격은 더 비쌀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건강하고 행복한 닭의 삶을 응원하고, 동시에 건강하고 신선한 달걀을 먹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 회원제 할인마트 코스트코다. 이곳에서 1번부터 4번까지 달걀이 모두 판매되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 비교적 동물복지 달걀을 값싸고 손쉽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동물복지 달걀을 늘리고 매출은 판매량까지 늘어났다고 한다”고 전했다. 동물복지 달걀이 값이 더 나가는데도, 부러 동물복지 달걀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구매력이 큰 기업들이 동물복지 달걀로 전환에 나선다면, 소비자들의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다는 게 동물자유연대 측의 주장이다. 실제 동물자유연대는 스타벅스, 풀무원, 한화갤러리아와 케이지프리 전환 관련 업무협약을 맺고 이행 중이다.
한화갤러리아는 2021년 10월 동물복지 달걀로 전환을 선언하고, 2023년 2월에 전 지점에 100% 도입했다. 풀무원은 2028년까지, 스타벅스는 2029년까지 100% 전환을 목표로 동물복지 달걀의 수량을 차근차근 늘리고 있다.
조희경 대표는 “기업이 어떻게 유도하느냐에 따라 소비자들도 따라간다”며 “기후위기를 향한 인식이 바뀌어 가는 데에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사회를 바꾸는 데 동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